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은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뜻하는 제목이다. 열세 살의 청소년을 성인이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 <13>의 모든 배우들은 실제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십대들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귀여운 아역으로 잠깐 등장해 감초 역할을 했던 이들이 당당히 주연으로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많은 출연자들이 이번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하는 가운데, 이미 다른 작품에서 얼굴을 알린 세 명의 배우가 눈에 띈다. 극의 중심에 있는 에반 역의 정진호와 퇴행성 신경근 장애를 가진 아치 역의 김범준은 <빌리 엘리어트>에 이어 <13>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소리 도둑>과 <남한산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박도연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패트리스를 연기한다.
무대에 다시 돌아오다
<빌리 엘리어트>와 <남한산성> 후 오랜만에 무대에 서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도연 전 <남한산성>을 마지막으로, 영화 두 편 찍은 거 말곤 학교만 열심히 다녔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더라고요.
진호 <빌리 엘리어트>가 끝나고 나서 중학교에 입학했어요. 저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도연 초등학교 내내 뮤지컬 활동을 많이 해서 힘들었어요. 쉬는 동안 처음에는 뮤지컬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2년째 쉬다보니 정말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이 없었어요.
그동안 하고 싶어도 여러분이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 제한적이라 못했겠군요. 마침 이 작품은 십대만 등장하니 딱이네요.
도연 오디션 정보를 꾸준히 보고 있었는데 마침 십대를 뽑는다고 해서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범준 진호랑 저는 같이 영화를 하나 찍었어요. 그 영화에 참여했던 연출님과 음악감독님이 <13>도 맡으시면서, 저희한테 오디션 보러 오라고 알려주셨어요.
진호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영화인데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뮤지컬 오디션을 보는 이야기예요. 영화 내에서 다섯 명이 오디션 본선에 오르게 되는데요. 그게 저랑 범준이 형,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를 같이했던 성훈이랑 준형이, 이렇게 네 명이랑 다문화 가정 소년이에요. 뮤지컬 오디션 부분을 촬영할 때 <13>의 연출님이랑 음악감독님이 도와주셨고, 그분들이 멘토로 직접 출연하시기도 했어요. 근데 그전에 <13>이 브로드웨이에서 만든 청소년만 등장하는 작품이란 건 알고 있었어요.
도연 전 오디션 볼 때만 해도 이 작품의 내용을 잘 몰랐어요. 그저 뮤지컬이 하고 싶었거든요. 일단 오디션에 합격하고 나서 사전 연습 때 다같이 뮤지컬 넘버랑 기본적인 안무를 다 배웠어요. 그러고 나서 배역이 정해졌죠.
진호 사전 연습 때 가배역을 두 개씩 배정받았어요. 트레이닝을 통해서 최종 배역이 정해졌고요.
각자 맡은 역할은 맘에 드나요? 범준 군은 제작 발표회 때 본인과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아서 좋다고 말했잖아요.
범준 사람들이 제가 많이 아파 보인대요. 육체적으로. (일동 웃음) 그리고 아치가 되게 까불까불하거든요. 일단 저지르고 보고요.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도연 패트리스는 왕따잖아요. 처음에는 왕따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제가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연습하다보니 저랑 비슷한 부분도 있고 재밌어요.
범준 원래 왕따 아니고?
도연 아니거든!
진호 전 <13>의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가요. 에반도 그렇고, 에반의 친구들도 신체적으로 변화를 겪고 어른이 되어 가요. 저도 키가 컸고요. ‘Thirteen’이란 노래 가사 중에 ‘째지는 목소리 싫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저도 변성기가 왔거든요. 사춘기를 겪는 에반이 스트레스 받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저희랑 비슷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고, 에반은 유태인인 데다 유태인 풍습에 따라 성인식을 치르잖아요. 그런 배경이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나요?
진호 대본 리딩을 시작하고 일주일간은 저희가 직접 유태인 문화를 조사하고 알아보면서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어요.
