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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 인사이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부딪히고 깨져서 밝아오는 빛 [No.86]

글 |박병성 사진제공 |스토리피 2010-11-09 5,995

2000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이 10주년을 맞았다. 김광보, 고선웅, 조광화 등 대표적인 국내 중견 연출가들이 거쳐 간 <베르테르> 10주년 공연은 <씨 왓 아이 워너 씨>와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참여했던 김민정 연출가가 맡았다. <베르테르>는 지난 10월 초 안산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마치고 10월 말 서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베르테르> 팀이 서울 공연 연습에 여념이 없는 남산 연습실을 찾았다.

 

 

[더뮤지컬]극본에 미세한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대본 수정을 했나요? 특히 자석산에 대한 전설이 추가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김민정]
연출자가 텍스트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요. <베르테르>가 지난 10년 동안 공연하면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더라고요. 어떤 버전에서는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자석산의 전설은 이전에 있던 이야기에요. 제가 넣은 부분은 클롭슈토크의 시 딱 한 부분이에요. 괴테의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뮤지컬로 넘어오면서 없어졌어요. 시와 예술과 영혼의 교감이 롯데와 베르테르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소설 속에서는 둘이 끊임없이 자연과 문학과 예술을 교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의 대본은 그런 면들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호메로스의 책을 선물하는 이야기도 꼭 넣어달라고 했어요. 지금의 롯데에게는 원작이 지닌 예술성 넘치는 영혼이 보이지 않고 예쁜 소녀 정도. 사실은 그 이상의 의미거든요. 독립적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모성애도 가지고 있는.

 

괴테의 원작에서 빠져 특별히 아쉬운 이야기가 있나요?
원래 롯데에게 동생들이 있어요. 베르테르는 죽은 엄마가 롯데에게 부탁하고 간 동생들과 놀게 되면서 롯데와도 친해지게 되거든요. 롯데와 베르테르는 아이의 세계, 시의 세계, 예술의 세계를 교감하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에요. 베르테르가 롯데 얼굴 보고 반하는 그런 게 아닌데, 지금은 약간 첫눈에 반하는 분위기를 주고 있어요. 베르테르가 그 정도 인물은 아니거든요. 발하임이나 도시에 예쁜 애들이 많았을 텐데 그 정도에 반했겠어요.
(김민정 연출은 이 작품을 맡게 된 것은 괴테의 원작 때문이었다며 자신이 읽은 소설책을 가져왔다. 소설책에는 중요 문구를 체크해 놓은 클립들이 가득했다. 그러고는 클롭슈토크의 시 장면에 대해 들려줬다.)
한 번 읽었는데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어요. 그리고 인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 두고 찾아보면서 봤어요. 클롭슈토크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은 원래는 그냥 비 천둥이 치고 나면 롯데가 딱 한 마디 해요. “클롭슈토크!” 그러면 베르테르가 “난 앞으로 그 누구의 입에서도 당신(클롭슈토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희는 클롭슈토크라고만 해서는 부족하니까 클롭슈토크 시를 인용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제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빛을 향하여 치솟아 오르리라’라는 구절을 선택했어요. 전 베르테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간 곳이)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들에게도 빛의 세계라고 얘기하거든요. 연습할 때도 베르테르가 죽는 거라고 말을 못했어요. 베르테르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누구에겐 어둠이고, 누구에겐 빛이고, 또 누구에겐 이 찬란한 순간에 멈추는 것이고 멈춤으로 영원해지는 것이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빛이 되어 솟아오르리라’라는 구절을 선택했어요. 이 구절을 베르테르가 죽기 전에 한 번 더 해요. 제가 대본에 첨가한 것은 이 구절 하나예요. 근데 여러 번 사용했죠.


