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서른넷의 여주인공 김선아가 지난 10년간 인격 모독과 성희롱 수준의 발언을 일삼는 부장의 얼굴에 사직서를 던지는 장면에서, 이유는 달랐겠지만 매우 공감하며 통쾌해 했을 직장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가슴속에 참을 인(忍)을 아로새긴 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를 주문처럼 되뇌고 업무와 사람 스트레스를 삭이며 하루하루를 사는 직장인들의 어깨를 도닥여줄 뮤지컬이 개막한다. 이름하여 <막돼먹은 영애씨>.
케이블채널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는 (아무래도 배우 이영애로 인해) ‘영애’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가녀리고 단아한 이미지와 달리 후덕한 외모를 가진 영애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리얼 다큐를 표방한 관찰자 시점의 카메라와 내레이션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튼튼한 외모의 영애는 집에서는 얼른 시집가라고 구박을 받고, 회사에서는 외모로 성격과 능력까지 평가받으면서도 이 막돼먹은 세상을 열심히 온몸으로 부딪혀 가며 살아가고 있는 30대 싱글 여성 직장인이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2007년에 시작된 첫 번째 시즌부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즌제 드라마에 성공한 원작 드라마는 지난 9월부터 아홉 번째 시즌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오피스 뮤지컬’을 표방하는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는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가 초점이 되었던 원작 드라마와 달리 ‘꿈을 꾸기에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애매한’ 30대 여성 직장인 영애 씨의 직장 이야기에 집중하는 한편,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부여해 입체감을 주었다. 사회 초년생과 여성 직장인의 꿈과 고충, 진한 동료애, 사내 연애, 상사와의 갈등과 해소, 암암리에 행해지는 외모 차별, 야근, 이직 등 직장인으로서 한번씩은 경험하고 고민해봤을 일들을 마치 마음을 읽는 듯한 가사로 풀어낸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지위, 성격, 가치관에 따른 고민을 동료에게 속풀이하듯 관객에게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연출을 맡은 젊은 연출가 이재준은 제작 발표회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관객과 공감대를 나누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밝히며 “매일 가는 사무실이 지겹고 힘들어도 그 안에서 행복감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동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은 충분히 값어치 있고, 아름다운 것임을 상기시켜 주는 선물 같은 공연이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2년의 사전 기획 단계를 거쳐, 정확한 타깃층을 설정하고 공감의 포인트를 분석하여 컨셉을 잡은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 이 작품 의 창작진은 타깃 관객층과 동일한 30대로 이뤄져 있다.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극적인 하룻밤>의 연출가 이재준이 연출을 맡았고, <오월엔 결혼할거야>에서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내는 감각을 보여준 김효진 작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故 안현정 작가가 대본을 썼다. 여기에 팝, 록, 디스코,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23곡으로 관객의 귀를 무조건 즐겁게 해주겠다는 김경육 작곡가가 뭉쳐 뮤지컬계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
5년간 영애를 맡아 이제는 실제 이름보다 ‘영애씨’가 더 익숙한 김현숙이 TV에 이어 뮤지컬에서도 주인공 영애를 맡아 1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린 공개 오디션에서 새로 뽑힌 박지아와 번갈아 공연한다. 이외에도 드라마의 첫 번째 시즌부터 다섯 번째 시즌까지 연하남 원준 역으로 등장했던 최원준이 뮤지컬에서도 그대로 원준 역으로 출연하며, ‘발레리노’의 개그맨 박성광과 코믹 연기의 달인 임기홍이 사장에게 아부하며 뭐든지 적당히 때우는 중간 관리자 박 과장 역에 캐스팅되었다. 이외에도 영애의 절친으로 시시콜콜 박 과장과 티격태격하다 애매한 관계에 빠지는 돌싱녀 변지원 역에는 백주희, 예쁜 외모로 다소곳한 척하지만 미인계로 출세와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김태희 역에는 김유영, 잔소리가 심하지만 마음 약한 기러기 아빠인 사장 역에는 서성종 등 막강 조연 군단이 드라마의 감칠맛을 더할 예정이다.
제작 발표회에서 “로맨틱 코미디와 구별되는 오피스 뮤지컬로 소통과 공감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고 운을 뗀 CJ E&M의 박민선 공연 제작 팀장은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가 ‘CJ 드라마컬’이라 부르는 CJ미디어 제작 드라마의 뮤지컬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라 언급하며 “원작의 인지도를 뛰어넘는 무대만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11월 18일 ~ 2012년 1월 15일 / 컬처스페이스 엔유 / 1577-3363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