도연 기본적으로 또래의 이야기라서 우리랑 비슷하게 느껴지지 멀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모두 십대라 연습실에 모이면 시끌벅적하겠는데요? 또래끼리만 연기해보니 이전에 다른 작품에 참여했을 때랑 어떤 점이 다른가요?
범준 많이 혼나요. 제가 집중력이 좀 부족해서 다른 친구들 연습하는 거 십 초쯤 보다가 옆 친구에게 장난 걸고 그래서 감독님께 많이 혼나요.
도연 혼날 만해. 예전에는 어른 배우들을 따라가면 됐는데, 지금은 저희가 극을 이끌어가야 해요. 저희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야 해서 어렵지만, 또래끼리 있어서 재밌어요.
진호 (도연)누나 말처럼,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동선이나 제스처 이런 것들이 연출님의 의도에서 나오고 저희는 그대로 따랐는데, <13>에서는 저희가 직접 연출님과 협력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곤 해요. 에반의 이전 상황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저희가 의견을 낼 수도 있고 그게 반영되기도 해요. 전체적인 동선이나 인물의 목적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건 각자 조금씩 다르게 하기도 해요.
범준 큰 동선에는 따라야 하지만 자잘한 안무나 동작은 자유롭게 하도록 해주세요.
열세 살의 이야기
극 중에서 에반이 인기 있는 친구와 친해져서 많은 친구가 생기길 바라듯이 여러분도 그런가요?
도연 인기가 많고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기보다는 진짜 친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죠. 비밀이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친구 한 명 있나요?
도연 많아요~ 일곱 명 있어요! 저 왕따 아니에요. (웃음)
범준 저도 되게 친한 친구가 있으면 돼요. 심심할 때 언제든 불러낼 수 있고 서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 그런데 비밀 같은 건 절대 말 못해요. 아무리 비밀이라고 말해도 장난처럼 다 퍼져 나가게 돼 있어요. 비밀은 언제나 혼자 간직해야 해요.
도연 어머, 정말?
범준 남자들은 진실을 나누고 진지한 이야기 하지 않아요. 쓸데없는 얘기만 해요. (아니라면) 미안해, 진호야.
도연 지금 나이의 남자애들이 철이 없어서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얼마큼인지 구분을 못하는 것 같아요.
범준 아냐, 구분은 해. 왜 이래~
여자애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비밀을 나누곤 하는데, 그럼 남자들은 친한 친구라 하면 뭘 공유하나요?
범준 아, 그런 거 있어요. 친한 친구들하고만 사진을 찍어요. (일동 웃음) 어색한 애랑은 안 찍어요. 또 그리고, 게임을 해도 편하게 욕할 수 있으면 친한 친구죠. 아, 그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딱 필이 와요.
학교에서 인기는 많아요?
도연 인기는 없는데, 친구들이 ‘쟤 뮤지컬 하는 애야’ 하고 관심은 많이 가져줘요.
범준 네, 맞아요. 그리고 질투해요. 밥 먹고 간다고.
도연 일찍 하교하는 거 부러워해요. 어떤 뮤지컬 하는지 물어보고요.
극 중에서 에반은 영리해서 ‘브레인’이라고 불리죠. 잔꾀를 부려서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여러분이 인기를 얻는 비결이 있다면 뭔가요?
도연 저는 친구들과 있을 때 이미지 관리 안 하고 무조건 웃겨요. 웃기는 표정을 짓거나 몸 개그든 말이든 웃기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건 범준 군도 잘할 것 같은데요?
범준 아, 정말 잘하죠! 저는 선생님이랑 놀아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기분 나쁘지 않게 장난을 치면, 애들이 되게 재밌어 해요.
도연 선생님 기분 나쁘신 거 아냐?
범준 그런가? 나만 모르는 건가?
진호 군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대해요?
진호 저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요.
범준 니가? ‘이 수학 문제는 어떻게 푸니?’ 이렇게?
재밌어 해요.
도연 진지하게?
진호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
도연 진호의 이미지는 너무 심각한 걸로 굳어졌어.
진호 제가 좀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라, 그래서 오히려 제가 더 피곤해요.
