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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EOPLE] <인당수 사랑가> 임강희 [No.110]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김호근 2012-11-12 5,321

들꽃 같은 마음으로 지켜온 10년

 

초연 이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창작뮤지컬 <인당수 사랑가>가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무대를 마련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당수 사랑가>는 고전소설 『심청전』과 『춘향전』의 스토리를 살짝 비틀어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 효성 지극한 심청과 지조 있는 성춘향의 캐릭터가 합쳐진 주인공 ‘심춘향’ 역에는 배우 임강희가 함께한다. 관객으로 만났을 때부터 이 작품과 춘향의 캐릭터에 흠뻑 빠졌던 그녀지만, 초연도 아니고 이렇게 오랫동안 롱런하면서 많은 배우들이 거쳐 간 캐릭터에 새로 도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대 춘향들이 모두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었던 만큼, 이번 무대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해석과 매력이 담긴 심춘향을 보여주고자 한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임강희에게 떠오른 춘향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들꽃 같은 아이’였다.

 


춘향에 대한 뜨거운 고민  

 

“춘향은 아무리 꺾어도 꺾이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지닌 들꽃 같은 아이에요. 또, 한번 연 마음은 절대로 닫지 않을 만큼 심지가 굳은 아이죠. 어떤 면에서 춘향이가 지키고자 한 것은 몽룡이라는 한 남자가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사랑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신의 선택을 굳게 믿고 끝까지 지킨다는 점에서 참 멋진 캐릭터죠.” 알면 알수록 춘향의 매력에 빠져들지만, 그만큼 이를 표현하기 위한 배우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특히 춘향 캐릭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 ‘절대적인 믿음’이 임강희에게는 그야말로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이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테크닉으로 커버할 수 없는 텍스트 때문이거든요. 연습이건 공연이건 매 순간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제가 진짜 믿는 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들통 나거나 갑자기 유치해져요. 그래서 연습 때도 대충 할 수가 없는데, 매번 그렇게 마음을 다하려니 너무 힘들죠.”


한편, 극 중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는 이몽룡과 변학도는 <인당수 사랑가>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특히 원작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인물로 등장하는 변학도는 매 공연 여성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변학도, 멋있죠. 어떻게 이런 남자한테 마음이 끌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 춘향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몽룡이가 더 좋아요. 몽룡이는 변학도에 비하면 아직 어린 철부지지만, 사랑의 크기만큼은 어마어마하거든요. 별다른 목표도 없이 한량처럼 살아가던 몽룡이가 춘향을 만나고서는 인생이 바뀌어요. 명확한 목표가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죠. 그래서 결국 과거 급제하고 돌아오잖아요. 저는 그런 면이 남자로서 참 멋있더라고요. 그리고 춘향이가 인당수에 빠지자 모든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따라서 뛰어들잖아요. 한 여자로 인해 인생을 통째로 변화시키고, 또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남자. 전 역시 몽룡이의 사랑이 더 감동적이에요.” 

 

 

세월의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번 <인당수 사랑가>의 1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 중인 임강희 역시 무대에 선 지 햇수로 10년 차에 접어든다. 2003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한  이후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곱고 단아한 외모와 보이스 컬러 때문에 그동안 주로 청순한 역할을 도맡아왔지만, 무대에 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존의 캐릭터에서 탈피해 뭔가 좀 파격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망도 커졌다. “예전에는 그 욕망이 더 극단적이었어요. 아주 도발적이고 섹시하고 어두운 역할을 맡고 싶었는데 그건 과한 욕심인 것 같고, 요즘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새로운 면을 찾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싸이코패스 같은. 아주 착하게 생겼는데 안에는 섬뜩할 만큼 악의가 있는 그런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10년의 세월 동안 무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냥 좋은 마음으로 무작정 무대에 섰다면 이제는 무대가 얼마나 무섭고 또 정직한 곳인지 알기에 늘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삶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면서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서른이 넘어서 너무 좋아요. 나이 들면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감성적으로도 더 깊은 것들을 느끼게 되는데, 여배우로 그런 데서 도움을 많이 받거든요. 예전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딱 무대 위 내 역할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고, 그렇게 보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10년간 무대를 지켜오면서 임강희에게는 배우로서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스스로 “끼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는 첫눈에 사람들을 휘어잡고 노래든 춤이든 한번에 해내는 배우들에 대한 열등감이 항상 있었다. 저렇게 끼 많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 넘치는 무대에서 내가 과연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생겨났다. 특히 지난 3년간은 그런 생각이 깊어져 남몰래 마음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연 마음은 닫을 수 없다는 <인당수 사랑가>의 춘향처럼 임강희에게도 무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고민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면서 임강희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성장해왔고 그런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믿음도 점차 더 깊고 단단해졌다.  

 

“예전에 선배 언니들이 ‘강희야,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했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대에서 여배우로 버틴다는 것, 그게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변하고 성장하면서 버티는 건데, 정말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한편으론 중도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기도 해요.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그렇게 평생 무대를 지키려고 해요.” 열정은 순식간에 불타오르기도 하지만 고요히, 그러나 끊임없이 타오르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임강희는 바로 그런 열정을 지닌 배우다. 그리고 그런 배우가 나이를 먹고, 세월의 흔적을 자기 안에 새기면서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참 커다란 행운이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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