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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콩칠팔새삼륙> 실화의 재미를 따라잡지 못한 미완의 의욕 [No.107]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모비딕프로덕션 2012-08-06 4,758

말의 발견, 사람의 발견

오래된 소설이나 희곡을 읽으면서 낯설지만 기가 막힌 우리말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감도 예쁘면서 뜻까지 새기자면 웃음이 절로 나는 그런 말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에 막연히 호감이 생겼던 건 아마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콩칠팔 새삼륙’의 바른 말은 ‘콩팔칠팔’이란다. 사전을 찾아보니 두 가지 뜻이 나온다.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마구 지껄이는 모양’과 ‘하찮은 일을 가지고 시비조로 캐묻고 따지는 모양’을 가리킨단다. 참 재미있지 않나. 말의 뜻이 이미 말의 모양새와 닮아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들어본 사람도 많지 않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오롯한 재미가 살아있는 말을 그대로 제목 삼은 작품이라니. 말에는 삶이 담겨 있을진대 잊어버린 말을 찾아내는 것은 곧 묻혀버린 사람과 그네들의 삶을 기억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낯선 제목의 이 작품에는 분명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 게다. 이런 호기심은 언제나 즐겁다.

 

겉으로 볼 때 <콩칠팔 새삼륙>의 낯섦은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데 있다. 뮤지컬에서의 동성애 코드는 이미 익숙해진 터이지만 꽃미남들의 연애가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언뜻 새로워 보인다. 일단 야오이 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니, 그렇다면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둘 중 하나일 게다. 이들의 사랑을 통해 보게 되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든지, 아님 기존의 틀을 뒤집는 지독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 그 자체의 이야기든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이 작품의 배경이 1930년대의 경성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경성은 다층적인 공간이다. 정치적으로는 식민지의 우울함이 주조를 이루지만 젊은이들이 만끽할 만한 소비사회의 욕망이 꿈틀대던 곳. 봉건의 관습과 근대의 새로움이 ‘모단’이라는 이름으로 섞여있던 도시. 서로 다른 세계관이 충돌하듯 공존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어디엔가 온전히 속할 수 없다. 몸은 이곳에 살지만 눈은 저곳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세상살이는 결핍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대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들을 만든 ‘모단’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개인의 삶은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바, 가장 개인적이면서 내밀한 이야기는 가장 사회적이면서 시대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콩칠팔 새삼륙>의 홍옥임과 김용주의 사랑 이야기가 ‘모단’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모단’의 시공간, 그 속의 두 사람

<콩칠팔 새삼륙>의 인물들은 각각 특정한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김용주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혼인 관계 속에서 봉건이라는 공간을 대표하고, 홍옥임은 신학문과 신문물을 향유하는 근대의 공간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공간에 온전히 속할 수 없다. 봉건적 전통의 완고함이나 세련된 모단의 가치관 속에, 이 여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관념의 관성을 극복할 만한 자의식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공간이 학교이고 다시 만나는 장소가 극장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근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인 학교와 극장은 봉건의 공간에서 내몰린 두 여자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을 때 그들은 길 위에 설 수밖에 없다.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은 공간을 잃어간다. 그들의 삶이 기차 길에서 끝난 것은 연극의 의도된 결말처럼 극적이다.

 

첫 장면이 ‘모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로 시작하는 것이나, 김용주와 홍옥임의 집안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한복을 입은 김용주와 양장을 한 홍옥임을 나란히 세워놓는 장면 연출을 보자면 <콩칠팔 새삼륙>의 관심은 두 여자의 사랑보다는 근대의 시공간 위에 서있는 두 사람에게 있는 듯 보인다. 적어도 극 중반까지는 그렇다.

