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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김탁구빵’과 뮤지컬 <궁>의 공통점 [No.86]

글|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그룹에이트 2010-11-05 5,127

애초부터 내 잘못이다. <제빵왕 김탁구>를 재미있게 봤으면 거기서 끝내야 했다. 굳이 댓바람부터 ‘김탁구빵’을 사먹겠다고 빵집으로 달려 나갈 필요는 없었다. 이 모든 건 팔랑대는 습자지마냥 얇디얇은 귀 때문이다. 월드컵 때는 축구하고 싶고 아줌마들 밴드하는 드라마 보면 기타치고 싶어지니, 모락모락 구워내는 드라마 속의 빵을 보고 제빵 배우겠다고 달려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런데 겉보기에 오동통하니 맛있어 보이던 빵이 맛은 영 별로인 거다. 겉 포장은 분명 단팥빵인데 한입 베어 물어도 하얀 속살, 두 입 베어 물어도 여전히 뽀얀 속살이니 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단팥이 들어있다기보다는 묻어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만큼 단팥빵은 부실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김탁구빵’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파는 만큼 최소한 기획상품으로서의 미덕은 갖춰야하는 것 아닌가.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나는 단팥빵을 단팥빵이라 부르지 못했으니 오직 남은 건 김탁구의 웃음이 박힌 화사한 포장지뿐. 오호 통재라.


뮤지컬 <궁>을 보면서 ‘김탁구빵’이 생각났던 건 이 두 ‘작품’의 성격에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뮤지컬과 단팥빵이라는 결과물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를 모태로 삼아 태어난 작품들이니 이 둘의 태생은 같은 셈이다. 물론 뿌리로 따지자면야 뮤지컬 <궁>의 족보가 더 화려하다. 원작만화 <궁>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베스트셀러이고 드라마 <궁>도 섭섭잖은 시청률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니 이것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건 오히려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대중에게 검증된 콘텐츠이니만큼 다양한 장르로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더 확실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성공의 길을 걸으려면 먼저 족보 탐색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길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원조격인 만화 <궁>이 대중을 향해 길을 텄던 도구는 다름 아닌 이야기 자체의 깜찍한 상상력이다. 대한민국은 입헌군주국이다, 라는 상상의 토대 위에서 진짜 왕자가 등장하고 신데렐라가 탄생한다. 익숙하지만 고리타분한 사극의 코드가 발랄하고 신선한 왕실판타지의 배경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조선왕조의 대례복이 앤티크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흔히들 만화는 그림이 주가 되는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내 보기에 만화는 그림과 글이 함께 만들어내는 서사적인 장르이니만큼 이야기꾼다운 솜씨가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장르이다. 얼굴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큰 눈이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만화에서 시각성은 서사성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말풍선에서부터 글자의 굵기와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각적인 정보는 사건의 흐름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은 물론 상황의 풍경까지 세세하게 전달하는 용의주도한 서사의 도구인 것이다. 만화 <궁>의 길을 따르려면 판타지에 충실한 서사의 탄탄대로로 들어서야 한다. 그러면서 말풍선을 비롯한 시각적 기호들이 담당하는 디테일을 어떻게 뮤지컬의 언어로 풀어낼까 고민해야 하는 거다.


길은 또 하나 있다. 드라마 <궁>이 보여줬던 행로가 그것이다. 드라마의 길을 따른 전작들이 보여줬던 황망한 풍경들이 아직도 생생한지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성공한 드라마의 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무대에서 재연하기 위해서는 24부작으로 확보됐던, 충분히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의 풍성함을 어떻게 무대의 시간으로 압축할 것인지, ‘얼굴의 예술’이라 불리는 영상의 논리를 ‘목소리의 예술’이라 불리는 무대의 논리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화면의 선택과 음향의 삽입으로 만들어지는 서사와 서정의 공감각적인 맥락을 어떻게 뮤지컬의 화술로 완성시킬 것인지 답을 찾아야 한다. 자,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뮤지컬 <궁>은 만화와 드라마라는 두 갈래의 지류가 합쳐지는 지점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의 황당하리만큼 단순한 재미와 드라마의 꽃다운 비주얼을 정말이지 열심히도 비벼놓았다. LED에 말풍선을 띄우는 것이나 화면 속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대략난감’류의 신조어들, 주인공의 갑작스런 정지화면(난 멋있다!)에 음향과 바람까지 가세하는 대담하도록 유치한 시각효과는 영락없는 만화의 설정이다. 이런 설정은 때론 흥미로웠는데, 일례로 위에서 내려다본 채경이 방에서의 하룻밤 장면은 나름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만화적 설정을 확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주인공들의 비주얼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거다. 유노윤호는 말할 것도 없이 다른 배우들도 훌륭한 ‘기럭지’와 생김새를 자랑하더라. 

 


만화다움을 선택하든 드라마의 장점을 쫓아가든, 같은 콘텐츠의 전작이 제공하는 특징을 놓치지 않고자 했던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면을 취하면서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점이 어디인가 하는 데 있다. 바로 그게 문제인데, 뮤지컬 <궁>은 만화와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데는 부지런했지만 정작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는 현격히 떨어진다. 모양새는 분명 뮤지컬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공연다운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만화의 상상력이 무대의 상상력으로 번역되지 않았을 때 남는 건 보기에도 부끄러운 유치함뿐이다.


콘텐츠는 같다고 해도 장르가 달라질 때는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져야 하는 법이다. 만화의 말풍선은 공연의 무엇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드라마 속 클로즈업된 주인공의 멋진 분위기를 무대 위의 배우는 어떻게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지, 모든 것에 새롭게 접근했어야 했다. 하지만 고민의 흔적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만화와 드라마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강화시키는 데 그쳐버리고 말았다. 일례로 유노윤호는 황태자 이신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채 그저 동방신기 멤버인 아이돌, 그야말로 10대들의 황태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그쳤고, 쓰임새 많은 LED장치도 말풍선 띄우는 전광판에 불과했으니 이게 무슨 낭비인지 모르겠다. 배우가 아이돌이면 뭐하고 무대에 돈을 들이면 뭐하나. 이야기의 짜임새나 무대장치의 활용, 하다못해 재미있자고 설정한 조연의 애드립 등 어디에서도 공연다운 화술을 찾기가 어려운데 말이다. 주인공의 대사와 노래가 이렇게 없는 공연도 참 드물 거다. 노래와 안무의 빈약함도 그에 못잖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궁>이 뮤지컬로서 갖춘 미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유노윤호 하나 살리자고 다른 배우들을 모두 병풍으로 만들어버린 과감한 무례함은 적잖이 불편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뮤지컬 <궁>도 ‘앙꼬’ 없는 빵인 거다. 얄팍한 상술로 포장만 그럴 듯하게 만든 단팥 없는 단팥빵. 

 


‘김탁구빵’은 송편 빚고 남은 팥이라도 올려 먹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궁>은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나. 방법은 하나다. 이 작품의 유일한 ‘앙꼬’를 늘리는 것. 모든 주인공을 브레이크댄싱을 잘 추면서 팬클럽도 막강한 아이돌로 캐스팅하는 거다. ‘그가 거기에 있었네!’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그’를 무대에 세우는 순간 이 공연은 관객에게 나름대로의 신의를 지킬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공연을 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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