 

놀랄 만하게 변한 캐릭터가 오르카예요. 그전에는 모진 풍파를 거친 여자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내적으로 순화시킨 인물처럼 느껴졌어요. 말에서 힘이 많이 빠지고 부드러워졌어요. 같은 배우인데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최)나래는 마음이 예민하고 섬세한 배우예요. 그 배우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그랬어요. 근데 자신이 가진 기본 본성 말고 외적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배우의 기질과 배역이 만나는 지점이 잘 이루어져야 해요. 그래야 캐릭터가 나의 것이 되거든요. 일단 밖으로 표출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니까 자기와 만나는 지점을 잘 잡지 못했던 거 같아요. 처음 연습부터 밖으로 뿜어내는 것을 보여주길래 일단은 드라이하게 하는 것부터 시켰죠. 감정 빼고, 중성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처음에는 이런 연습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저희 드라이 리딩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한 3주도 넘게 했을 걸요. 처음부터 감정 다 쓰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아직 그 배역이 무엇을 느꼈는지 몰라요. 모르는 게 정상이에요. 미리 앞서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합시다. 그리고 스케치하고 즉흥 연기 하고 다시 드라이 리딩 하고. 그런 식으로 연습실에서 서서히 형태가 만들어지는 시간들이 참 행복해요.


드라이 리딩의 효과일까요. 인물들의 성격이나 감정이 깎아낸 듯한 정교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박건형 씨도 그랬던 거 같아요. 기존에 자기가 해왔던 연기와 다르니까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일단 모르는 상태로 지우는 순간까지 시간이 필요해요. 지우고 그러다 보면 서서히 떠오르게 되는데 제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였어요. 흐름 속에 있어야 하고 멈추지 않아야 하고 무엇이 서서히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잡아내야 해요. 왜냐하면 저도 뭐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제가 모르기 때문인 거 같아요. 배우들도 처음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가 저 사람은 원래 저런가 보다 해요. 하다 보면 나오고, 나오면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기쁘고 그런 과정들의 연속이죠. 그러다 보면 나는 베르테르도 아니고 박건형도 아닌 어떤 지점 속에 있는 거죠. 어제 문득  박건형 씨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묻더라고요. (박건형) 제가 뭘 하고 있나요./ (연출) 베르테르/ (박) 모르겠는데요./ (연) 아! 그래. 그럼 넌 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참 있다가) 대본과 악보 그리고 우리가 나눴던 눈빛 속의 이야기들이요./ 가장 정확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자기가 베르테르인지 박건형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 많은 순간들 속에 머물러 있는 거죠. 사실은 배우에게 나와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의 연출가들이 취하는 방식하고는 많이 다른 스타일이네요. 보통 연출가들은 브로킹을 정하고 배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잖아요.
그래서 제 방법을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렇게 가라는 것이 아니라 글쎄 뭘까, 일단 해보자고 하니까. 하지만 난 목표점은 분명히 알아요. 배우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정 모를 때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는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꼭 이 길을 통해서 목표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마다 길은 다양할 수 있어요. 누구는 이렇게 저렇게 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구불구불 갈 수도 있어요. 그 길을 배우들이 찾아서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에요. 배우가 목표점을 찾지 못하면 내가 준비한 길을 찾아 걸으라고 하겠죠. 그런데 아마 내가 처음부터 이 길을 준다면 배우들은 다른 길에 대한 탐색조차 하지 못할 거예요. 그것처럼 재미없는 일이 어디 있어요.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영혼을 가진 존재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그 한 명 한 명을 아름다운 영혼보단 좀 도구적으로 대하죠. 배우들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을 펼쳐내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속상하죠. 그냥 저지르면 되고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들인데.


