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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ERDONA]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 [No.111]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12-17 4,617

 제가 떠난 자리에 다시 사랑이 피어오르길

 

가을이 되면 바람을 타고 그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의 가슴 아픈 사랑은 바라보기에 너무 슬프지만, 잔인하게도 그런 사랑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 이 글은 베르테르를 연기한 배우 김재범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발하임에 머무른 일이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발하임엔 휴양차 오셨다고요?
도시와 귀족들 사이에서 염증을 느끼고 떠나왔어요. 워낙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도착한 곳이 발하임이었고요. 작은 마을이지만 그 마을을 품고 있는 자연은 무척 크고 아름다웠어요. 경치를 화폭에 담으려 애쓰곤 했지만, 그 경이로움이란 제가 감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발하임의 자연만 그린 것은 아니었죠. 롯데의 얼굴을 그려 선물로 주셨잖아요.
롯데를 처음 보고 난 후 내내 그녀 생각만 났어요. 제 앞에 없는 롯데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녀를 그린 후에 그 그림을 보고 있었어요. 선물하려고 그린 것은 아닌데, 롯데를 또 만나고 싶어서 그림 선물을 핑계 삼아 찾아갔죠.


롯데에게 첫눈에 반하신 거로군요.
영혼의 끌림이 있었다면 이해하시겠습니까.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무도회에서 어디선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어요. 그쪽엔 무척 아름다운 롯데가 있었고요. 그녀의 활발한 모습이 좋았고, 저와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에 기뻤습니다. 영혼이 끌린 데 더해 통하는 부분들이 쌓이니 정말 말 그대로 자석에 이끌리는 듯했어요. 롯데가 어디에 있든 끌려갔지요. 보고 싶고 또 함께 있고 싶었어요. 하룻밤이 천년 같고 만년 같았죠.


롯데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상심해 발하임을 떠났죠.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나요?
꽤 긴 시간 고민했어요. 하지만 역시 견디기가 힘들어서 떠나기로 했지요. 롯데가 알베르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다가 그녀가 혼자 있게 되면 그제야 안심이 되었고, 알베르트가 제게 친절을 베풀 때면 전 작아졌어요. 알베르트에게는 롯데가 그를 사랑한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의 생각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죠. 내가 롯데와 무척 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순간 나 자신이 초라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막에서 카인즈로부터 그의 사랑이 이뤄졌단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자신이 없어졌죠.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슬픔을 알아줄 것 같았던 그마저 사랑을 이루고, 달빛 아래에 선 연인들이 행복해하는 그런 아름다운 곳에 더 이상 머물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떠나려고 마음먹었지만 롯데를 보면 또 떠나지 못하고 끌려가곤 했죠.


떠난 후에도 꾸준히 롯데에게 편지를 썼죠? 간절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썼을 그 편지가 롯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도 조금 있었겠지요?
무척이나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보낸 건 한 통뿐이었죠. 롯데가 편지를 보고 내 마음을 받아줬으면 하는 고백의 설렘이 있었습니다. 물론 약혼자와 결혼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애써 무시했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마음은 고백에 대한 설렘과 바람이었죠.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었기에 상심이 더욱 컸을 듯합니다.
예상했고, 동시에 부인했던 결혼이었습니다. 기대와 초조함을 안고 돌아왔는데, 순식간에 저를 무너뜨린 소식이었죠. 다시 떠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롯데를 만나고 싶어서 일 년 만에 다시 찾아왔기에 그럴 수는 없었지요. 제 편지를 받았을 롯데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대로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때 확인한 롯데의 눈빛은 어땠나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내 생각과는 다른 말만 튀어나왔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려서 꺼내곤 했습니다. 롯데 옆에 알베르트가 없는데도 제 자신이 무척 초라해 보였죠. 롯데가 저의 고백에 거절을 한 후 곧이어 알베르트가 나왔을 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롯데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유는 알베르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압니다, 무척 바보 같았죠. 벽에 걸린 총이 저를 불렀어요. 온몸이 저려오고 소름이 돋으면서 저도 모르게 총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정신을 차리고 용서를 구했을 땐 이미 늦었죠. 알베르트보다는 롯데가 저를 보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알베르트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롯데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내가 왜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감정, 그런 경험은 겪지 못했겠지요.
억울한 사연을 가진 카인즈를 돕고자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땐 제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괴로웠습니다. 용기를 내서 사랑하라고, 제가 카인즈에게 일렀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죽음이고 또 살인이라니, 죄책감이 무척 컸습니다. 나 때문에 카인즈가 그렇게 된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도 그는 괜찮대요. ‘당신 말대로 사랑을 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쇠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제가 그에게 용기를 주고자 한 이야기인데, 그는 죽음 앞에서 그 말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죽음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대체 뭐라고 그에게 충고를 했을까요. 그가 훨씬 더 큰 사람인걸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당신을 돕겠다’며 그를 위로할 수조차 없었어요.


당신이 했고 카인즈에게 다시 들었던 그 말대로, 당신 역시 사랑을 했으니 그걸로 됐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롯데 역시 오랫동안 괴로웠을 겁니다. 우리는 무척 잘 통했고 서로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힘들었을 테지요. 하지만 마침내 롯데 역시 저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뿐임을 알았어요. 롯데와 교감했던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끝이 아니라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죠. 사랑은 이기적인 거라고 하지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롯데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걱정됐습니다. 롯데가 저를 보지 못하는 곳에서, 떠나는 배 안에서 우리들의 시간을 그대로 묶어두었습니다. 일 년 전에 발하임을 떠날 땐 정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어요.


당신이 죽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 자살했습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도 생겼지요.
슬픈 일이군요. 아픈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니요.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1호 2012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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