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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걱정하지 마, 난 김호영이잖아! [No.111]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2-12-12 5,961

 

스튜디오로 들어선 김호영의 짧게 자른 머리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군 입대 전, 그것도 하루 전날에 진행된 인터뷰이긴 하나 이처럼 짧게 머리를 깎고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짧아졌다는 사실 외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방색 야상 재킷과 퍼 베스트, 화려한 장신구들로 몸을 감싼 그는 “군대 가서도 화려한 생활을 하겠다는 예고편”이라며 자신의 의상 컨셉을 설명했다. ‘역시 김호영’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군대 생활보다 자외선에 무방비로 노출될 피부를 더 많이 걱정하는 김호영과의 입대 전 마지막 수다를 지면으로 옮긴다.

 

 

짧은 머리가 꽤 잘 어울린다. 머리 깎을 때 기분이 이상하진 않았나.

되게 담담할 줄 알았는데 막상 거울 앞에 앉으니 묘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더 짧게 잘랐다. ‘나 군대 가요’ 티내고 싶지 않았거든. 뭔가 의도가 있는 패션처럼. 군인 역할로 투입된 새로운 작품을 위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도 작품 하러, 마음 수양하러 간다고 생각하고 있고.(웃음)


군대 간다는 소식 듣고 좀 놀랐다. 호영 씨가 군대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랬나보다.

주위 분들도 다 같은 반응이다. 실감나지 않는다고. 처음엔 ‘어떻게 해’ 하던 사람들도 ‘너니까 적응 잘할 거야’ 하면서 잠깐 어학연수 하러 가는 사람처럼 대해준다. 우리 엄마도 마치 나를 유럽 여행 떠나는 아이처럼, ‘충성’ 하면서 춤추고 놀리신다. 내가 엄마한테 딸 같고 친구 같고 때로는 엄마 같은 아들이라 적잖이 힘드실 텐데도 말이다. 사람은 역시 어떤 계기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조용히 가려다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 입대 소식을 전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신)영숙 누나나 (서)지영 누나처럼 눈물 흘려준 분들도 있었고.(웃음) <라카지>로 남우조연상 받았을 때도 그랬는데,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한테 축하 연락을 참 많이 받았다. 내가 작품 할 때마다 ‘난 스태프 마인드 지닌 배우야’라고 노래를 부르며 다녔거든. 제작 팀, 기획 팀, 분장 팀, 의상 팀, 무대 팀, 조명 팀… 각 분야에서 다 축하해주시는 걸 보면서 ‘내가 10년 동안 배우 하면서 잔소리도 많고 장난도 많이 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나보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군대 가기 전에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싶다던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게 말이다. 인터뷰할 때마다 매년 다음 해의 바람으로 ‘배우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좋겠다’,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딱 고만큼씩 이뤄졌다. 수상 소감으로도 얘기했지만, 이번 조연상은 정말 받고 싶었다.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은 광고든, 영화든 찍어놓고 갈 수 있으니까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을 수 있지만,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그럴 수 없지 않나. 요즘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뮤지컬 시장이라면,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많은 작품과 배우들이 쏟아지겠나. 물론 내가 쉽게 잊힐 만한 배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의외다. 오히려 호영 씨가 없는 뮤지컬계가 심심할까봐 걱정되는데.(웃음)

10년 차 배우의 비애랄까? 그동안 굵직굵직한 작품들 꽤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막 떠오르는 배우들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나를 잘 모르더라. 그래서 현실적으로 다시 생각해봤다. 요즘은 제작사가 많아져서 좋은 작품, 인기 있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출구도 다양해졌고, 대학로 혜화동 메카가 활성화되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더라. 그렇다고 위기감을 느낀다는 얘기는 아니다. 김호영은 독보적이니까.(웃음) <라카지> 할 때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10명 중에 9.5명이 ‘주인공 하다가 왜 비중이 크지도 않은 조역 자코브를 하냐’고 말렸다. 캐릭터에 관심도 있었지만 나처럼 모차르트와 자코브를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자코브로 받은 상은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준 셈이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출연하는 것도 김호영이니까 가능했다고 본다. ‘트랜스젠더의 독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공연 내내 출연자들과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다가 순간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더라.

