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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그날들> ‘그날들’을 ‘사랑했지만’ 아직은 ‘기다려줘’ [No.116]

글 |정수연(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2013-06-02 4,872

<그날들>을 기대했던 이유

김광석의 노래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걱정보다 기대가 컸던 이유는 순전히 장유정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사실 주크박스로 장르 이동을 하는 노래나 가수치고 훌륭하지 않은 예는 없다. 하지만 귀로 들어 마음에 꽂히던 노래가 눈으로 보아 시시해진 경우를 적잖이 경험하기도 했고, 게다가 ‘김광석’은 단순히 좋은 옛날노래가 아니라 어떤 정서와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 아니던가. 이런 노래를 재료로 뮤지컬로 만드는 일은 분명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감을 가졌던 까닭에는 ‘김광석의 노래’에서 출발한 이 작품이 ‘장유정의 창작뮤지컬’과 어떻게 만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장유정은 한국 창작뮤지컬 동네에서 극작의 완성도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의 대표격이다. 별 것 아닌 연애 이야기도 맛깔나게 빚어내는가 하면(<김종욱 찾기>), 기구한 사연을 나열하느라 자칫 지리멸렬할 뻔했던 이야기에 추리라는 그럴듯한 옷을 입혀 재미를 감동으로 잇기도 하고(<오, 당신이 잠든 사이>, 엄숙한 종갓집 종손의 사연을 소재로 삼는 신선한 발상까지(<형제는 용감했다>), 그의 작품은 완성도와 함께 작품마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성취를 일궈왔다. 작가의 자의식이 무리하게 개입하기보다는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면서 디테일을 잡아내는 대사의 재치와 감칠맛도 돋보였더랬다.

 


장유정의 작품이 전형적인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노래가 가미된 연극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면모는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켰는데, 오로지 배우의 역량으로 제한된 시공간을 가변적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연출의 재치가 만들어낸 최고의 캐릭터 멀티맨이 그 좋은 증거인 셈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장치로 최대한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솜씨도 그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장유정과 김광석은 어느 정도 교집합을 형성할 수 있는 조합처럼 보인다. 뜨거움과 담담함이 아련하게 섞인 김광석 노래의 정서와, 평범한 사람들의 뻔해 보이는 이야기에서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장유정의 솜씨는 언뜻 잘 엮일 수 있을 것 같다. 통기타 하나만으로도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성량을 뿜어내던 김광석의 에너지와, 아무 것도 없는 빈 무대를 배우의 연기만으로 충분히 채워내는 장유정의 재치도 공통분모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들>을 노래에 초점을 둔 공연이 아니라 노래로부터 독립된 극으로서 완성하겠다는 창작의 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 게다. 노래의 정서를 읽어내면서도 노래에 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에서 이 작품의 성격이 김광석의 추모 콘서트가 아닌 장유정의 창작뮤지컬임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쯤 되면 관객으로서 기대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날들>의 과감한 시도가…

그러한 다짐에 걸맞게 <그날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야기의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청와대 경호관들이 주인공인데,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이지만 그것을 엮어나가는 방식은 꽤나 입체적이다. ‘중요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2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추리나 시간의 역추적 등 장유정의 전작과 비슷한 패턴이지만 이런 설정은 관객의 시선을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두는 데 여전히 효과적이다. 20년 전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오가는 이야기의 교차는 간단한 연출의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지금까지의 주크박스 뮤지컬과 비교해볼 때 <그날들>의 이야기는 지루할 새 없이 짜임새 있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분명 미덕이 있다.    

눈에 띄는 두 번째 요소는 김광석의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공연에서 김광석의 노래는 ‘김광석’이라는 아우라로부터 확실히 자유롭다. 원곡에 매이지 않는 과감한 편곡도 그렇고,  노래에 극을 붙잡아 매기보다 극의 전개에 오히려 노래를 부수적으로 개입시키는 뮤지컬적인 해석 또한 그렇다. 노래의 정서와 드라마의 전개가 충돌할 때 중심축은 언제나 드라마에 있다. 주크박스라는 장르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위험부담이 많은 접근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들>은 노래를 철저히 재료로 사용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작품의 기반은 온전히 드라마에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그날들>이 지닌 주크박스로서의 새로운 문법은,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눈여겨 볼만하다.

 

아직은 아쉬운 이유

굳이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음’을 얘기한 것은 <그날들>이 의도한 것이 명확한 만큼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한계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한계가 ‘없는 것을 시도하는 데서’ 만들어진 것이기보다는 ‘있는 것을 놓쳐버린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극작가와 연출가로서 장유정이 가진 미덕을 상수로 놓는다면, 이 작품에서 새롭게 시도한 도전들은 그 상수 위에 쌓이는 변수로 작용해야 할 터. 그러니까 변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필수조건은 상수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상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유정의 장점은 별 것 아닌 이야기 속에서도 디테일을 통해 사건 속의 사람들을 특별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즉 전형적인 틀 속에서도 구체적인 캐릭터를 볼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모든 역할에 걸쳐 그런 맛이 확연히 떨어진다. 일례로 청와대 경호관이 주인공, 알고 보니 가족도 없고 과거도 알 수 없더라는 설정 자체의 무리수도 그렇고(청와대 인적사항 뒷조사가 얼마나 꼼꼼한데!), 굳이 그런 설정을 해놓고도 그것이 이 인물을 설명하는데 별로 결정적이지도 않은 식이다. 그저 사건을 위한 사건의 나열이랄까. 사라졌던 여자가 2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나, 간첩으로 의심받던 경호관이 군대 하사관으로 끌려갔다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는 설정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바로 무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 커튼을 연상시키는 배경 막에 영상이 구현하는 공간의 첫인상은 멋스럽다. 그런데 언뜻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무대가 극에 개입하는 방식은 지극히 설명적이다. 대사의 내용대로 재현되는 무대 영상은 친절함을 넘어서 분주할 정도다. 송화가루 얘기하면 송화가루 날리고, 영화 보겠다고 하면 영화 장면이 두둥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진다고 노래하니까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더라. 세련된 느낌에 비해 써먹는 방식은 엄청 촌스럽다. 배우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무대의 잦은 전환도 실망스럽다. 무대의 설명적 과잉 속에서 연출적 상상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법. 대극장 공간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 연출을 선택한 것일 테지만 화려할수록 진부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김광석의 노래를 상수가 아닌 변수로 설정한 것이 패착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여러모로 ‘극’에 치중하려는 의도가 살아나지 못할 때, 극적 상황과 맞지 않는 노래 가사는 드라마와 노래의 부조화를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첫 장면 ‘변해가네’의 뜬금없음이란. 이런 난데없음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 <그날들>에 김광석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는 셈이다. 김광석의 노래에서 출발한 이 작품에, ‘김광석은 없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극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유정의 작품에서는 항상 배우가 눈에 보였었는데.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삼은 또 다른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간다고 하니, <그날들>의 독특함과 아쉬움, 성과는 그때 다시 회자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주크박스의 창작 방식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했던 시도는 높게 평가해야 할 거다. 단 김광석의 노래를 정말 사랑하는 분들은 이 작품을 보면 생각이 복잡해질 테니 부디 잘 결정하시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6호 2013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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