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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뮤지컬 인사이드] <영웅> 드라마의 아쉬움을 무마한 무대 미학 [No.88]

글 |박병성 사진제공 |에이콤인터내셔날 2011-01-14 5,704

2009년 최고의 창작뮤지컬은 단연 <영웅>이었다. 2010년 두 뮤지컬 시상식의 전 부문에서 두각을 보인 <영웅>이 재공연을 하고 있다. 에이콤이 제작한 <영웅>은 <명성황후>의 후속편이라 할 정도로 <명성황후>와 닮았다. 한 인물의 삶을 통해 감동을 주고 화려한 비주얼로 시선을 끈다. 하지만 비주얼 면에서는 <영웅>이 한 수 앞선다. 눈발을 헤치며 달리는 기차 장면은 압권. 기차의 외부에서 내부로의 장면 전환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연출가 윤호진에게 <영웅>에 대해 들어보았다.

 

<명성황후>는 재공연 때 굉장히 많이 수정을 했다. 그런데 이번 <영웅>의 재공연을 보니 작년과 거의 그대로이다.
1막에서 요정 장면이 두 번 나왔는데 이것을 하나로 합치면서 이토의 노래 한 곡이 생략됐다. 그래서 왕웨이의 죽음 이후 장면들이 분산되지 않고 드라마를 몰아갈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설희가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을 빼서 설희를 더 차가운 캐릭터로 만들었다. 그 외에는 거의 그대로다. 뮤지컬은 음악 구조를 허물어야 해서 많이 고칠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혹시 새로 넣고 싶은 것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없다. <명성황후> 때는 올려놓고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영웅>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그래서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역사물의 경우 역사적 사실의 무게 때문에 극을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한 점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나?
안중근의 이야기는 오페라나 연극,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동안 이토 암살이나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었지 가장 중요한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나 철학은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 시대에 어떻게 하면 아시아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 점이 역사적 사실을 살린 부분이다. 아무리 역사물이고 훌륭한 인물이라도 교훈적으로만 가면 관객들이 재미없어 한다. 안중근 의사의 삶 자체를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 링링이나 설희 같은 허구적인 인물이 추가된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법정에서 진술한 기록들은 다 남아있지만 그 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다. 너무 자료가 없어서 일정 부분은 만들어내야 했다. 헤이그 밀사를 파견한 제국익문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밀 정보기관이다. 헤이그 밀사 사건이 실패하면서 일본이 없앤 단체인데 이 단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하로 숨어들었다고 가정했다. 그 조직에서 설희를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드라마보다 비주얼이 강조된 작품이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펙터클이다. 볼거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넥스트 투 노멀>같이 비주얼은 별로지만 스토리가 좋은 작품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중극장 정도의 규모니까 가능한 것이다. 대극장에서는 비주얼이 절대적이다. 야마카시 장면에서 층별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입체감을 주고 영상을 사용해서 스피디하게 전환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현대물에 맞게끔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야마카시가 나온 것이다. 기차는 무조건 나와야 했다. 실물 기차가 무대에 나와서 기차 내부와 외부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매직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외국 관객들도 보고 감탄했던 장면이다.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 무대, 조명 모든 게 맞아떨어졌을 때 좋은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이천에서 공연 한 달 전에 세트를 만들어서 실험했다. 그래서 최대한 오차를 줄일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만으로 드라마적인 재미를 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궁녀 설희가 스파이가 된다거나, 링링과 안중근의 러브 라인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작품을 분석하면서 보는 사람들은 설희나 링링이 억지스럽지 않냐고 이야기하는데 일반 관객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뮤지컬은 완벽한 스토리를 갖기 어렵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데 크게 저항감이 없으면 된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다 지키면 무슨 이야기로 채울 수 있겠나. 그렇다고 이토의 수양딸이었던 배정자 같은 인물을 채워 넣을 수는 없었다. 이토를 영웅으로 비중 있게 다루다 보니 그에게도 여자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설희를 안중근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여러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안중근-링링, 이토-설희 쌍을 이루는 것으로 최종 결론 냈다. 링링이 안중근을 사모하지만 또 같은 또래의 유동하가 링링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서 어색함을 줄이기도 했다. 설희가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영상미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거기서 우는 사람들도 꽤 있다. 상황이나 인물들이 관객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인물의 개연성은 중요하지 않은가.
뮤지컬은 노래와 춤, 비주얼이 담겨 있는 장르다. 거기에 퍼펙트한 드라마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연극이라면 구조를 쌓아갈 수 있으니까 가능하다. 뮤지컬은 그런 구조나 논리보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과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영웅>처럼 무게 있는 작품들은 특히 가슴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모든 게 완벽하게 나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겠지만 선택이 필요하다. 특히 역사적인 인물을 다룰 때는 마음대로 창조할 수 없어서 더 그렇다.