 

 

 

전형적인 상상력의 한계

그런데 아쉽게도 무난히 달려가던 이야기는 갑자기 갈팡질팡 길을 헤맨다. 이 또한 공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학교에서 재입학을 거부당한 김용주가 시집에서 뛰쳐나와 극장으로 숨어버리는 설정은 재미있는 전개이지만, 일례로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의 메타포와 남장 여자로 변신한 김용주 그리고 극장에서 공연되는 <십이야>(이 작품의 주인공도 남장 여자이다!)를 의미 있게 연결시키지 못한 이야기의 헐거움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이렇게 할 거면 굳이 극장으로 김용주의 이야기를 옮길 이유가 뭐가 있나. 무대 위에서는 남장 여자의 이야기가 공연될 뿐이고, 김용주는 그곳에서 엿을 팔 뿐인데. 김용주의 남장 변신도 느닷없긴 마찬가지이다. 물론 은신을 위한 수단이라는 설명이 나오지만, 참했던 김용주가 갑자기 남자답게 듬직해지는 것에 머리가 끄덕여지지 않았던 것은 이때부터 이야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자면 김용주와 홍옥임을 거리로 내몬 것은 봉건과 모던의 가치관이어야 하는데, 갑자기 모든 갈등의 원인이  그들의 끓어오르는 사랑때문인 게 되어  버린다.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진 데는 전형적인 상상력의 탓도 크다. 특히나 인물을 설정하는 방식이 그렇다. 공연 내용에 따르자면, 김용주의 목을 조른 것은 봉건 사회의 낡은 관습이 아니라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이고 김용주의 사랑이 절실해진 까닭은 다 큰 나이에도 배바지 입고서 막대사탕이나 핥아먹는 쪼다 같은 신랑 때문이다. 참 조악한 설정이다. 오히려 인물과 상황이 지극히 상식적이었다면 김용주와 홍옥임의 사랑은 더 절실해 보이지 않았을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중간에 방향이 틀어지면서 1930년대의 신여성이라는 상황이 됐건, 아니면 금단의 사랑에 빠진 두 여자의 감정이 됐건 그 점층이 약해져버렸다. 그만큼 몰입도와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조화로움엔 가닿지 못한 ‘들림’의 탁월함

연출의 상상력도 이야기의 허술함을 채울 만큼 풍부해 보이진 않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을 모두 일인다역으로 설정했는데, 같은 배우가 두 주인공의 남편과 아버지를 연기하는 등 연극적인 재치를 의도한 부분이 눈에 띈다. 하지만 무대의 통로가 6개나 되는데도 굳이 잦은 암전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것이나, 많은 장면을 마치 요약하듯이 노래로 마무리하는 배치는 극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세련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도 돋보이지만 가사와의 조합도 훌륭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작품 안에서 이야기와 노래가 촘촘히 이어졌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와 선율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종종 극의 이야기를 멈춰 세운다. 모든 장면이 서정으로 마무리된다고나 할까. 사건의 진행 없이 길게 깔리는 전주(前奏)도 뮤지컬의 화술로서는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음악의 훌륭함에 비해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 아쉽다. 그래도, 뮤지컬 팬이라면 이나오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라.

 

인물의 설정(김이진이 굳이 밀수꾼일 이유가 뭘까?)이나 인물의 구체적 동기(김화동의 극 속에서의 역할은 또 뭘까?)가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고, 젊은 배우들의 과도한 에너지도 조율될 필요가 있다.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배우의 무기는 큰 성량이 아니라 여전히 연기일 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가슴 찡한 노래는, 젊은 꽃미남도 아니요 가창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중년의 연극배우 최용민이 부르는 ‘경성의 봄’이다. 그의 노래가 관객의 가슴에 남는 까닭은 뮤지컬의 노래란 가창력보다 더 큰 연기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무대에 오른 <콩칠팔 새삼륙>은 놓친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놓친 것이 많다는 것은, 뒤집어보자면 그만큼 품은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소재와 이런 음악이 있으니 벌써 이뤄놓은 것도 많은 셈이다. <콩칠팔 새삼륙>의 진화를 기대해본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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