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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회전무대 없는 <레 미제라블> [No.111]

글 |조용신 사진제공 |조용신,KCMI 2012-12-27 5,799

“뭐? <레 미제라블>에 회전무대가 없다니! 그게 가능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평생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2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시작된 포은아트홀에서 이른바 ‘25주년 기념 뉴프로덕션’(The New 25th Anniversary Production)의 무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말을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해외에서 먼저 이 작품을 관람하고 감동을 받은 한국인의 숫자가 적지는 않을 것이고 그들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이 작품의 핵심적인 비주얼은 트레버 넌(Trevor Nunn)과 존 케어드(John Caird)가 연출하고 존 내피어(John Napier)가 디자인했던 회전무대와 그 위에서 벌어지는 장면 전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막 회전무대 위에 놓인 거대한 바리케이드 세트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동일시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뉴’프로덕션은 그 아이콘 자체가 바뀌었다.

<레 미제라블>의 회전무대는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1985),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1987), 총 세 번의 월드투어 프로덕션에서도 한결같이 유지되었다(1996년과 2002년 두 차례 내한 공연도 마찬가지다). 2003년에 막을 내렸다가 3년 후 다시 막을 올린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2006~2009)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편성과 러닝타임은 줄였지만 3차 투어 프로덕션 세트를 사용했기에 회전무대는 유지되었다.

 

 

물론 전 세계에서 공연된 모든 <레 미제라블>의 로컬 프로덕션들이 그 회전무대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의 허가 아래 올려졌던 적지 않은 지역 프로덕션(Regional Production)이 있어 왔고 텍스트와 음악만을 가지고 주로 젊은 세대의 창작진들이 그들의 유년시절에 큰 울림을 주었고 이미 고전이 된 이 작품의 재해석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그중에서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D.C. 근교에 위치한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 형태의 비영리극장인 시그니처 시어터에서 예술감독 에릭 쉐퍼의 연출로 올려졌던 소극장 버전의 프로덕션은 대담할 정도로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덕분에 이 극장은 2009년 토니상 지역 극장상을 받았다. 그보다 3개월 앞서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에 위치한 아이젠하워 홀에서 올려졌던 로컬 프로덕션은 3차 월드 투어와는 별도로 미국 동부 지역만을 순회하는 미니 투어 버전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때 무대디자이너 맷 킨리(Matt Kinley)는 대극장 버전이면서도 턴테이블(회전무대) 장치가 없는 무대를 고안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효율적이면서도 오리지널 무대를 예술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매킨토시가 그를 1년 후 영국 카디프에 위치한 웨일즈 밀레니엄 센터에서 초연을 한 -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보고 있는 - ‘뉴’프러덕션의 무대디자이너로 만들었다.

 

맷 킨리의 무대 후면에는 파리의 풍광을 나타내는 빅토르 위고의 그림이 영사된다. 장면에 따라 변하는 이 영상은 2막 중간, 혼절한 마리우스를 장 발장이 업고 걷는 하수구 장면에 이르러 거미줄 같은 파리의 하수구를 연상케 하는 지하의 공간감과 방향감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감성적인 테크놀로지’의 진가를 발휘한다. 자베르가 최후를 맞는 세느 강 다리 위 투신 장면에서도 다리가 솟구치는 오리지널 연출에 대한 오마주에 덧붙인 특수 조명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깊게 각인되는 효과를 준다. 가장 유명한 혁명군의 바리케이드 장면의 경우 회전무대에 실려 180도 회전하며 적군과 아군 진영 모두의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했던 존 내피어의 무대와는 달리 바리케이드 안쪽 혁명군 진지의 광경만 보인다. 그러다보니 소년병 가브로쉬의 최후와 혁명기에 덮혀 영원히 잠든 앙졸라를 보여주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단편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대신 혁명군 진지의 시민과 학생 병사들의 용감한 최후가 세심하게 펼쳐진다.

 

이번 ‘뉴’프로덕션의 공동연출가인 로렌스 코너(Laurence Connor)와 제임스 파웰(James Powell)은 2010년 12월 이 버전의 미국 투어 첫 출발지인 뉴저지주 밀번에 위치한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The Paper Mill Playhouse) 초연을 앞둔 인터뷰에서 ‘오리지널 회전무대와 바리케이드가 25년 동안 관객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작품에 담긴 근본을 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근본이란 다름 아닌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담긴 의미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무대 언어를 위해 훌륭한 화가이기도 했던 위고의 수채화를 사용한 백드롭 이미지에 사실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더해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구현했다. 변화된 무대와 짧아진 러닝타임에 맞게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위해 편곡을 통해 일부 곡들을 정비하는 작업도 거쳤다.

 

이제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한 <레 미제라블>은 더 이상 스펙터클한 무대장치를 담보로 한 단어인 ‘메가(Mega)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통용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과거에 회전무대에 의지해 우아하게 등퇴장하던 배우들은 대부분의 대소도구를 직접 챙기며 ‘장면 전환의 노동’을 겸한다. 더군다나 작품 전체의 무게를 덜되 조명과 오케스트라를 통해 다른 의미로 무게감을 채워 넣었다. 특히 어두운 조명과 함께 프로덕션 전반에 흐르는 무게감은 때로는 우울한 월요일 저녁인 양 숨이 막히게 만드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뒤집으면 이번 버전에서는 장치 스펙터클보다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더 중요시하는 세심함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컴퍼니가 ‘Empty Chairs at Empty Tables’를 부를 때, 오리지널 버전에서 마리우스 뒤를 일렬로 서서 압박하던 혁명의 유령들이 이번에는 바닥에 놓인 촛불을 끄는 장면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회전무대가 사라지면서 생긴 소소한 재미의 변화를 찾는 것은 이 작품의 오랜 팬들의 기쁨을 위해 남겨두려 한다. 무대는 시대에 따라 해석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회전무대는 이 작품의 아이콘으로서의 오랜 지위를 누렸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오랜 팬들을 놀라게 했던 회전무대가 없는 <레 미제라블>의 존재도 결국 가능했다. 하지만 사랑, 미움, 용서, 배신, 희생, 박애주의라는 인간의 심오하고 굵직한 정서들이 캐릭터마다 오롯하게 살아있는 텍스트와 음악이 없는 <레 미제라블>은 존재할 수가 없다. 장 발장의 ‘Bring Him Home’, 에포닌의 ‘On My Own’은 회전무대가 있든 없든 여전히 그 자리에서 객석에 앉은 우리들의 심장을 소용돌이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1호 2012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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