범준 모범생. 나처럼 살아, 좀.
도연 저도 어려운 게 있거나 잘 못하면 너무 답답해서 울 때도 있지만,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해요. 사서 걱정한단 말도 듣고요.
진호 (나지막하게) 맞아, 사서 걱정. 그리고 애늙은이라고.
범준 너넨 너무 부정적이에요. 난 긍정적이잖아. 전 얘네처럼 걱정하지 않아요.
진호 이런 낙천적인 성격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안 돼요.
범준 전 얘들처럼 틀리고 혼나도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고치면 되고, 또 틀릴 수도 있지.
그래서 틀린 것은 잘 고쳐요?
범준 까먹어요. (일동 웃음) 많이 혼나고 나서 고쳐요. 옆에서 진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 보면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때 잠깐은 필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데, 오래 못 가죠.
도연 진호는 정 연출이에요, 정 연출.
범준 정말 조금만 틀려도 다 잡아내요.
진호 (억울하다는 듯이) 와~ 그건 연출님이 말하라고 한 거 전해준 거지. 그리고 예전에만 그랬어.
범준 에이~ 지금도 그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야.
도연 가끔 범준이 보면 스트레스 안 받고 연기하는 게 부러울 때가 많아요. 저도 그냥 생각 없이 하고 싶은데….
범준 아냐, 나, 생각 없진 않아.
도연 하하, 알았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 늘 눈치 보고 시도도 잘 못하곤 해요.
진호 연습하다가 실수했다든가 잘 못했다 싶으면 (고민이) 며칠 가요. 스트레스 받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고쳐 나가면 되는 걸 알면서도요.
공연에서든 개인 생활에서든 지금 가장 큰 고민거리는 뭔가요?
범준 인간관계.
일동 정말?
범준 들어봐 들어봐, 아직 다 이야기 안 했어. 제가 좀 막말하고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라 친구들에게 상처줄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 삐치면, 전 정말 잠 못 자요. 너무 미안해서요. 그냥 장난 식으로 몇 대 맞고 풀면 시원할 텐데 속으로 앓고 있으면 싫어요. 그래서 요즘 조심하고 있어요.
도연 친구들과의 관계도 고민이지만, 전 지금 중학교 3학년이고 곧 고등학교에 가야 해서 성적에 대한 고민이 커요. 성적이 안 좋으면 원하는 고등학교에 못 갈 수도 있거든요.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 연기 활동을 허락하는 학교가 많지 않아서요. 아, 나 이제 고등학생이야~
일동 어색해!
진호 저도 공연하는 12월에 기말고사를 봐야 해서 되게 바쁠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큰 고민은 목소리가 변하는 거예요. 제가 15년 동안 낸 목소리랑 이제부터 낼 목소리가 다르다는 거잖아요. 공연 개막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롭게 목소리 내는 방법과 습관에 적응해야 한다는 게 부담돼요. 노래도 어려운데.
이전에 다른 뮤지컬에서 좋은 모습 보여줬지만 <13>에서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것, 더욱 노력하고 있는 점은 뭔가요?
진호 <빌리 엘리어트> 때는 발레랑 애크러배틱, 탭댄스 등 정말 다양한 춤을 연습했어요. <13>에도 춤이 있지만 전만큼 많이 추진 않아서, 이번 기회에 노래랑 연기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도연 지금도 아역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그저 어리고 애 같단 이야기는 듣기 싫어요. 연기에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패트리스의 속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연기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13>에선 힙합이나 스트리트 댄스를 많이 추거든요. 저 이런 춤은 처음 춰봐서 연습 초반에 되게 힘들었어요.
범준 저는 다리가 아픈 역할이라 목발을 짚고 연기해요. 다리를 끌면서 움직이는데 제 팔 힘이 약해서, 다리 아픈 애를 연기하는데 팔이 아파요. (일동 웃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정말로 다리가 불편한 애로 보일 수 있도록 하려고요. 아, 어색하면 어떡하지...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1호 2012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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