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으로 빨래하러 왔어요
그간 <빨래>를 거쳐 갔던 40명이 넘는 배우들이 2,000회 기념 공연을 위해 모인 가운데, 일본인 배우 2명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노지마 나오토와 나카노 마나는 극단 시키 출신으로, 일본 무대에서 활동하는 와중에도 <빨래>에 반해 한국에서 한국어로 연기하는 데 도전했다. 나카노 상은 지난 10월 12일과 13일 양일간 서점 여직원 역으로 무대에 섰고, 노지마 상은 11월 11일 공연에서 한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솔롱고를 연기할 예정이다.
<빨래>를 처음 만난 건 언제인가요?
노지마 : 지난 2월 일본에서 <빨래>가 초연했는데, 제가 솔롱고 역으로 캐스팅된 후 한국에 와서 처음 보았죠.
나카노 : 저도 그때 나오토와 함께 봤어요. 저는 한국을 좋아해서 자주 여행 왔어요. 그때도 마침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빨래>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봤습니다.
노지마 : 그때 전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마나가 안내를 많이 해줬어요. (나카노 마나는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할 만큼 한국어에 능숙했다.) 처음 보았을 땐 ‘비오는 날이면’과 주인아저씨와 싸우고 난 후에 부르는 ‘참아요’가 굉장히 인상에 남았어요. 저는 솔롱고 역을 맡은 터라 주로 솔롱고의 감정을 따라가며 봤죠. 아, 2막 오프닝 때 작가 사인회를 하잖아요. 그때 마나가 (옆구리 찌르며) 나가 보라고 해서 저도 사인을 받았어요.
나카노 : (뻣뻣하게 차렷 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되게 웃긴 모습으로 서 있었어요.
노지마 : 그때 찍은 사진도 있어요. (웃음)
나카노 : 저도 완벽하게 다 알아듣진 못했어요. 특히 주인 할매가 하는 사투리는 어려웠죠. 전부터 일본 사람들이 한국 뮤지컬을 볼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을 일본에서 공연한다는 걸 듣고 무척 기뻤어요. 일본에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골목에서 시작하고 인정과 따뜻함이 넘치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어요.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웃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감추었던 마음이나 이루고 싶었지만 지금은 못 이루고 있는 꿈이 드러나서, 저도 제가 가진 꿈을 소중히 하고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한국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 이 작품을 보고선 확실히, 이제 시작해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빨래>에 직접 문을 두드려 오디션을 보셨다고요?
나카노 : 지난 두 달간 함께 연습했고요. 2,000회 기념 공연에서 두 차례 무대에 서요. 공연일이 다가오자 갑자기 무척 긴장됐는데, 그래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 함께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일상 회화는 무리가 없는데, 제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아직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두 달간 있다 보니 갑자기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웃음) 특히 여직원 역할은 대사가 너무 빠르고 어려워요. 이걸 잘 해내면 다른 역할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지마 상은 이미 일본에서 솔롱고를 연기하셨죠?
노지마 : 처음에는 이 작품을 일본식으로 번안해서 공연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국 공연 그대로 하게 됐죠. 한국과 일본은 연기하고 노래하는 스타일이나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은데, 한국 스타일을 살려서 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관객들도 한국 작품에 대한 낯설음을 느꼈겠지만, 처음에는 배우들 역시 작품에 완전히 스며들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해를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추민주 연출님이 워낙 격의 없이 친근하게 배우들과 소통하셨는데, 그런 연출 방법도 일본에선 특이하게 느낄 만한 부분이었죠. 하지만 연출님의 이야기를 통해 점점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고, 배우들이 이해한 다음에 표현하니까 관객들도 배우들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연출님이 엄마고 배우들은 자식처럼 그녀에게 배운 거죠. 그리고 배우들이 알려준 것을 배운 관객들은 그들의 지인들에게 이 작품이 좋다고 알리면서 패밀리가 늘어나는 느낌이었어요.
