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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천변 카바레> 주크박스 뮤지컬의 또 다른 길 [N0.88]

글 |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2011-01-04 5,530

가수 배호의 노래를 중심으로 엮은 음악극 <천변 카바레>(강헌·박현향 작, 김서룡 연출, 말로 음악). 40년도 더 지난 1960년대의 대중가요를 그저 그런 이야기에 대강 엮어놓은, 중장년 타깃의 뮤지컬로 무시되기 쉽지만, 사실 ‘배호 노래로 만든 <천변 카바레>’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세 가지의 국내외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정도이다.


첫째, 카바레라는 공연 형태. 우리나라에서 카바레(Cabaret)란 음습하고 다소 퇴폐적 분위기가 흐르는 성인 댄스홀 정도로 통용되나(‘장바구니 들고 카바레 출입하는 아줌마’라는 말은 얼마나 익숙한가!), 원래 카바레란 말이 나온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 그것은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오락적 공연이 가능한, 술을 파는 대중음식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처럼 댄스홀로서의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작은 무대에서 제공되는 공연이다. 공연 형태로서의 카바레란, 프랑스나 독일 등의 카바레에서 공연되던 공연물의 형태라고 보면 적합하다. 음악이 중심이 되고,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공간에서 이루어질 법한 외설부터 정치 풍자까지 다양한 형태의 재미있는 얘기들, 간단한 연극적 공연들이 뒤섞인 그런 종류이다. 따라서 오페라, 오페레타, 뮤지컬 등의 본격적인 음악극처럼, 음악과 연극의 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복잡한 구조의 공연 형태라기보다는, 노래와 이야기, 간단한 연극적 장면과 춤 등을 엮어가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공연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실험적이거나 반정부적이거나 동호인적인, 뭔가 공식적으로 멋지고 거대하게 폼을 잡는 공연물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카바레에서 솟아올랐다.


<천변 카바레>는 그렇게 소박한 형태의 공연물이다. 뮤지컬로 분류하자면 인기 대중가요를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지만, 보통의 뮤지컬들이 지닌 여러 요소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노래를 중심으로 이야기와 약간의 연극적 장면들로 엮은 작품이다. ‘카바레’는 유럽적 의미에서 공연의 형태를 말해주는 동시에, 이 작품의 배경을 한국의 카바레로 설정함으로써 양수겸장의 효과를 노린다.

 

 

 

 

 

 

 

 

 

 

 

 

 

 

 

 

 

 


둘째, ‘천변’이란 말은 이 작품에 들어온 경로가 좀 더 복잡하지만,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좀 단순하다. <천변 카바레>는 2010년 3월 같은 제작 주체들이 초연한 카바레 형태의 음악극 <천변살롱>의 후속작이다. <천변살롱>은 음악감독 하림이 반주를 하는 것에 맞추어 배우 박준면이 노래와 이야기, 연기 등으로 엮어가는 작품이었고, 노래는 모두 1930~40년대의 만요(漫謠, 코믹송)로 채워졌다. 식민지 시대 만요의 상당 부분이 당시 경성의 모던한 풍경들을 담고 있었고, 따라서 이 작품은 바로 고풍스럽고 촌스러우면서도 나름 세련된 1930~ 40년대 ‘모던 경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쯤 되면 ‘천변’이란 말의 출처를 조금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시대에 집필된, 박태원의 대표적 장편소설 『천변풍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천변’이란 ‘청계천변’을 의미한다. 드라마 <경성 스캔들>, 영화 <모던 보이>, <라듸오 데이즈> 등이 활발하게 만들어질 정도로 최근 몇 년 동안 ‘모던 경성’ 붐이 일었는데, 이때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은 필수 참고 자료였다. 따라서 <천변 카바레>의 ‘천변’은 내용과 관련 있다기보다는, 한국 근현대 문화사를 더듬어보겠다는 약간의 인문학적 포즈 같은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사실 이 작품을 이룬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은 바로, 가수 배호의 노래들이다. ‘배호’라는 이름을 들어본 세대라면 아마 40대는 족히 될 것이다. 배호는 이미 40년 전에 타계한 가수이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등의 인기곡을 남긴 1960년대 말의 가수로, 어찌나 그 노래들이 인기가 높았던지 서울의 삼각지에는 ‘배호길’이라는 명칭이 생겼을 정도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의 노래를 듣기가 매우 괴로울 것이다. 1960년대 중년 남성의 느끼한 목소리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저음에서는 낮고 심한 바이브레이션에, 고음으로 올라가면 꺽꺽거리는 애절함이 있는 창법을 구사했다. 지금의 40대나 50대 초반들도, 그 ‘공포의 바이브레이션’을 웃지 않고 듣기란 꽤 힘들다. 같은 계보의 남자 가수라도, 최희준이 들려주는 냇 킹 콜 같은 세련됨, 남진이 보여주는 발랄함과 다른, 다소 노골적인 신파적 비극성이, 심금을 좀 웃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인기가 많았고, 그의 인기는 만 29세의 아까운 요절로 절정을 이루었다. 무명 생활을 지나 인기가 오른 1967년 무렵 신장이 나빠진 그는,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면서 3년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신곡을 발표할 정도로 인기가 충천했다. 그의 장례식 사진이 실린 옛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 인산인해를 이룬 장례 행렬에는 적지 않은 젊은 여성 팬들이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남진의 오빠부대 이전에 가장 화려한 오빠부대를 거느렸던 최고의 스타였다. 그가 죽은 후, 1990년대까지도 배호 노래를 모창한 음반이 불티난 듯 팔렸고 방송국 피디들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배호의 팬 사이트는 아직도 짱짱하며, 팬들이 지금도 매해 그의 기일을 챙겨 성묘를 다닌다. 그 정도로 그는 요절 신화의 절정에 선 가수였다.


