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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코러스 라인>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다 [No.83]

글 |박병성 사진제공 |쇼온 2010-08-09 7,688

세계 뮤지컬계는 1960년대 뮤지컬 황금기를 겪고 나서 1970년대는 침체기로 빠진다. TV가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대중예술인 뮤지컬 시장이 붕괴된 것이다. 비록 시장은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이때 작품성이 높은 뮤지컬들이 많이 등장했다. 유다의 시각에서 예수를 본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메시지가 강한 컨셉 뮤지컬 <카바레>, <시카고> 그리고 <코러스 라인>이 이때 만들어졌다. 오디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코러스들의 삶을 보여준 <코러스 라인>은 15년간 6천 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캣츠>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최장기 뮤지컬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공연한 기록이 있지만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정식으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코니 역으로 참여했던 바욕 리가 맡았다. 그녀와 작업한 김진만 협력연출에게 <코러스 라인>에 대해 들어보았다.

 

 

‘브로드웨이 역사는 <코러스 라인>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가 카피이다. 어떤 의미인가?
<코러스 라인>이 1975년에 만들어지기 전의 뮤지컬 배우는 춤이 위주인, 연기가 위주인, 노래가 위주인 배우가 따로 있었다. <코러스 라인>은 춤, 연기, 노래를 모두 잘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이전에도 이런 배우가 있었겠지만 <코러스 라인> 이후로는 세 가지를 잘하는 배우들이 현저히 많아졌다. 뮤지컬 배우는 삼박자를 갖추어야 한다는 관념을 만든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을 계기로 세 가지를 모두 잘하는 배우들이 많아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따로 따로 모으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마이클 베넷은 배우들이 세 가지를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울 장면이 있지만 대극장 공연치고 무대가 매우 단순하다.
<코러스 라인>의 무대 배경은 텅 빈 극장이다. 이 분위기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대는 1975년 당시 브로드웨이 무대를 재현하고 있다. 코엑스아티움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런 느낌을 배제하기 위해 검은 천으로 덧대고, 탄력이 있도록 3~4중으로 바닥을 깔아서 춤추기에 용이한 마루를 만들었다. 무대 아래에 15인조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오케스트라 피트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샤막을 써서 이중 삼중으로 감추고 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더 예민하게 접근해야 했다. 뒤의 거울 역시 페리악토이 형식의 삼각기둥인데 기계식으로 전환이 되는 구조다. 전체적으로 결코 간단한 구조가 아니다.

 

무대 위에 뚜렷하게 드러난 코러스 라인이 상징적인데, 연출적으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코러스 라인은 코러스들이 넘지 않아야 되는 선이다. 공연 별로 또 장면 별로 다르겠지만 실제 공연에서 코러스들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공연에서는 코러스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지만,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넘어서야 하는 선이기도 하다. 댄서들이 함께 라인에 있을 때는 코러스에 속하지만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면 극의 주인공이 되고, 스스로가 삶의 주인공임을 인식하게 된다. <코러스 라인>은 자기 삶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초반부에서 코러스들이 자신의 출신 지역과 나이를 말할 때 미국의 다문화 사회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한국 배우들이 그대로 쫓아하니까 어색했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굳이 우리가 알기 힘든 상황으로 설정해야 했을까? 개인의 라이브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문화적 차이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라이선스 작품의 안타까움 중의 하나다. 설정을 한국식으로 바꾸려면 완벽하게 번안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다. 공감할 수 있는 정도로 윤색할 수는 있는데 그것조차 원제작사와 협의를 해서 윤색해야 하고 번안 자체는 안 된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와서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라이선스 뮤지컬의 매력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목격하면서 다른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은 부연 설명을 첨가한다든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수정해 지금도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

 

1960년대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끈 해머스타인과 로저스의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을 넘어 1970년대 침체기로 빠져들 때 나온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어떤 것인가?
1975년 마이클 베넷이 이 작품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연출자이자 안무가였다. 시장 전반이 정체해 있는 시기였고 마이클 베넷 스스로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이 필요했다. 기존의 기승전결의 포물선을 그리는 드라마 구조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를 구상했다. 기존의 오디션과 달리 마지막 최종 오디션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오디션을 봤고 그것이 실제 극으로 이어지게 했다. 라이브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에게 이러한 형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브하고 즉흥적인 극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마이클 베넷은 극적으로 새로운 양식에 도전해서 댄서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내면의 이야기가 춤과 노래가 고리가 되어 진행된다. 일반적인 형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코러스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반복된다. 비슷한 형식이 반복되고 극적(보여주기)이지 않고 서사적(들려주기)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코리스 라인>이 가진 형식미를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각각의 코러스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반복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하고, 어떤 사람은 코믹한 연기로, 또 어떤 사람은 춤으로, 혹은 전체가 몽타주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등 다양하게 표현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크기가 다른 물결을 일으키며 전개된다. 그리고 그 극의 중심에 잭과 캐시의 이야기가 관통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언뜻 보면 반복되는 옴니버스 구조 같지만 잭과 캐시의 이야기가 끼어들어 극 전체가 갈등과 화해의 구조를 띠고 있다. <코러스 라인>의 주인공을 한 명 꼽으라면 잭이라고 생각한다. 잭은 코러스들의 이야기를 듣고, 캐시와의 오해와 갈등을 겪으면서 변해가는 인물이다.
잭은 댄서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댄서에 대한 연민도 있고 그 스스로가 댄서 출신이다. 코러스들의 한계를 극복시키기 위해 독려하고 있다. 코러스 스스로가 존재감이 생기게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 코러스들은 전체가 하나이다. 코러스 무리에서는 개개인이 보이지 않는다. 전체가 똑같이 했을 때 하나의 존재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고, 개개인들의 삶에서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잭이 코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맹목적으로 일에 쫓겨온 삶을 반성한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데 부족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역시 생각과 삶이 변할 계기를 얻는다.