 

<영웅>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부분이 고난을 당당히 맞서는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이다. 마치 위인전을 읽은 듯한 찡한 감동을 주는데 역설적으로 우리와는 너무 다른 위인이다. 인간적인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여기서 안중근이 더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장면을 넣으면 ‘쟤는 늘 고민만 하는 인물’이 되어 버린다. 왕웨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성당 장면에서 조국이 뭐길래 나를 붙잡아 매고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고민하고 갈등하면 5시간짜리 작품이 나와야 된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애국주의적인 정서가 강한데 이토 히로부미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 역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영웅으로 표현했다.
이토 히로부미 역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영웅이고, 역사의 희생자이다. 그런 것을 균형있게 다루어야 해외에서 보편성을 얻는다. 안중근의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되기 위해서 상대방 역시 그만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실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에 대해서 사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영혼을 등장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공연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니까 둘이 만나 각자가 각국의 군인으로서 할 일을 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원래는 이 장면을 맨 처음 장면으로 넣을까도 했지만 연극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뮤지컬에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전체적인 드라마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았는데, 이토의 영혼과 안중근이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면 이 작품의 메시지가 더 분명해졌을 것 같다.
명료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정적인 장면에서 정적으로 끝나면 지루해질 수 있다. 연극이라면 가능하다. 단지동맹은 음악 자체도 스케일이 크지만 피를 끓게 하는 장면이다. 스펙터클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다. 내가 워낙 자작나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작나무 자체가 한민족의 신단수이다. 시베리아 북쪽에서 단지(斷指)를 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작품 구조에 대해서는 한 2년간 고민했다. 장면이 구성되면 무대에서 가능한지 확인하고 또 장면 전환은 얼마나 걸리는지…, 디테일로 들어갈 때는 장면 전환이 많이 걸리면 문제가 생긴다. 그런 점까지 다 계산하고 했는데도 공연 때가 되면 또 문제점이 발견된다. 뮤지컬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을 누구나 바라겠지만 기본적으로 볼거리를 충족해줘야 한다.

 

국내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국내 관객들과 해외 관객들이 반응하는 지점이 다를 것 같다.
<명성황후>를 가지고 해외 나갔을 때도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극장에서 만난 한 외국 할머니가 공연을 보면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나치와 유태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수치스러운 역사일 수 있는데 극화해서 극복한 점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똑같다. 게다가 <영웅>은 <명성황후>보다 더 심플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천국의 눈물> 연출자가 보고는 미국 사람들이 많이 움직일 거 같다고 얘기하더라. 미국 사람들이 복수나 암살 이런 소재에 민감하지 않나.

 

 

 

 

 

 

 

 

 

 

 

 

 

 

음악이 나오는 물리적인 시간이 길다. 성스루(Sung-Through)로 시도할 생각도 있었나?
<영웅>은 애초부터 성스루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명성황후>는 처음부터 성스루를 선택했다. 사극이기 때문에 궁중 언어를 써야 하는데 그것을 안 쓰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성스루로 갈 수밖에 없었다. <영웅>을 성스루로 가지는 않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에 대해 안중근이 밝히는 부분은 무조건 노래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하면 지겨워서 듣기 힘들었을 텐데 음악이나 안무가 첨가되면서 의도했던 대로 잘 처리되었다.

 

음악 컨셉은 어떻게 잡았나?
작품을 만들면서 작곡자나 음악감독이 여러 명 교체되어야 했다.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와 맞지 않는데 계속 함께 작업하기는 힘들었다. 나도 많이 힘들었지만 관객들을 생각하면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를 알아보고 있는데 조연출이 몇 곡을 들어보라며 음악을 건네주었다. 몇 곡은 당장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작곡가를 불러 대본을 주면서 대본 읽고 가슴이 뜨거워지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날 돌아가면서 <영웅> 테마곡이 떠올랐단다. 작곡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기념관도 가고 여순 감옥도 다녀왔다. 그런 체험을 거쳐 노래가 나온 것이다.

 

몇몇 곡들은 귀에 남는데 전체 노래 구성으로 봤을 때 아리아 중심의 곡들이 많았다.
노래 구성도 다 계획한 것이다. 솔로 다음에 중창이나 대 코러스를 넣고, 대 코러스가 웅장하지만 계속 나오면 듣기가 좋지 않다. 어느 부분에서는 서서히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몇 명이 부르는가도 조절해서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끔 음악 구성을 한 것이다. 어떤 길이로 몇 명이 부르느냐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적절히 구성한 것이다.

 

시대물인데도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명성황후>가 아날로그적이라면 <영웅>은 디지털적이다. 무대 기술이 상당히 세밀하고 정교하게 들어가 있다.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맞추기 위해서 정교한 무대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하얼빈 역 장면이나 야마카시 장면에서도 이동 판넬에 전개되는 영상들은 현지에 가서 찍어 온 영상을 투사한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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