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한 뮤지컬 팬이라도 국내 초연작인 <톡식 히어로(원제는 ‘톡식 어벤저’)>에 대한 정보를 줄줄 읊기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작품의 특징은 초록색 유독성 물질을 뒤집어쓰고 몸과 얼굴 곳곳의 피부가 울퉁불퉁 부풀어 오른 모습의 ‘톡시(Toxie)’가 등장하는 코미디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컬트 영화 <톡식 어벤저(The Toxic Avenger)>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뮤지컬에서도 절단된 사지와 피, 내장이 쏟아져 나온다. 이만큼의 정보로 가늠해본다면 B급 뮤지컬에 가깝다. 그 예상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조금 더 살펴보자.
2009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가진 <톡식 히어로>는 <아이 러브 유>, <올 슉 업>, <멤피스> 등의 극작을 맡아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조 디피에트로가 극본을 쓰고, <멤피스>로 2010년 토니상 작곡상을 받은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을 맡았다. 콤비의 활약으로 2009년 여러 어워즈에서 뉴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상, 극본상, 남녀배우상 등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수룩하고 순진한 청년 멜빈은 시각 장애인 사라를 좋아하고 있다. 어느 날 도시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멜빈이 음모를 밝히려 하자, 시장의 수하들이 그를 유독성 물질이 든 통에 빠뜨린다. 죽은 줄 알았던 멜빈이 유독성 물질로 인해 흉측한 녹색 돌연변이 톡시로 변신해, 무시무시한 힘으로 시장에 맞서 싸우며 시민들의 히어로로 등극한다. 그리고 사라와의 사랑도 결실을 맺는다.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유독성의 영웅이 악한 권력에 복수를 행한다. 미국 만화에 많이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의 한 아류인 듯하지만, <톡식 히어로>는 권선징악형 영웅담보다는 러브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외모는 흉하게 변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사랑받는 결말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그를 사랑하는 여자는 앞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수퍼 히어로가 부패한 권력자를 응징하고 그 수하들의 팔다리를 뽑아버린다. 흔히 B급을 표방한 작품은 폭력적인 장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데서 오는 초현실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톡식 히어로>의 한국 공연을 맡은 이재준 연출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은 것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굉장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캐릭터나 소품, 무대 분위기가 분명 컬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표현 수단으로 기능할 뿐,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까지 컬트적이지는 않다. 그다지 사실적이라고 할 수 없는 흉측한 분장이나 소품을 통해, 관객에게 잔혹한 비주얼을 생생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캐릭터와 상황을 효과적이고 코믹하게 표현하려 한다.
이재준 연출이 생각하는 <톡식 히어로>는 수퍼 히어로가 전하는 환경 보호와 권선징악 캠페인이 아니다. “옆에 있는 괴물을 사랑하는 러브 스토리이다.” 야수가 원래는 왕자였다는 판타지가 아닌, 여전히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이를테면 ‘슈렉형’ 러브스토리인 것이다. 톡시가 그런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라와 톡시의 엄마는 그의 진심을 믿는다. 그렇다고 <톡식 히어로>가 비호감 외모에도 호감을 갖으라고 진지하게 권유하는 작품은 전혀 아니다. 유쾌하게 웃고 즐기기 충분한 장면들이 계속 펼쳐져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그를 믿기에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웃음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연출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 <톡식 히어로>에서 연이어 터지는 코믹한 장면이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는 “캐릭터와 상황 설정이 명확한 데 있다”고 연출은 덧붙였다. 사라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점, 멜빈이 톡시로 변한 후에 전보다 더 자유롭게 에너지를 분출하게 된 점 등 극본이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에 적합한 설정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
유독성 폐기물 드럼통이 쌓여있는 심플한 무대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공간 변화에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평범한 청년 멜빈이 2분 만에 톡시로 변신한다고 하니 놀라운 특수분장과 퀵체인지 기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톡시로 변신하기 위해 기형적인 분장을 뒤집어쓸 배우는 오만석과 라이언이다. 이들에 맞서는 시장을 비롯한 1인 3역은 홍지민과 김영주가 맡는다. TV와 무대를 오가며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는 이들뿐만 아니라 푼수 같은 새라 역의 신주연, 멀티맨 역할을 하는 임기홍과 김동현이 쉴 틈 없이 웃음을 전해줄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무척 많은데, 한 무대에서 한 배우가 듀엣을 선보이는 장면과 시장이 톡시를 죽일 방법을 찾으려고 박사를 유혹하는 장면 등이 기대되며, 톡시와 사라가 부르는 코믹한 러브 듀엣도 빼놓을 수 없다.
8월 14일 ~ 10월 10일 / KT&G 상상아트홀 / 02) 501-788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