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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블랙메리포핀스> 강렬한 스토리, 허술한 극작술 [No.120]

글 |박병성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2013-10-07 4,544

<블랙메리포핀스>는 분명 흥미로운 작품이다. 동화를 잔혹 동화로 뒤집어놓은 아이디어나, 숨겨진 결말의 주는 충격, 그리고 행복을 위해 기꺼이 불행(한 기억)과 동행하겠다는 성숙한 메시지 등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 반면 모호한 전개와 상징의 과잉으로 난해하다는 평도 받았다. 작년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엇갈렸던 이 작품이 올해 조금 더 큰 공연장으로 옮겨 재공연을 하고 있다. 극장이 커지긴 했지만 대사가 좀 더 다듬어진 것 이외에 무대장치나 안무 및 연출 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블랙메리포핀스>는 힘든 공연이다. 일단 내용적으로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감당하기에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고, 추리물의 구조이지만 형식이 너무 불친절하고 얼개가 성글기 때문에 추리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점점 더 자극적인 스토리를 요구하는 시대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이다. 반면 추리물임에도 논리성이 약해 추리의 재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큰 단점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 글에는 작품의 핵심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온전히 작품 자체만을 즐기고 싶은 이라면 여기서 그만 읽기를 권한다.

 

 

비유와 상징으로 암시되는 유년의 상처

 

최근 스토리를 꼬아놓아서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을 종종 만난다. 뮤지컬은 별다른 학습을 받지 않아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보통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인 뮤지컬 문법을 넘어서고 욕망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되진 않지만, 작품의 난해함이 소통되지 않은 상징이나 비유나, 복잡한 구조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블랙메리포핀스>에서도 상징과 암시, 비유가 많다. 오프닝은 마리오네트의 그림자 극으로 시작한다. 중앙에 세 개의 기둥만이 남겨진 사각 무대가 놓여 있고 뒷면으로는 액자틀이 겹쳐져 있다. 그 중앙에는 계단들이 바닥을 향해 사각의 나선형으로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블랙메리포핀스>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내면을 무대화했다. 그것이 작품의 스토리나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해서 난해하지는 않다. 오프닝의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꼭두각시였던 아이들의 신세를 암시했던 것이고, 사각 틀로 이루어진 무대는 작품에서 기억과 망각이 중요한 모티프로 쓰이고 있어 그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사실적인 사건보다는 아이들의 내면의 상처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무대를 사용한 것은 적절했다. 어린 시절 의자 뺏기 놀이에서 요나스가 여자인 안나를 거칠게 밀어내는 장면은 그 의외성 때문에 큰 웃음을 준다. 그 장면은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발적이고 우발적으로 박사를 죽이게 되는 요나스의 행동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이처럼 <블랙메리포핀스>에서는 상징과 비유가 많긴 하지만 관객과 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분위기와 정서가 같은 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정서는 무대와 음악, 안무까지도 연결된다. 이것들은 망각된 기억, 그것이 무언가 아픈 상처였음을 암시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도한다.

 

<블랙메리포핀스>가 동일한 정서와 분위기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컨셉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명확했다. 아픔을 잊게 만드는 실험에 동원된 아이들이 끔직한 상처를 봉인한 채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상처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서툴렀다.

 

허술한 추리극 구조

 

스릴러 형식을 택한 것은 숨겨진 상처가 무대에서 보여졌을 때의 충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내내 머리를 쥐어뜯던 관객들도 아이들의 상처가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얼이 쏙 빠져 무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극 형식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누가 왜 박사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구조를 취하는데 그 질문에 따라가는 흥미를 주지 못했고, 오히려 복잡한 전개로 상황 파악을 어렵게 했다. 관객들이 극 초반 극심한 피로를 느끼는 것은 상황을 명료하게 전달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이 시작해서 나오는 두 곡 ‘1926년 그라첸 박사 대저책 화재사건’과 ‘사건 정황’은 정보를 전달하는 노래다. 오직 가사만으로 사건의 정황을 보여주는 곡으로 관객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가사를 들어야 한다. 이런 형식에서 전달하는 내용이 명료하지 않거나 가사가 잘 안 들린다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셜록홈즈>에서 ‘춤추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셜록홈즈>는 단조로운 선율로 정보 전달에 신경을 쓰고 명확하고 직접적인 가사를 썼다. 반면 <블랙메리포핀스>에서는 아무런 기초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가사에 비유적인 표현이 많았고, 내용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블랙메리포핀스>의 음악은 분위기로는 작품과 맥을 같이 했지만, 드라마 전개에 있어 전혀 기능적이지 못했다. 앞부분은 주로 정황을 파악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노래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아무래도 노래는 사실보다는 분위기 전달에 용이하다. 그들에게 어떤 끔직한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기능은 하지만 명확한 정보 전달을 하는 데는 실패한다. 추리물의 일반적인 구조가 질문을 던지고 하나둘 정보를 제공하면서 해답을 찾아가게 하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질문도 정보도 모호해서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던져주지 못한다.

 

작품은 사건의 단서를 한스가 하나씩 던져주며(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한스는 <쓰릴 미>의 구조처럼 재판장에서 메리의 사건을 복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 것은 한스가 극 중간중간에 ‘존경하는 재판장님’ 등으로 운을 떼며 법정에서 상황을 해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사이사이 나오는데 설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종 재판장에 섰을 때는 이미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스의 대사를 보면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건 이후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 진실에 접근할 때도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에서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밝혀지는 것이지만, 그는 이미 박사의 수첩을 통해 그들이 나치의 실험 대상인 것을 알았으며, 메리를 감금했고, 그래서 아이들을 모은 것이다. 극 중 재판 시점과 아이들이 모여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 그리고 추억 속의 시점을 오고가며 ‘누가 박사를 왜 죽였는지’에 다가가는 구성이다. 한스의 정보량은 재판 시점과, 아이들이 모여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에 따라 달라야 하는데, 그의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스의 정보량은 극 안의 시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관객들에게 노출하고 싶은 만큼만 알고 있는 것으로 설정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추리물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단편의 조각들이 긴밀하게 맞아가야 재미를 주는데, 이 작품에서는 기본적인 설정들이 허술하다. 기억이 봉인된 아이들은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린 한스는 거짓 증언으로 메리를 다시 수사하게 한다. 자신들이 의심받을까봐 위증을 한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그의 행동을 설득시키기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장면인 봉인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장면도 ‘갑자기 기억해내는 방식’으로 너무 쉽게 공개된다. 

 

박사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이 너무 강렬하고 잔혹해서 이전까지 비논리적인 전개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장면이 더 강렬해지기 위해서는 앞부분의 과정이 더 치밀해져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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