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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성적 가치의 전도와 기존 문화의 패러디, <자나, 돈트!> [No.65]

글 |현수정 사진제공 |신시뮤지컬컴퍼니 2009-02-23 8,544

‘마초’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군인들이 국방색의 반짝이 의상을 입고 샤방샤방한 몸짓으로 ‘어깨 총’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뮤지컬 <자나, 돈트!(Zanna, don`t)>에서는 더 나아가서 드랙 퀸 쇼를 연상시키는 야시시한 차림새의 장군이 새침한 표정으로 바람에 옷깃을 휘날리며 군대를 이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이 성(性)에 관한 기존의 가치체계를 전도(顚倒)시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자나가 하루를 마감하며 마술봉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정상’이고 이성애자들이 성적 소수자인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결혼을 하고, 출산은 대리모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설정이다.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하츠빌(Hartsville)의 한 고등학교이고, 시간적 배경은 정확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시청하러 가야 한다느니 톰 존스를 동성애자인 줄 착각하고 좋아했었다느니 하는 대사들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그냥 동시대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주인공 자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짝사랑’이란 것이 없도록 하는 ‘사랑의 매치메이커’이다. 그는 절친한 새인 씬디로부터 정보를 듣고, 큐핏의 화살과 같은 마술봉으로 사람들을 짝지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자나는 일생일대의 어려운 과제에 당면하게 되는데, 바로 이성애자인 스티브와 케이트가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다. 스티브는 자나가 마음을 두고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나는 자신의 사랑을 찾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스티브와 케이트를 위해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마법을 쓰기로 결심한다.
자나가 “바람아 불어라”라는 주문을 외운 결과, 세계는 이성애자들의 세상이 된다. 그리고 이성애자들로 변모한 자나의 친구들은 이전 세계가 동성애자들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나는 혼자 동성애자의 모습을 한 채 친구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다. 게다가 그는 주문의 부작용으로 마술도 쓸 수 없고, 씬디의 지저귐도 더 이상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자나, 돈트!>의 묘미는 기존의 성에 관한 사회적인 관념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에서 온다. 남자들의 행동은 게이들의 캠프(게이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과장되고 여성적인 제스처나 말투)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에게 ‘패션 감각’은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자나가 세상의 법칙을 바꾸는 주문을 외우려 할 때 책에 쓰여 있는 무서운 경고 중 하나가 ‘패션감각의 저하’일 정도. 반면에 ‘마초’의 전형은 여자들의 캐릭터로 표현하는데, ‘위험천만한 전기황소타기’를 하고 징이 박힌 구두를 신으며 씩씩함을 과시하는 식이다.
또한 풋볼이나 군대와 같은 남성성의 표상은 이 작품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풋볼 선수들은 ‘섹스 심볼’이기는커녕 인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별 볼일 없는 존재들로 묘사되며, 풋볼 경기를 관람하는 학생들의 대화는 ‘한쪽으로부터 다른 한쪽으로 공을 옮겨놓는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극중극으로 보여주는 ‘군대에서 이성애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사회적인 뮤지컬’에 대해 지역 신문은 ‘이다지도 불쾌하고 끝까지 타락한 뮤지컬은 없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 극중극은 스티브와 케이트가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극중극인 군대 뮤지컬 중, 샤방샤방한 차림의 장군과 그의 군사들

 

