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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헤드윅> 이츠학 [No.109]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10-29 4,674

외로운 세상 지친 영혼이여, 지지 말아 포기 말아

 

오늘 드디어 이츠학에게도 여자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왔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길. 당신도 당신만의 무대를 갖기를! 


* 이 글은 이츠학을 연기한 배우 이영미와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당신, 오늘 공연하는 동안 계속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난 크로아티아에서 드래그 퀸으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선 인종 청소가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유태인인 데다가 성적 소수자였던 난 제일 첫 번째 희생 대상이었죠.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는데, 그때 헤드윅을 만났고 그녀를 따라 미국에 왔어요. 그때 우리가 약속한 게 있는데, 헤드윅이 내게 원한 것은 여장하지 말고 남자인 채로 살라는 거였어요. 그땐 살고 싶어서 그러마 약속했지만, 사람마다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나도 헤드윅처럼 여장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도록 억누르니 지금 그 불만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예요. 정말 더 이상은 헤드윅 성격 못 받아주겠고, 더는 못 참겠다는 마음이 차오르니 그런 얼굴로 공연하게 됐네요.


헤드윅이 관객들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 핀잔주는 거 무척 속상하죠?
헤드윅이 워낙 그런 사람이라서, 사실 별로 대수롭지는 않아요. 하지만 공연장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화가 나죠. 헤드윅은 성격이 좀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해요. 기분이 좋을 땐 굉장히 친절하고 애교도 잘 떨어요. 그런데 성미에 맞지 않으면 굉장히 까칠해져요. 그럴 땐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죠. 상대를 막 대하다가도 돌아서서 호호호 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서, 가끔은 감싸주고 싶을 때도 있고 그렇게 못 참을 만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최근에 토미 사건 때문에 많이 격해졌고, 그래서 내게 함부로 대하는 정도도 심해졌죠.


그런데도 그동안 헤드윅을 떠나지 않고 함께했던 건 무엇 때문인가요?
사실 제가 이 관계를 끊고 떠나려면 떠날 수도 있었어요. 헤드윅이 제게 족쇄를 채운 것도 아니고, 될 대로 되라고 떠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쉽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우리 사이에 가족 같은 정이 쌓이기도 했고, ‘저 사람도 참 안됐다’는 일종의 동질감이 들었달까요. 겉으로는 무척 까칠하지만 사실 속내는 그리 모질지 못한 사람이란 걸 알아요. 제가 옆에서 지켜줘야 할 것 같고요. 내가 떠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걱정되기도 하고, 되게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어요.


헤드윅과 공연할 때 당신은 주로 뭘 하죠?
코러스 넣고 헤드윅의 의상 챙겨주고 가발도 정리하고, 뭐 전체적인 뒤치다꺼리를 하죠.

공연 내용에 대한 논의도 함께하나요?
아뇨. 헤드윅은 독선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든 계획을 세워요. 밴드 멤버들과 저는 그냥 따를 뿐이죠. 평소에도 헤드윅 혼자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떠드는 편이고, 우린 그냥 듣고 있죠. 주식이 위스키이신 분이라, 낮부터 취해선 시키지도 않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곤 해요.


헤드윅을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그럼요. 헤드윅이 크로아티아 투어 공연을 왔을 때 제가 그 밴드의 오프닝 무대에 섰거든요. 공연 전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트랜스젠더인 데다가 자기 나름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독특한 캐릭터의 뮤지션으로 유명했죠. 그녀를 만나면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볼 수 있겠구나, 만날 날만을 기다렸죠.


그때 당신에겐 발칸 최후의 유태 여신이란 별명이 붙어 있었죠. 어떤 무대에 섰나요?
그저 여성 복장을 하고 여성 디바들이나 뮤지컬 캐릭터들을 흉내 내며 그들의 음악에 맞춰 입술을 움직이는 립싱크 퍼포먼스를 했어요. 노래를 직접 하진 않았죠. 그땐 내가 노래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헤드윅을 만나고 나서 그녀가 내게 코러스를 시키면서부터, 나도 노래를, 음악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티나 터너나 휘트니 휴스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가장 좋아했어요. 저는 예쁜 여자보다는 멋있는 가수가 좋더라고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못생긴 얼굴인데도 그녀가 감성적인 노래를 할 때면 정말 아름다워 보여요.


그렇게 무대에 서면 기분이 어땠어요?
그때만은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일상이 늘 회색빛이었다면 그땐 제가 붉은색으로 빛났죠. 관객들이 나를 여자라고 믿었는지, 여장을 한 남자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을 받으면 정말 짜릿했어요.

외적인 아름다움도 빛났지만 쇼도 정말 잘했나봐요?
후훗, 글쎄요. 배우의 끼가 발휘돼서 잘한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퍼포먼스를 멋지게 잘해내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느끼는 행복이 더 컸어요. 그 순간에만 내가 여자일 수 있었으니까.


크리스탈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 크리스탈의 트레이드마크는 뭐였나요?
금발 가발에 미니 레드 드레스. 금발보다 좀 더 노란 가발을 쓰고, 블랙과 레드가 섞인 가죽 소재의 드레스를 자주 입었어요.


헤드윅을 처음 만났을 때 꿈이 모델이라고 했다죠?
음, 그땐 뚜렷한 꿈이 없었을 땐데 꿈이 뭐냐는 질문에, 때마침 TV에 나오고 있는 모델이 무척 예뻤고 또 남자들이 좋아

하니까, 나도 모델이 되고 싶다고 답했어요. 큰 의미를 두고 말한 건 아니에요.

그럼 지금 당신이 꿈꾸는 건 뭔가요?
헤드윅 옆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내 이름 크리스탈을 찾는 것. 여자로서, 또 나 자신으로서 오로지 나 혼자 무대에 서는 거요. (헤드윅처럼요?) 헤드윅보다 더 멋지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블루스나 소울 음악이 좋아요. 그런 뮤지션을 만나고 싶고, 또 뮤지컬 무대에서 연기하고 싶어요.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해본 적은 없어요?
한번 시도해보려 했는데, 헤드윅에게 들켜서 못 갔죠. 내가 배우가 돼서 떠난다고 해서 그녀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헤드윅이 마음대로 권력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나잖아요. 그래서 내게 그렇게 못되게 굴면서,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공연의 마지막에 헤드윅이 당신에게 가발을 건넸어요.
미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여자일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입고 있는 남자 옷과 수염, 남들 앞에서 남자로밖에 설 수 없다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헤드윅의 옷과 가발, 화장, 내가 한다면 더 예쁠 텐데…. 그런데 마침내 저의 무대가 시작됐어요.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은 거죠.


당신이 원했던 꿈을 꼭 이루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부침이 있겠지만 좀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부딪쳐봐야죠.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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