 

캐시가 코러스가 되어 춤을 출 때 굉장히 자신을 드러나도록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캐시를 맡은 배우에게 어떤 주문을 하나?
캐시는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스타성이 있는 배우이다. 오랜 동안 자신의 기량을 뽐내면서 춤을 춰왔기 때문에 코러스와 똑같이 추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같은 동작을 해도 계속 기교를 부리게 된다. 지금 캐시 역을 맡은 배우도 춤을 잘 춘다. 브로드웨이 작품 중 캐시만큼 난이도가 높은 춤을 추는 역이 많지 않다. 캐시 혼자 추는 독무가 있는데 내로라하는 댄서들도 오디션에서 이 춤을 소화해내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춤이다. 실력이 있는 배우를 코러스 라인 위에 올려놓으면 아무래도 춤이 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캐시 역의 배우가 공연을 반복하면서 코러스들의 춤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매일 처음 코러스 라인에 서는 배우처럼 보이도록 유지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외운 대로 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외운 대로 하면 관객이 눈치 챈다. 이제 막 일어난 일처럼 해야 하는 것이 연기고 극이다. 특이 리얼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이 작품에서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코러스들은 무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데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라고 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주인공이 많은 작품이 없다. 코러스 라인에 서는 17명의 배우들 이외에도 오프닝에 나와서 떨어지는 배역들도 모두 배역 이름이 있다. 당시 오디션에 참가했던 배우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배우 개개인들의 삶이 잘 드러나도록 했던 작품이다. 우리 프로덕션에서도 코러스로 활동하던 배우들이 유독 많이 캐스팅되었다. 현실과 극이 교묘하게 얽힌다.

 

잭이 마지막 곡 군무를 출 때 1930년대 스타일로 추라고 한다. 이 작품을 만든 시기는 1970년대인데 왜 1930년대 방식으로 추라고 하는 것인가?
마이클 베넷이 창조한 오프닝 춤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고 따라 하기 힘들다. 솔로 댄스는 마이클 베넷형 안무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One’을 부를 때 추는 군무는 1930년대 춤에서 따온 것이다. 코러스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다리를 쭉쭉 올리며 추는 로켓 댄스처럼 코러스 군무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코러스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1930년대 방식으로 마지막 춤을 추는 것이다.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긴 하지만 마지막 황금옷을 입고 ‘One’을 부르는 장면은 앞선 장면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일종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장면이다.
오디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고 누가 선발될지 결정하는 장면에서 극은 끝난다. ‘One’을 부르는 장면은 오디션 과정을 통해 뽑힌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공연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코러스들이 일사분란하게 하나로 움직이고 있지만 관객들은 앞선 이야기를 들어서 전체 속에서도 하나하나의 인생들을 보게 된다. 이전과 다른 인식을 하면서 코러스의 무대를 보는 것은 색다른 감동을 준다. 많은 사연들이 있는 댄서들이 자신을 감추고 춤을 추고 있으니까 더 응원해주고 싶게 된다.

 

 

그 장면에서 입은 황금 의상은 굉장히 화려하다. 이 장면을 판타지라고 느꼈던 이유는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가장 주목하게 만드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베넷이 코러스들에게 보내는 찬사 같았다.
그 전 장면까지 배우들은 그냥 연습복을 입고 있다. 그런 배우들이 험난한 오디션과 연습 과정을 거쳐 훌륭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바욕 리가 35년 전에 제작됐던 당시 무대 옷을 가져와서 이대로 제작해달라고 했다. 색깔이 바랬지만 얼마나 정성을 들인 의상인지 알 수 있었다. 구슬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달고 모자까지 엄청난 양의 보석이 들어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197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극은 아니다. 지금도 극 속에서 코러스들과 같은 상황은 여전히 존재한다. 시간의 차이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본다.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 시기나 통한다. 바욕 리가 오기 전에 작품을 받고 2주간 자체적으로 리딩을 했다.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을 해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는 것 투성이었다. 바욕이 오고 나서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나자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았다. 특수한 상황들이나 인물 간의 연결고리를 알게 되니까 이해가 쉬웠다.

 

어떤 것들이 그런가?
캐시하고 잭이 애증의 관계로 나오는데 그 이전에 잭과 쉴라 역시 사귄 적이 있었다. (쉴라가 거만하게 구는 데도 내버려두는 이유가 그것이었나.) 지금은 그냥 친한 친구로 지내는 정도이다. 캐시와 쉴라 역시 친구 사이인데 잭이 캐시를 밀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쉴라가 캐시를 보호해주고 있다. 캐릭터들이 실제 배우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관계가 입체적이 됐다. 윤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좀 더 수용하려고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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