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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십자가에서 내려온 ‘지저스’, 세련된 종교극으로 부활하다 [No.117]

글 |정수연(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3-07-10 4,810

개인적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는 좀 각별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이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중반. 한참 예민한 사춘기 중딩에게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연극과는 뭔가 확연히 다른 자유로운 느낌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느낌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희박했다. 생각해보라. 그때 예수가 유인촌이었고 유다는 추송웅이었다. 이 작품의 무시무시한 노래를 이 배우들이 어떻게 소화했을까.(소화를 못했음이 확실하다!) 생각해보면 라이선스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 뮤지컬의 명맥은 외국의 수준 높은 뮤지컬을 ‘완성’한다기보다는 ‘소개’하겠다는 열의에 의해 이어져왔다. 그러다보니 작품의 명성과 공연의 실제는, 거의 예외 없이,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더랬다. <지저스>도 그런 경우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저스>는 이제야 비로소 제 모습답게 관객을 만나는 셈이다. 이번 공연은 그렇게 보기에 손색이 없다.

 

 

<지저스>를 완성하는 두 개의 열쇠

 

이 공연이 완성도를 성취하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바로 음악. 어떤 뮤지컬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작품만의 독특함을 빚어내는 하나의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음악일 테지만, <지저스>에서 음악의 비중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절대적이다. 노래의 압도적인 분량 뿐 아니라 록이라는 강렬한 색깔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녹록치 않은 음악을 배우가 어떻게 소화해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작품의 만듦새는 전연 달라질 판이다. 이번 공연이 이룬 성취는 단연 음악의 완성도를 놓치지 않았음에 있다. 록의 특징을 오롯이 살린 음악감독 정재일의 역량이 돋보이고, 무엇보다 그 음악을 성량으로나 극적으로나 넘치게 표현해낸 배우들의 기량이 눈부시다. 마이클 리의 ‘겟세마네’를 들어보시라. 서정성과 파워가 함께 어우러지는 록의 분위기를 온전히 살리는 그의 노래는 삶과 죽음의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예수의 절규라는 극적인 맥락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지저스>의 음악은 록커의 가창력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뮤지컬에서 배우의 음악적 기량은 연기라는 맥락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법. 이 공연에서 배우들의 노래는 비할 바 없이 록답고,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이다. 듣는 재미로 친다면 최근의 공연 중에 단연 ‘갑’이다.

 

보는 재미도 빠지지 않는다. 언뜻 윈도우 7의 바탕화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공연의 무대는 이미지에서나 기능에서나 여러모로 제 역할을 해낸다. 커다란 조형물은 광야의 모래탑을 연상시키는데, 단순한 모양새임에도 연기 공간의 확보와 극의 분위기 조성이라는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이 공연의 무대는 영화적인 설명의 문법에 가까워지는 여타 대형 뮤지컬의 무대운용에 비해 공연적인 문법으로 공간을 풀어내려는 데 미덕이 있다. 즉 전환을 최소화하고 조형물의 이미지와 상징성을 활용하면서 배우의 연기 공간을 확보해주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유다가 죽을 때 밧줄은 위에서 내려오고 나무는 옆에서 들어오는 식의 불필요한 친절함만 뺀다면(유다가 나무에 목을 매단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 무대는 공연의 완성도에 성실하게 기여한다.

 

종교성을 부각시키는 ‘도발적’인 해석

 

<지저스>가 갖는 독특함은 다른 작품에 비해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데 있다. 이것이 완성을 이루는 두 번째 관건일 거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대다수의 뮤지컬이 원형에 가까운 재현을 완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비해, <지저스>는 주제에서부터 인물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해석에 열려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독보적이다. 예수와 유다에게 얼마나 다른 얼굴을 덧입힐 수 있는지는 브로드웨이의 숱한 전례가 이미 충분히 증명하는 바다.

 

 

이렇듯 <지저스>의 정체성은 성경이라는 소재의 ‘경건함’에 반비례한, 파격과 도발의 범주에 있어왔다. 성경의 이야기에 록음악을 붙인 형식도 그렇고, 예수의 신성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동시에 유다의 배신을 파멸도 마다않는 인간의 집요한 질문으로 설정한 기본포석은 이 작품의 관심이 성경이 아니라 인간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기독교의 입장을 경쾌하게 담아내는 이런 태도야말로 기독교 문화의 정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할 때, 이 작품을 굳이 종교적 심성으로 바라볼 필요는 이미 사라진 셈이다. 앤드로 로이드 웨버는 자기네들의 뿌리 깊은 전통을 어렵지 않게 살짝 뒤집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지저스> 공연이 택한 해석의 입장은 오히려 ‘도발적’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관점이 파격적인 뒤집기가 아니라 진지한 굳히기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파격이 아니라 종교적 발견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해석은 오히려 적극적이다. 예수의 고뇌는 피폐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애통함과 신으로서 자신의 감당해야 할 고통 사이에 있을 뿐, 신과 인간 사이의 정체성에 놓여 있지 않다. 예수는 처음부터 온전한 신성이다. 이 공연에서 예수는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유다의 정체성도 여기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려는 예수의 선택을 말리려 하지만 애초부터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첫 장면뿐 아니라 예수의 죽음을 말리는 장면까지 유다는 예수에게 무릎 꿇고 애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선택에 그저 간절히 매달려 빌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대변하듯이 말이다. 이 공연에서 유다와 마리아는 예수를 경외하는 좌청룡 우백호, 색깔 다른 데칼코마니다. 여기에 예수의 대립자는 없다.

 

마이클 리나 한지상의 연기가 노래에 비해 입체적이지 않은 것은 역량의 문제라기보다는 역할의 설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공연에서 예수와 유다의 고민은 내면에 있지 관계에 있지 않다. 빌라도(지현준)가 토해내는 비장한 감정의 과잉도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게다. 예수에게 굴복되지 않은 이상 예수의 죄 없음에 빌라도가 그렇게 괴로워할 필요는, 사실 없다. 유다의 스타일리쉬한 의상에 비해 실패한 개량한복 같이 어정쩡한 예수의 의상도 예수라는 ‘형상’을 바라보는 고전적인 시선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일 터.(무대 위의 예수님들은 언제 멋진 의상 좀 입으시려나!)

 

 

이 공연의 해석적 자의식은 여러 군데 걸쳐져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연상시키는 채찍 장면이나, 의도적으로 배치한 영어 가사 등은 이 작품의 종교적 자의식과 원본에 대한 자의식을 잘 보여준다.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어떤 것은 녹아들지 못해 삐걱댄다. 일례로 헤롯이 예수를 조롱하며 ‘King of the Jews’라고 노래하기보다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한국어로 분명히 들릴 때 헤롯과 예수의 중첩은 더 분명히 관객에게 다가올 수 있었을 거다. 영어 가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작품에서 무슨 역할을 하느냐에 중요할 텐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공연의 영어 가사는 가사를 듣는 관객의 집중을 자주 흩어놓는다. 

 

그럼에도 <지저스>는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도, 종교가 싫은 사람에게도 뮤지컬의 품위를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지저스>는 한국의 공연계에서 처음으로 일군 세련된 종교극의 전례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여기서 종교극이라는 말은 작품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예술적 폄하의 첫 번째 척도가 돼버린 종교적 진지함을 뮤지컬이라는 대중예술의 화술로 충실히 담아냄으로써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일궈냈다고 봐야 할 거다. 머리의 즐거움보다 가슴의 뭉클함이 도드라지는 <지저스>도 생각보다 매력적이더라. 사춘기 중딩 때의 아슴아슴한 첫인상이 이제야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기분 좋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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