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군대 얘기는 언제나 무용담처럼 부풀려지고 한 번 시작되면 끝날 줄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체험해 본 적 없는 군생활의 이야기는 여성들에겐 가장 지루한 이야기 중 하나이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군대와 군인들, 그들이 축구 하는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망라된 뮤지컬 한 편이 열띤 호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다. 바로 SM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스페셜레터>가 그것인데, 진부해 보일 수 있는 군대 이야기로 어떻게 여성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핵폭탄급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지 눈여겨볼 만하다.
늦깎이 군인으로 입대를 하게 된 ‘철재’는 한참이나 어린 ‘김상호’ 병장에게 사사건건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인데,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는 김병장의 압박에 못 이겨 친구인 ‘정은희’를 소개시켜준다. 그런데 정은희는 이름이 여성스러울 뿐 성별은 남자이다. 김병장은 은희를 여자로 오해하고 편지를 계속 보내게 되고, 은희는 친구와의 의리를 위해 김병장과 울며 겨자먹기로 펜팔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무척 흥미진진한 줄거리가 예상되는데 이에 못지 않게 한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4명의 병사들의 군생활 에피소드가 재치 있게 그려져서 폭소를 유발한다. 서브플롯으로 군대 밖의 이야기, 즉 은희와 순규와의 사랑 이야기도 추가로 엮어져 촘촘한 스토리라인이 구성된다.
크지 않은 무대에서 군대와 군대 밖 사회의 이야기를 동시에 서술하기 위해 계단의 아랫부분은 군대의 공간, 윗부분은 군대 밖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꽤 효과적이었다. 이로 인해 철재를 비롯한 장병들의 이야기와 은희와 순규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좁은 무대에서 세트의 전환이나 동선의 이동을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이분화되어 있던 무대는 김상호 병장이 은희에게 보낸 편지 내용으로 구성된 넘버인 ‘어떤 편지’에서 절묘하게 화합되기도 한다. 이 곡은 김상병의 편지 내용을 가사로 하고 있는데, 위층에 있던 ‘정은희’는 곡 중간에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장병들과 어우러지고 김상병이 은희를 여자로 오해한 것에 대한 내용이 완벽하게 재현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각기 다른 공간에 있던 인물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두 공간이 융합되어 노래 한 곡 안에서 한 편의 판타지가 흥미롭게 완성된다. 뮤지컬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쇼 적인 측면에서의 매력이 마음껏 발휘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또 다른 넘버인 ‘답장’에서도 유사하게 쓰여진다.
아침 운동과 요리로 시작되는(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취사병이다) 군대의 일상을 재치 있게 표현한 ‘군대의 하루’,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이 나열되어 있는 ‘군대를 안가는 법’, 1분 1초가 더디게만 가는 군대에서의 시간을 빗댄 ‘시간아 흘러가라’, 군생활의 애환을 유머러스 하게 그린 ‘참혹한 군생활’ 등 재기 발랄한 가사들이 돋보이는 곡들이 대부분이며 각 넘버마다 힘찬 안무들이 볼거리를 가득 만들고 있다. 특히 군대에서의 축구 경기에 관한 ‘군대스리가’는 축구 경기 장면을 한 곡에 압축적으로 그려냈는데 경기 장면을 박력이 넘치는 안무로 승화한 점이 재미있고, 그 와중에도 각 인물들의 특성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어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철재’를 비롯한 내무반의 병사들을 연기한 배우들이다. 나이는 많지만 막내로서 어리버리한 모습을 두루 보여주는 ‘철재’(송욱경), 허풍이 세고 다혈질이지만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김상호’ 병장(김남호), 뺀질 거리는 모습으로 2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최호중’ 상병(최호중), 감성적이고 여리며 여성스러운 성격의 ‘강정우’ 일병(강정우) 등 각각의 캐릭터는 배우들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체적인 인물들로 완성되어 풍부한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냈다. 모든 장면에서 그들의 디테일한 연기들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김상호 병장을 연기한 김남호는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을 다 쓰고 있는 듯 다채로운 표정 연기를 보여 주면서 <스페셜레터>의 웃음을 담당하는 중심 캐릭터로서 끼와 열정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비교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배우들인 이들은 <스페셜레터>를 통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고 신나게 무대를 활보하는 듯 순수한 열정 그 자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네 명의 병사가 사랑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무대 세트와 소품들의 빈약함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군대 밖 공간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듯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의 수상작인 이 작품은 내년에 뉴욕 뮤지컬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외국 무대에서의 반응은, 한국적 정서에 강하게 기반한 징병제의 군대 이야기와 ‘참혹한 군생활’에서 동요를 개사하여 불러일으키는 유머 등을 어떻게 각색할지가 관건이다.
식상한 소재를 끌어들인 것은 식상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상황이 주는 재미와 캐릭터 자체에 의한 재미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캐릭터, 음악, 안무, 연출 등의 요소가 도자기를 빚듯 정성스럽게 혼합되어 영리하게 웃음을 제조해 냈다. 배우들의 패기 넘치는 연기는 극에 더욱 활기를 불어 넣어 열정적인 그들의 기운을 객석까지 전달한다. 마음속에 있는 일상의 찌꺼기를 모두 여과해버릴 듯한 상쾌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전해주는 <스페셜레터>를 하루빨리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