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지금까지 공연됐던 무비컬의 계보에서 조금은 다른 위치에 서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경쾌 상쾌 유쾌 통쾌(하고 싶었던) 로맨틱 코미디인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운명적인 사랑을 아련한 서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비롯해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되풀이됐던 운명적인 사랑이 뭐 그리 특별한 소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사랑이라는 일상적 사건을 운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운명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극적이잖나. 바꿀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행로, 예측할 수도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힘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많다. 우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뚜렷해야 하고, 그러한 사건과 갈등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공감의 파토스가 생겨야 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안에 있는 환생이나 동성애 같은 소재가 비논리적이거나 자극적인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던 건 주인공들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사랑의 인연이 운명의 끈에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고지순한 순정에 운명까지 보태지는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만남이라. 신파의 과잉만 경계해도 어쩌면 많은 것을 이룬 것일 테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랑에 관객의 공감대를 만들어낸다면, 나아가 운명적인 사랑의 서사를 완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일 테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매 장면 주인공들의 사랑은 감정이 상황을 압도하는 신파의 과잉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감정이 배어 나오는 애틋함을 빚어내는데, 장면마다 담아내는 정서의 결은 곱고도 슬프다. 알 수 없는 이끌림과 어쩔 수 없는 어긋남 사이에 서 있는 주인공들의 사랑은 장면마다 새롭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적잖은 관객이 눈물로 몰입하는 것을 볼 때 이 작품의 감성은 관객과 이미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분명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고급스러운 감성 뮤지컬이다.
시청각적 요소의 유기적인 조화
이 작품의 완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귀로 들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공연을 구성하는 시청각적 요소의 면면이 그 역할을 넘치게 하고 있는 데서 벌써 도드라진다. 넓은 공간을 조명이 됐든 조형물이 됐든 화려하고 세련되게 채우는 무대는 이제 창작뮤지컬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무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를 함축하는 해석적인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무대의 가림막에 투영되는, 때때로 길게 이어진 선이나 어긋난 선 등은 ‘인연’이라는 극의 중심 테마와 어우러져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상하 좌우로 움직이는 파티션은 마치 영화의 카메라처럼 장면을 당기기도 넓히기도 하는데, 넓이가 있는 공간을 파티션을 통해 효과적으로 분할하는 공간의 운용은 깔끔하면서도 충분히 기능적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중첩되는 장면의 연출이라든지, 시공간의 압축, 시선의 집중 등 연극적인 공간 논리와 영화적인 시간의 논리를 잘 버무려놓는 식이다. 무대 공간의 기능성이 연출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무대는 다분히 연출적이다.
무대가 작품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데 일조했다면, 조명과 음악은 작품에 감성적으로 빠져들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조명의 색감이 극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그려냈다면, 현악기를 중심으로 흐르는 테마는 순수하면서도 애절한 복고적인 사랑의 정서를 더없이 잘 살려냈다. 이 작품의 음악은 서정에만 빠져드는 자기만족적 감성을 극복하면서도 그 정감이 따뜻하고 단아하며 고우면서도 품위가 있다. 교실 장면을 비롯한 군중 장면에서도 음악은 충분히 극적 기능을 감당한다. 이야기의 빈약함을 메우기 위해 숨 돌릴 틈도 없이 번잡하도록 이런저런 노래를 이어 붙이는 창작뮤지컬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음악적 풍경에서 그리 넘치지 않는 분량으로 오히려 드라마에 주도권을 넘긴 채 음악이 담당할 역할을 충분히 채워내는 이 작품의 음악은 여러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창작뮤지컬이 그토록 숙원하던, 작품으로부터 독립되어 살아남을 ‘뮤지컬 넘버’를 찾는다면 <번지점프를 하다>의 음악이 그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설렘을 ‘바람’에 빗대어 노래할 때, 선율과 가사와 악기의 조화는 관객의 귀를 확 열어놓았다.
이렇듯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섬세하다. 일례로 창작뮤지컬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교실 장면에서도 극의 리얼리티를 뮤지컬의 과장된 화술로 망치지 않으니 모든 장면에 긴장을 늦추지 않은 이 작품의 미덕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정서적 몰입을 극적 설득력의 기준으로 본다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뮤지컬다운 문법으로 영화의 정서를 번역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건 적지 않은 성과이다.
‘운명’, 넘어서지도 빠져들지도 못한
그런데 정작 운명을 언급하는 순간, 이 극은 어색해진다. 운명이란 놈은 역설적이어서 운명적인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때에 바로 얼굴을 들이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인우와 태희의 사랑이 운명임을 직감하는 것은 바로 인우와 현빈이 만나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 인우와 태희의 알콩달콩 사소한 사연들 위에서 인우와 현빈의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질 때 비로소 이들의 사랑은 운명이란 이름으로 엮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전체적인 방점은 인우와 현빈보다는 인우와 태희에게 집중되어 있다. 인우와 태희의 소소한 에피소드는 인우와 현빈을 이어주는 계기로만 작용하는데, 이게 인우와 현빈의 관계를 보여주는 전부이다.
더욱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이 작품의 구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크게 2막으로 나뉘었는데, 전막이 태희와의 사연에 집중한다면 후막은 현빈과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다. 과거와 현재가 섞이는 장면 연출은 감각적이지만 정작 현재 속에서 문득문득 모습을 드러내야 할 과거의 편린은 전막에서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 물론 운명의 끈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의 에피소드는 그대로 차용된다. 새끼손가락에 마법을 거는 장면이라든지, 라이터에 직접 그린 손 그림이라든지, 태희의 조소상이라든지 기타 등등.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에서만큼 그것이 운명적인 매개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것은 영화와 무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러한 매개들은 시각적 기호로 기능하지만 대극장 무대 위에서는 대사를 통한 묘사에 그쳐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운명의 기호는 점층되지 않는다. 그저 나열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인우와 현빈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은 그저 인우의 기억이 전부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우에게 운명적으로 이끌릴 만한 사건은 현빈에게 전무하다. 이 극의 전개로만 보자면 선생님만 얘를 잊어주면 얘 인생은 아무 문제없이 그냥 흘러갈 거다. 운명? 그건 인우의 몫이지 현빈의 몫은 아닌 것이다. 정작 운명적인 사랑으로 엮여야 할 인우와 현빈의 관계가 없는 셈이다.
제목이 <번지점프를 하다>인데도 극의 마지막에 번지점프가 없는 것이 단순히 무대 표현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 끈은 운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인우는 태희의 운동화 끈을 매어주고 현빈은 인우에게 이인삼각 끈을 매어준다. 그런 그들이 운명의 선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끈으로 엮일 필요가 없다. 그들을 묶는 끈을 풀어낸 채 맞잡은 손으로 함께하는 것. 그럼으로써 이들의 사랑은 운명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
이 작품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상징적인 무대그림에 정말 어울리지 않았던, 보료 깔린 여관 장면에 매달아놓은 침대 장면까지도 영화 속의 애틋한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려내려는 꼼꼼함으로 이해하련다. 너무나도 충실히 영화를 재현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 완성도라면 기꺼이 환영하련다.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감각적으로 이야기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무래도 아쉽고 허전하다. 운명의 종착점은 눈물이 아니라 가슴과 머리의 깊은 곳인바, 애틋한 눈물에 머문 이들의 사랑은 아직 운명에는 다다르지 못한 듯하다. 그 길을 찾는다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화 원작이라는 ‘운명’ 정도는 넉넉히 넘어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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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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