공연 내내 풀어져서 까불고 마스터베이션 얘기하면서 떠들다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더 그랬을 거다. 나도 뭔가 폭발하기 직전의 강한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내가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 트랜스젠더를 선보일 거라 예상했던 분들은 좀 놀라지 않았을까. 트랜스젠더 독백은 연출부가 추가 여부를 놓고 고민하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다. 작년에 게스트로 출연할 때도 독백 하나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녔거든. 원래 독백의 1/3 분량밖에 안 돼서 아쉽긴 하지만,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가 만든 스타일이라 더 애착이 간다. 대본 받았을 때부터 특별한 뭔가가 내 안에 훅 들어와서 그날 밤에 장면을 다 만들었다. 대사도 두 번만에 외웠고.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도 둘째 날 공연부터 분장이나 의상의 도움 없이 조명 하나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해서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관객들의 기운이 같이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 참 좋았고, 트랜스젠더 독백을 통해 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안겨준 것 같아 기뻤다.


5회 공연밖에 안 돼서 아쉬웠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덕분에 파장이 더 크지 않았나.(웃음) 이지나 선생님이 나중에 내가 하는 긴 버전의 독백도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도 좀 궁금하다.

지난 10년 동안 참 다양한 인물로 무대에 올랐음에도 사람들은 배우 김호영의 어느 한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느낄 때 서운하지는 않나.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다. 엔젤이나 공길, 자나 등 외향적인 성향은 같을지라도 인물들이 지닌 성격은 다 달랐고,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구축했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더라. 사실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는 굉장한 비애가 있는 인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감성이 있다면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내 식대로 겉모습에 집중해서 표현한 거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의 외향적인 모습들, 웃고 떠들고 잔소리하고 할 말 다 하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쟤는 진짜 생각 없이 살겠다’, ‘에너지가 좋다’, ‘함께 있으면 너무 유쾌해, 기분 좋아’ 한다. 실제로 나는 필요 이상의 걱정과 책임감 때문에 매일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지만, 굳이 사람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다. 이왕이면 좋은 에너지, 밝은 에너지 갖고 있다는 얘기 듣는 게 좋으니까. 배우로서 전략적인 부분도 있다. 평소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을 때의 극적 효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힘들지 않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호영의 이미지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내 안에서 많이 싸우긴 한다. 하지만 사람들 챙겨주고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 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들 있지 않나. 내가 그런 기질을 지닌 것 같다. 물론 친한 사람들은 걱정한다. 일부러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나중에 얼마나 외롭고 공허하겠냐고, 건강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옛날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몸으로 느낀다. 작년 <아이다> 때는 1막 마지막 신에서 서 있기가 힘들어 앉아서 연기한 적도 있다. 그러곤 화장실로 달려갔지. 소화 안 되고 위 아프고 힘도 없는데 진단 결과는 신경과민성 소화불량이더라. <쌍화별곡> 하면서는 호흡도 힘들고 무대에서 대사도 생각 안 나고 몸이 뒤틀리도록 쥐가 난 적도 있었다. 내가 진짜 예민하구나,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다 싶어서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사람들한테 김호영은 긍정적인 마인드의 전도사이고 행복 바이러스 아이콘인데 그런 내가 병원 가서 상담 받고 넋두리한다는 게 너무 모순 같아서 혼자 견뎌보려고도 했는데, <모차르트 오페라 락> 하면서는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 결심하게 된 거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읽어야 하는 필수 도서가, 자신이 경험하고 치유받은 과정을 담은 어느 환자의 책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더라. 군대도 또 한 번의 계기가 될 것 같다. 인내를 기를 수도 있고, 내 안의 또 다른 뭔가가 폭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대 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서고 싶나.

격하게 달라진 모습보다는 ‘역시 김호영이구나’, ‘자기가 안 바뀌고 군대를 바꾸고 돌아왔구나’ 하는 얘기 듣고 싶다. 갑자기 변하는 건 좀 두렵다. 그냥 ‘호이스러움’으로 유쾌하고 상큼하고 화려하게 컴백하고 싶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1호 2012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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