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이는 고 김광석의 노래 제목이며, 4월에 초연하는 창작뮤지컬 <그날들>의 뮤지컬 넘버이기도 하다. 최근 작곡가 이영훈과 그룹 DJ DOC, 양희은의 노래를 엮은 창작뮤지컬들이 소개됐는데, 김광석 역시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 욕구를 자극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었다. 몇 해 전부터 소문으로만 떠돌던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에 무산되기는 했으나 김광석 뮤지컬 창작을 시도한 바 있는 장유정 작가 겸 연출가가 <그날들>로 해묵은 과제를 해낸 것이다. 더불어 <그날들>은 <형제는 용감했다> 이후 라이선스 뮤지컬과 영화 작업에 매달렸던 장유정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작곡가 이영훈과 DJ DOC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 연가>와 <스트릿 라이프>가 해당 뮤지션의 삶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면, <그날들>은 김광석과는 전혀 상관없는 드라마를 전개한다. 굳이 분류해 설명하자면 <저지 보이스>가 아닌 <맘마미아> 식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그날들>은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청와대에서 극이 시작된다. 대통령의 막내딸 하나와 그녀를 경호하던 대식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경호 팀을 책임지고 있는 경호과장 정학을 비롯한 이들이 긴급 상황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때 정학의 머릿속에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신입 경호원으로서 첫 임무를 맡았던 날, 정학과 그의 동기 무영은 한중 수교 기념행사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여인을 경호했다. 그런데 돌연 무영과 그 여인이 사라진 것이다, 20년 후의 지금처럼. <그날들>에서는 20년을 사이에 둔 ‘그날들’에 대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헤친다. 대본을 쓴 장유정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로 지적돼 오던 허술한 드라마와 예상 가능한 뮤지컬 넘버 등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스터리 구성의 드라마로 극적인 재미를 꾀하고 드라마에 어울리는 선곡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날들>이 김광석의 음악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제작진들은 김광석을 기리거나 그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작품을 지양하고 있다. 김광석의 삶과 음악이 지닌 정서는 그대로 유지하되, 그의 노래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뮤지컬 넘버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날들>이 김광석 다시 부르기로 4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다. 이 작품에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먼지가 되어’, ‘부치지 않은 편지’ 등 20여 곡들이 담겼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 외에 김광석이 작곡했던 곡들은 저작권 문제로 포함되지 못했다.
장유정 연출과 호흡을 맞춰 편곡을 담당한 이는 장소영 음악감독이다. 과도한 장르 변형으로 원곡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관객들의 귀에 익숙하도록 음악을 다듬었다. <스트릿 라이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정도영 안무가는 <그날들>에서도 역동적이고 신선한 움직임을 보여줄 듯하다. 애크러배틱과 검술이 가미된 경호원들의 군무를 기대해볼 만하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사건을 겪으며 그 운명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회전 무대를 활용한다. 다수의 작품에서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빈 무대’를 선보였던 박동우 무대디자이너가 <그날들>에서도 그 특유의 개성을 드러낼 듯하다.
스물여섯과 마흔여섯을 오가는 정학 역에는 유준상과 오만석, 강태을이 캐스팅됐다. 착실한 정학과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무영 역은 최재웅과 지창욱, 오종혁이 번갈아 연기한다. 비밀스런 여주인공은 방진의와 김정화가 맡았다.
4월 4일 ~ 6월 30일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02) 762-001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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