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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스물아홉 싱글들의 당당한 홀로서기, 뮤지컬 <싱글즈> [No.71]

글 |이민경(객원기자) 사진제공 |악어컴퍼니 2009-08-12 7,401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서른을 맞이해야 하는 스물아홉 여성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함은 여전하다. 소위 ‘청춘의 끝’으로도 대변되는 이 시기,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들만의 꿈과 사랑, 결혼에 대한 환상은 현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킨다. 특히 이 시기의 싱글 여성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주위에서 조여오는 결혼에 대한 압박이다. 행하는 모든 일들에 ‘20대의 마지막’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며 특별한 의미도 부여해보지만, 이 또한 눈앞에 다가온 30대를 더욱 실감케 할 뿐이다.

 

 

2003년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싱글즈>는, 나난, 동미, 정준 스물아홉 세 친구들의 꿈과 사랑, 결혼에 관한 고민 등을 현실성 있게 다루고 있다. 스물아홉 생일 아침, 남자친구에게 청혼 대신 이별을 선물 받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외식사업부로 발령을 받게 된 나난, 성희롱을 일삼는 직장상사에게 멋지게 한방 먹이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자유연애주의자 동미,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착한 심성뿐인 순진한 청년 정준, 이들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스물아홉 싱글들을 대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로부터 혹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고, 치유받기를 반복하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들을 통해 과거의 혹은 미래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싱글즈>는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겉모습을 포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나이 어린 여성은 본인의 능력 여부에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능력 없고 돈 없는 남자는 결혼하기가 힘들다. 이 작품의 중심은 바로 그들이 처해 있는 이러한 현실과 꿈꿔오던 이상이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간다는 것인데, 특히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인사발령한 곳에서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찾아낸 나난을 통해 ‘스물아홉이 20대의 끝이 아닌 더 멋진 30대를 준비하기 위한 시작점’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물아홉 세 친구들 중 그들 나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오직 나난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은 아쉽다. 동미와 정준 역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갈등을 겪고 고민을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스물아홉이란 나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각자 인생에 대한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되는 극의 말미에선, 앞서 그런 결정을 내릴 만한 충분한 상황 설명이나 개연성 등이 부족해 성급히 마무리 지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를 소극장으로 옮기면서 작품의 매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좁혀진 만큼 관객들은 때로는 술주정 상대로, 때로는 고백 연습의 상대로, 직장 동료로 극에 참여시키면서 하나의 웃음 코드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하이힐 모양의 침대와 계단, 극이 진행되는 동안 예상치 못한 무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더해져 더욱 알차고 풍성한 극을 완성시켰다. 무비컬에서 흔히 저지르는,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지나친 내용의 축약으로 인한 전개상의 어색함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장면의 전환도 매끄럽게 이어져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특히 무대 세트인 건물들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조명은 잦은 암전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장면 사이의 단절을 막아준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만큼 넘버는 달달하고 감미로운, 경쾌하고 신나는, 진지하고 애절한 곡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스물아홉’, ‘담배’, ‘액션플랜’, ‘자기’ 등 각 캐릭터에 할당된 테마곡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초연 멤버들이 다시 모여 화제가 된 만큼 배우들에 대한 기대도 큰데, 실제로 그들은 큰 기대를 갖고 공연장을 찾아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만큼의 기량을 선보인다. 특히 ‘담배’ 한 곡만으로도 그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는 김도현은, 다른 배우의 정준은 떠올리기 쉽지 않을 만큼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내고 있다. 원조 나난과 동미 오나라와 백민정의 연기는 더욱 섬세해졌으며 캐릭터 또한 좀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번 공연에 처음 참여하는 수헌 역의 최지호는 다소 투박한 연기는 아쉬웠지만 훤칠한 외모와 기대 이상의 가창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뮤지컬 <싱글즈>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행복한 앞날을 기약하는 대신 새로운 꿈을 택한 나난, 정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한 동미, 지혜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서울을 떠나는 정준까지,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선언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에 비록 사랑과 자신의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진 못했지만, 30대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펼쳐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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