이번 작품은 상징적인 장면이 많았어요. 처음 장면부터 그랬어요.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움직임을 보여줘요. 그들의 움직임이 동일하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들이 전달하려고 하는 정서는 동일하게 느껴졌어요.
오버추어 장면에서는 배우를 보여준 거예요. 공연은 막이 열리면 인물로 들어가야 하는데 최전선에 인물이 아닌 배우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출발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 오버추어가 극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여기에서 배우들은 각각의 인물로 들어가는 거죠. 주요 배역이 있고 앙상블이 있지만 그 순간은 다 공평하고 무대와 객석이 같은 지점에서 출발해요. 배우로 시작해서 배우로 끝나는, 그리고 모두가 똑같다는 것. 배우들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주어진 정서는 달랐어요. 누구는 사랑이고 누구는 그리움이고 입장이 다 다르죠. 하지만 어느 순간에 주제어만 반복하게 했어요.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사랑이죠. (동작을 설명하는 말) 가슴. 주고. 다시 돌아오고. 보고. 하늘에 있고. 담고. 이런 것들은 모두가 가야 하는 베르테르의 주제어였어요. 에필로그 장면에서는 배우들에게 당신과 베르테르와 어떤 관계인지 보여 달라고 했어요. 당신이 베르테르라고 생각하세요.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보여주세요. 여러분 모두가 똑같았고 모두가 주인공이었어요. 오버추어와 에필로그는 저에게는 어떤 장면보다 의미가 커요. 모든 배우가 중요한 존재예요. 당신은 앙상블 이상이어야 해요. 거기서 배역 이상의 힘이 나오고 그것이 프로덕션의 힘이에요.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이전 작품하고 가장 달라졌던 점이 롯데와 베르테르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했다는 거예요. 끝까지 방황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확신하죠.
사랑인지 아닌지 미완인 채로 남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러나 전 롯데가 베르테르를 사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확신한 내용이었어요. 사랑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미완인 채로 남겨둘 수 있겠어요. 그것은 추호의 의혹도 없었어요. 소설 속에서만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도 다 나오잖아요.

 


롯데와 베르테르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2층에는 알베르트가 의자에 앉아 있고 그곳으로부터 길게 늘어뜨린 하얀 천, 그 위에서 기도를 하는 롯데 그리고 물을 첨벙이며 건너온 베르테르가 키스를 하죠. 상징적인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는데 저는 이들이 어디에서 키스를 하느냐가 궁금했어요.
천 위에 올라가서 해요. 경계를 넘어가야 하는데 누가 넘어가야 하는지도 중요했어요. 롯데가 넘어가기도 하고 베르테르가 넘어가기도 해요. 이건 여전히 바뀔 여지가 있어요. 지금은 베르테르가 포옹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고 롯데가 먼저 키스하는 것으로 정리했어요. 서울 공연에서는 롯데에게 더 뜨겁게 키스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순간이 아니면 베르테르는 사라질 거야. 그럴 때 넌 어떻게 키스하겠어. 그 순간을 보고 싶어. 원래는 그 장면 전에 베르테르와 알베르트가 만나는 장면이 있었어요. 베르테르는 카인즈로 인해 굉장히 많은 길을 헤매고 탈진된 상태로 왔어요. 이 장면은 밤이고 전 베르테르와 알베르트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둘이 만난 후 나누는 키스신이 로맨틱하지 않을 거 같았어요. 그리고 침실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하얀 천은 침실의 연장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롯데가 면사포를 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이 장면에서 베르테르와 롯데가 결혼하는 이미지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하얀 천이 면사포 또는 침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알베르트와 롯데의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알베르트가 2층에 묵묵히 앉아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하얀 천은 결혼이라는 약속의 공간이고 질서의 공간이라고 봤어요. 자유롭고 낭만적인 사랑이 약속의 공간을 깨고 들어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이 어디서 키스를 하고 누가 그 공간을 깨는지가 궁금했어요.
어떻게 보든 상관은 없어요. 오히려 여러 가지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것 같아요.

 

장면들이 거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까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베르테르가 거의 퇴장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퇴장한 다음에 암전했는데 이제는 나가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러닝 타임이 줄었어요. 베르테르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무대에 등장하고 있어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무대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면 한두 장면은 퇴장시킬 거야. 그랬더니 어차피 퇴장한다고 감정선을 깰 수도 없으니 무대 위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상관없대요. 그래서 그러면 무대 위에 있어. 그게 좋겠다고 했어요.


