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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도도>, 또 하나의 ‘학전’표 뮤지컬을 기대하며 [No.86]

글|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사진제공|극단 학전 2010-11-05 6,268

극단 학전의 뮤지컬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소 남다른 기대를 갖는다. 거기에는 장유정, 윤호진 등의 뮤지컬에서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두 개의 소극장 학전의 공간이 만들어낸 상당히 일관성 있는 색깔이, 학전이라는 브랜드의 안정감을 만들어내는 데에 크게 일조한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장기 공연 성공과, 여전히 신화 속에 있는 김민기라는 창작자에 대한 신뢰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든든한 바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초연된 신작 <도도>(강정연 원작, 배삼식·김민기 극본·가사, 고찬용 음악, 홍세정 안무, 김민기 연출)는 또 하나의 학전표 뮤지컬의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다소 기다림이 길었다 싶다.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뛰어난 노래 창작자 김민기가 연극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에게 뮤지컬은 숙명처럼 주어진 숙제였을 수 있다. 1978년, 음반심의를 받지 않은 카세트테이프와 교회 공간에서의 공연으로만 발표된 ‘불온한’ 뮤지컬 <공장의 불빛>은 그런 기대를 더욱 높여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대표적인 뮤지컬은 번안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이었고, 이후 비교적 롱런에 성공한 <의형제>, <모스키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여러 번 공연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미완성처럼 보이는 <개똥이>는 극본·작곡·연출을 모두 떠맡는 방식인 김민기 1인창작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지하철 1호선>이 종연한 후 학전그린을 채우고 있는 뮤지컬 <빨래>가 이제는 마치 학전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지만, 설사 그 색깔이 흡사하다 할지라도 이 작품은 우연히 들어온 일종의 입양아이다. 그렇다면 정작, 번안이 아닌 학전의 창작 작품으로서 성공작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럼 이번 <도도>가 성공한 학전의 창작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일정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학전의 특유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참에 학전 뮤지컬의 특성을 한 번 짚어보고 싶어진다.

 


학전의 작품은, 이 세상에 남녀 간 혹은 가족 간의 사랑 말고도 절실한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마치 김민기의 노래에는, 단 한 곡의 (남녀 간의) 사랑 노래를 찾을 수 없듯이, 학전표 뮤지컬과 로맨틱 코미디는 그만큼 먼 거리로 느껴진다. 이번 <도도> 역시 유기견의 이야기를 표면에 설정하여, 한편으로 상대편을 물건이나 장난감 취급하는 세태를 반성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존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의 주류가 아닌 약한 존재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학전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인 셈이다.


학전의 작품은, 대개 극작과 음악 모두 삽화적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보다는, 세상의 구석구석에 눈길을 머무는 여행의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극본도 여러 삽화들이 어우러진 연속성을 띠고 있고, 음악도 여행을 기록한 사진첩처럼 다앙한 양식을 동원하여 세상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도도>의 고찬용은 김민기와는 다른 색깔의 창작자이면서도 재즈에서 국악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음악의 폭을 보여준다.


학전 뮤지컬의 음악은, 악기 하나만이라도 생음악 연주를 고집하고, 그 연주자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연출적으로 늘 상기시켜준다. 장면과 장면의 사이, 무대에 불이 꺼질 때 무대 뒤 연주자를 조명으로 잠깐씩 노출시킴으로써, 악기 연주 역시 배우들처럼 무대 위에 호흡을 함께하는 존재임을 계속 일깨워준다. 이번에는 키보드 주자 한 명만 생음악 연주를 보여주어, 다른 학전 작품에 비해 생음악 연주의 비중이 적기는 하지만, 연주자의 존재를 번듯번듯 드러내는 연출은 여전하다.


학전 뮤지컬의 음악에서 중심은 사람의 소리, 특히 말소리이다. 악기 연주의 소리는 배우들의 소리를 압도하거나 짓누르지 않는다. 배우들의 노래 역시 일반적인 대사의 목소리로부터 크게 일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악기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하다는 느낌을 주고, 노래만 시작하면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는 뮤지컬 배우들의 불편함이 학전의 뮤지컬에는 없다.

 


학전의 뮤지컬은 그 자체로 화려한 미장센이 아니라, 소극장 연극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연극적 미장센을 보여준다. 그것은 늘 학전이라는 소극장에서만 공연할 수 밖에 없다는 제약 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치장을 거부하는 태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하철 1호선>이 (원작에도 그러했듯이) 지하철 내부를 모사한 긴 좌석을 춤출 수 있는 연극적 공간으로 이용했다면, 이번 <도도>에서는 다용도로 사용 가능한 정글짐 같은 사각 프레임들로 다양한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객석이 무대의 위편에 위치해 있으므로 위 공간을 휑하게 비워놓지 않고, 그러면서도 배우들의 몸놀림에 거추장스러워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고려하여 기능적인 무대미술을 만들었다.


이렇게 소극장 연극의 연극적 미장센을 고집할 때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춤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가 너무 가까워, 대극장에 걸맞는 뮤지컬적인 안무는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도도>의 안무도 춤처럼 느껴지지 않는 춤을 기본으로 하면서, 마치 삼면무대에서와 같은 공간운용으로 무대와 밀착한 관객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 있다.


<도도>는 이런 학전 뮤지컬의 특성을 고루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잘 되면 학전의 창작 뮤지컬의 한 디딤돌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학전 뮤지컬의 특징이야말로 나름의 학전 마니아 이외의 사람들을 다소 답답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무대 세트와 춤의 화려함을 애당초 포기한 뮤지컬, 빵빵한 음향의 압도하는 느낌을 거부하는 뮤지컬, 달착지근한 사랑의 판타지에 빠지지 못하게 하고, 눈감고 싶은 세상의 진실에 대해 알려주는 불편한 뮤지컬, 콘서트를 즐기듯 공연을 볼 수 없도록 관객에게 연극관객으로서의 태도를 요구하는 편치 않은 뮤지컬이 바로 학전의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도>를 비롯한 학전의 뮤지컬이 자신의 특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걸 포기하면 이미 학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들만의 이런 특성을 꿋꿋하게 지켜내면서도, 그 특성이 이런 불편함과 불만을 누를 정도의 재미를 선사하도록 해야 한다. 어찌 보면 <지하철 1호선>과 <의형제>가 그토록 소소한 잔재미로 빼곡히 채워졌던 이유도 이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도도>는 그런 잔재미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담백한 연극 한 편을 보고 나왔다 싶은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지만, 이런 담백한 연극의 재미를 별로 즐기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관객이 도도한 유기견 도도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계속 따라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여행에서 만나는 여러 풍경들을 즐겨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힘들게 한다. 도도에 대한 감정이입의 힘으로 극을 끌어가기에는, 도도가 지니는 감정선이 약하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주인아줌마에게 버림을 받고 아저씨의 시골집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시 도도를 데려간 아줌마에게 오줌을 갈기고 집을 나와 애완견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과 식구를 이룰 인간을 찾아 나선 이후의 도도의 감정선은 훨씬 강해야 한다. 특히 상자 할아버지와의 만남 이후의 기쁨, 유기견 보호소를 뛰쳐나온 이후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그가 경험하고 깨달은 바가 제대로 그려져야, 그는 그저 불쌍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시건방진 개가 아닌, 의미 있는 일탈을 시도한 존재로서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학전에 대한 또 하나의 기대는, “설마 이 공연을 이번 시즌으로 끝내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이다. <지하철 1호선>이 징글징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계속되는 수정으로 환골탈태했듯, <도도>의 변신이 어디까지일지 기대해볼 일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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