기존의 팝송과 뮤지컬을 패러디하고, 게이 코드를 위트 있게 활용하여 시니컬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일단 제목인 ‘자나, 돈트!’는 <재너두(Zanadu)>(`자나두`라고 발음함)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인데, 일단 ‘재너두’는 게이들이 즐겨 부르는 ‘게이팝’ 중 대표적인 곡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동화뮤지컬(A Musical Fairy Tale)’이라는 부제에서도 강조되듯 신화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연상시키고 사랑으로 금기를 뛰어 넘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키치적인 것을 포함하여 작품의 곳곳에서 <재너두>의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극중극에서 반짝이 군복과 미니스커트 군복 퍼레이드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울려 퍼지는 넘버는 게이들의 대표적인 ‘페이버릿’ 중 하나인 빌리지 피플의 ‘인 더 네이비’를 차용한 것이다. 그 외에 컬러링으로 게이들이 사랑하는 ‘아바’의 음악이 설정되어있고, 존경할 만한 게이 인물들로 알렉산더 대왕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언급되는 등 작품의 곳곳에서 직, 간접적으로 게이 코드들이 노출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전도된 상황이 연상케 하는 것은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편견으로 인해 고통 받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특히 극의 말미에 자나가 주문을 외우고 나서 이루어지는 반전은 다소 충격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현실에 대해 반추할 수 있도록 한다. 왜 충격적이냐 하면, 이전까지 펼쳐졌던 동성애자들의 밝고 알록달록하고 건전하며 마법이 통하는 동화적인 세상과 대조적인, 무채색의 파티복과 마법과 동화를 비웃는 ‘어른스러움’과 여성에 대한 희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성애자들의 세상은 삭막하고 폭력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은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행복한 결말을 도출해냄으로써 보수적인 관객들을 적절히 아우른다. 이성애자가 되어 ‘스트레이트 투 해븐’(‘스트레이트’는 ‘게이’와 반대말로 쓰인다)을 노래하던 친구들은 처음엔 자나를 따돌리지만, 이후 잘못을 깨닫고 그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나를 둘러싸고 ‘라이트 투 해븐’으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한다. 중요한 것은 자나가 동성애자들의 세상에서는 남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짝을 찾지 못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이룬 것이다.

 풋볼 경기장에서 응원하고 모습. 차림새가 알록달록하다. 

세종M씨어터에서의 한국 초연은 마치 ‘나 번역극이거든?’이라고 무대에 써 놓은 듯 번역, 말투, 연기에서 어색함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자면, 케이트의 괄괄한 여친인 로버타 역을 통해 김경선을 재발견했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김호영은 이미지에 잘 맞는 캐스팅이었으나 발성과 가창력 때문에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의 오리지널 연출자이자 안무자인 드바넌드 잰키가 작품의 제작에 참여했는데, 그는 이번 공연에서 무대와 배우 수를 확장시켰다. 그에게도 이번 무대가 생각했던 바를 구현해 보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원색적인 조명과 무대, 레인보우 컨셉의 의상에서 `키치`적인 조악함이 엿보였는데, 이는 의도된 것으로, 작품의 컨셉과 부합한다.

 

국내 초연 공연은 프로덕션의 완성도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원작이 지닌 자연스러운 송 모멘트, 짜임새 있는 구조, 신선한 발상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팀 아시토는 국내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미녀는 괴로워>의 작곡가이기도 한데, <자나, 돈트!>에서는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서는 눈치 챌 수 없었던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조성이나 멜로디가 상황마다의 정서를 잘 표현하면서 극의 흐름을 이끌어 주는데, 예를 들어 극중극인 군대 뮤지컬에서 일부러 오페라적으로 거창하고 과장되게 만든 단조의 음악은 다음 장면에서 편곡을 달리하여 스티브와 케이트를 둘러싼 사각관계 인물들의 비통한 심정을 잔잔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마이크가 스티브를 향한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책을 쓰겠어(I Could Write Books)’는 진정성을 느끼게 하며 주제를 전달한다. 그에 대한 마음을 엮어서 책을 쓰고도 남는다는 이 곡은 섭섭한 것의 두 배로 사랑하고,루에도 그 때문에 수십 번 울고 웃으며,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래도 믿는다는 내용을 통해 사랑이란 것이 동성애건 이성애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자나, 돈트!>는 극의 말미에 펼쳐진 이성애자들의 무채색 세상이 오히려 낯설고 삭막하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설득력 있게 주제를 전달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절실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님을 느꼈어`라는 스티브의 대사는 폭력에 가까운 편견 속에서 마이너리티가 지니고 사는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설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빈틈이 보이고 자질구레한 패러디들이 산만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부분과 한국 프로덕션의 부실함은 뚜렷한 주제를 향해 총력을 기울이는 통일성 있는 컨셉으로 커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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