<빨래>를 본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노지마 : 처음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한류 팬들이 주로 보는 듯했는데, 나중에는 뮤지컬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줬어요. 일본에서 세 차례 공연했는데, 저는 처음 두 번의 시즌에 참여했어요. 처음에는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뒀다면, 두 번째는 한국의 <빨래>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2막이 시작되는 사인회 장면에서 솔롱고가 작가로 분장하고 나오잖아요. 처음에 비해서 회를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반응이 커졌어요. <빨래>가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람법을 제시한 것 같았죠.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크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어요. 일본에도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있지만, 관객들이 ‘한국에서 온 작품이니까 리액션을 좀 더 크게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적극적인 리액션에 관객들도 금방 익숙해졌고요.
일본에서 이미 솔롱고로 무대에 섰지만, 한국에서 한국어로 공연하는 데는 부담이 있겠죠?
노지마 : 처음 초대받았을 때는 일본어로 ‘참 예뻐요’를 부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달 전에 최세연 대표님이랑 추민주 연출님께서 한국어로 공연해보면 어떨까 제안하셨어요. 연출님의 연출 방법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같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혼자서도 계속 연습을 했지만, 역시나 제가 한국어로 연기했을 때 한국 관객들이 제대로 알아들을지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죠. 한 달간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대사랑 노래는 다 외웠고, 다른 배우들과 동선이나 호흡만 맞춰보면 될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제 (프레스 콜을 위해서) 처음 만나는 배우들과 처음으로 연기를 맞춰봤는데, 모두 <빨래>에 애정이 있는 배우들이라, 마음이 맞으면 언어와 국적 상관없이 다 통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나카노 : 맞아요. 이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이 작품을 사랑하고 있어서 통하는 점이 정말 많아요. 일본에서 공연할 때보다 애드리브도 정말 많고요, 상대 배우가 달라지면 같은 장면을 연기해도 매번 다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대사를 듣게 되어도 어색하단 생각이 안 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이 주고받게 되더라고요. 제가 외국인이라서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한 무대에 8명만 나오지만, 2,000회 기념 공연에는 40명 정도의 배우가 번갈아 출연하고 있어요. 한번에 아주 많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각각의 배우가 다르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도 되고요. 보기만 해서는 작품에 녹아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모르는 점들도 많았는데, 함께하는 배우들이 많이 가르쳐주셔서 조금 더 다른 눈으로 보게 됐어요. 그래서 <빨래>를 보는 일본인 관객들을 위해서 작품에 대해 미리 설명해주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분은 <빨래>라는 작품이 어떤 점에서 그렇게 좋은가요?
노지마 :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점이요. 이 작품을 접하고 나서 그동안 흘려보냈던 일상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안녕’을 듣고 있으면, 제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이 작품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아요. 오디션을 볼 때마다 연출가들이 진심으로 느끼는 듯 보이도록 연기하라고 했는데, <빨래>에서 상대 배우와 가까이 눈을 마주보고 표현하면서 정말 감정이 통하는 연기를 많이 배워서, 나중에 큰 작품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빨래> 공연 당시 <레 미제라블>의 오디션을 봤는데, 그 덕에 앙졸라 역도 맡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다른 작품을 할 때는 ‘이 역할이라면 이런 감정이겠지’ 하고 생각해서 연기했다면, <빨래>에서는 제 자신에게 스며들어 있던 감정이 연기로 연결돼 표현하게 됐거든요.
나카노 :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 제가 봤을 때 이런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이 볼 땐 그에게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관객 각자 공감하고 감동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노래에 ‘우리가 말려줄게요, 당신의 아픈 마음을’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우리, 파이팅!’이나 ‘힘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이런 가사는 다른 뮤지컬에는 없었어요. 제 눈을 보면서 ‘당신의 아픔을 말려줄게요’라고 말해주니, 힘내라는 마음이 더욱 크게 전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받은 대로, 제가 무대에 서서 그런 에너지를 관객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에서 연습하며 느꼈던 것과 이뤄왔던 것들을 다 담아서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0호 2012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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