이번 <천변 카바레>의 최고 장점은, 자신들이 못하는 것을 포기하고 잘하는 것을 잘 챙겼다는 것이다. 즉 대중가요 관련자들로, 까다롭고 어려운 뮤지컬과 연극의 문법을 애초에 포기했다. 대신 아주 소박하게 노래와 이야기를 엮은 카바레 방식을 택한 것이며, 이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노래 중심의 뮤지컬들이 어정쩡하게 만들어놓은 연극성이 얼마나 민망한지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깨끗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주크박스 뮤지컬답게 노래로 승부한 것이다.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은 좋은 노래를 고르는 것, 그 노래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내용과 분위기의 흐름, 음악적 배려를 만들어주는 것, 이 두 가지를 충실히 해냈다. 이는 <달고나>, <행진! 와이키키브라더스>가 겨우 성취했고 <진짜 진짜 좋아해>, <젊음의 행진>이 완전히 실패한 바로 그 지점이다. 대개 옛날 대중가요를 가져다 놓으면 대중적 인기가 저절로 생길 것으로 판단하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와이키키브라더스>가 초연을 거쳐 <행진! 와이키키브라더스>로 수정을 거듭하며 채워 넣은 주옥같은 노래들이 1980년대를 확실히 잡아낸 것을 기억하면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실패한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대중가요의 제목이나 부분적 가사에만 집착했을 뿐 실제 그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정조의 섬세한 지점, 노래가 지녔던 당대 문화사적 의미 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경우였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강헌이 대본 작가로 참여함으로써, 배호 노래의 섬세한 지점과 그의 대중음악사적 위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노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기본 내용의 흐름을 잡는 게 가능했으리라 본다. 배호 노래의 모창에서 출발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데에 성공한 최민철의 가창력은 중노년 관객을 만족시켰고, 여기에 재즈 아티스트 말로가 편곡하고 변주하여 들려준 ‘보고 싶은 얼굴’ 등은, 배호의 트로트적 분위기만으로는 다소 만족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음악적 만족감을 주었다.


물론 연극적으로 단순하다는 것은 결코 미덕은 아니다. 희극적인 <천변살롱>과 달리, 비극적 몰입이 이루어져야 하는 배호 노래를 선택한 이 작품에서, 관객을 이야기의 내용 안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약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울리는 것을 크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몰입은, 연극적 연출을 보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대사가 주는 언어적 감동력으로라도 해결해야 한다. 옛 대중가요를 그저 촌티 패션과 결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지금까지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겹쳐놓은 감동력을 발휘해야만 흘러간 대중가요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성공할 수 있다. 중년들이라고 그저 하룻밤 입장료를 쉽게 쓰는 허랑한 관객은 아닌 것이다. 이들의 ‘천변’ 시리즈는,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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