 

자석산의 전설의 이미지가 강렬했어요. 난파된 배와 죽어간 선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대가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의 이미지로 보이나요? 배를 꾸민 거였어요. 저는 작품 중에서 자석산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게 남았거든요. 무대도 이와 연결을 시키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무대 컨셉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했던 무대를 변형하는 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석산과 연결된 컨셉을 찾고 싶었어요. 다른 일 때문에 호주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이번 공연은 여기까지가 우리 몫인 거 같다고 하고 갔는데, 무대디자이너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나 봐요. 혼자 던져준 컨셉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여러 가지로 고민을 했더라고요. 그때 마침 무너진 무역센터 건물 부지 밑에서 난파된 배 파편들이 발견됐대요. 그런 이미지가 연결되면서 지금의 무대가 나온 거예요. 연출의 역할은 해석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나하나의 동선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진짜 연출의 역할인 거 같아요. 저에게는 그것이 자석산이었어요.

 

모든 작품을 그렇게 다 해석할 수 있나요?
고전은 해석할 것이 있어요. 고전을 공연하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어요. 제가 과거로의 여행을 좋아해요. 내가 열리면서 레퍼런스가 들어오는 것을 즐겨요. 히스토리가 길면 길수록 거기에서 발견되는 순간들이 정말정말 많아요. 고고학자 같아요. 사학은 증거들을 고증하는 것인데 고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에요. 현대사는 남아있는 증거가 넘쳐나기 때문에 그것을 재정리해서 입장을 만드는 것이고, 고고학은 남아있는 자료들이 너무나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의 간격을 메워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해요. 고전은 해석할 여지들이 많죠.

 

버전마다 노래 사용이 다른데 이번에는 ‘어쩌나 내 마음’ 대신 ‘오 롯데’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이게 뭐야’나 ‘소문은 바람을 타고’ 같이 그동안 잘 쓰지 않던 곡들을 사용했어요.
<베르테르>의 음악은 제가 보기에 구성이 다이내믹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템포감이 평이해요. 그리고 리프라이즈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죠. ‘이게 뭐야’ 대신 원래 리프라이즈 되던 곡이 ‘뭐였을까’였어요. 발라드 형식의 음악이 대부분이고 인물들의 테마곡도 주로 그런 식인데 그것을 리프라이즈까지 하니까 평이해서 이번에는 곡에 변화를 많이 줘봤어요. 노래가 정박인 것들이 많아요. 변박이나 템포감이 있는 곡들이 필요해서 ‘이게 뭐야’나 ‘소문…’을 선택했어요. 그 곡들이 좋아서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런 음악이 필요했어요.


 

베르테르가 알베르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은 공감하기 힘든 장면이에요. 이번에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양식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던 게 맞아요. 알베르트, 롯데, 베르테르 모두 정면을 보고 있는데 정면 앞에 상대방의 타깃이 분명히 있어야 해요. 그러면 질감이 달라지면서 밀도가 달라져요. 원했던 것은 베르테르의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자는 것이었어요. 좀 더 디테일하게 보면 베르테르가 자신에게 총을 겨눌 때 알베르트가 문에서 나오지 않고 총이 걸려 있는 벽에서 나와요. 나오면서 ‘빵’ 하는데 이때 에코를 넣어서 임팩트를 줄까도 했다가 감정을 넣지 않고 드라이하게 풀었어요. 감정적으로 복잡한 장면인데 저는 건조하면서 차갑게 푼 느낌이 좋아요. 그 장면에 연주곡이 들어오는데 편곡자님께 필립 글래스의 음악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성적이고 반복적이고 몽환적이면서 몽롱했으면 좋겠다고. 


그동안 이해하기 힘든 장면 중 하나였는데, 비현실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장면이 광적인 심정을 납득하게 해준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을 보면서 베르테르라는 인물이 얌전하게 잘 자란 인물이 아니라 좀 예민하지만 광기 있는 인물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광기 있는 인물이죠. 괴테가 이 책을 썼던 당대 자체가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그때가 광기와 로맨스의 폭풍, 이성과 감성이 뒤섞인 시기였잖아요. 괴테가 쓴 베르테르는 예술가예요. 그림과 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제도에 대한 불만과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순수함. 이런 것들이 뒤엉켜 있는 사람인데 사랑이라는 테마 속에 가둬둔 것은 좀 안타까운 부분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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