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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헤어스프레이> 화합의 정신을 전파하는 [No.106]

글|박병성 |사진제공|신시컴퍼니 2012-07-17 6,244

미국적인 가치, 화합

미국을 흔히 민족, 문화, 인종의 용광로에 비유한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뒤섞여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결합된 만큼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합하느냐가 이 나라의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의 거의 유일한 자국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은 이러한 국가적 특성 때문인지 통합이 중요한 화두가 된다. 뮤지컬이라는 형식 자체가 춤과 노래, 드라마가 결합된 장르이기도 하지만 뮤지컬이 선호하는 테마 역시 화합과 화해가 많다. 본격적인 북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는 <오클라호마!>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감정 표현이 서투른 젊은이들의 사랑놀이를 다루지만 그 배경에는 카우보이들과 농부들의 화합을 그리고 있다. ‘오클라호마’가 ‘미국 원주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작품이 지닌 미국적 가치를 좀 더 이해할 만하다. <오클라호마!>처럼 드러내놓고 화합을 노래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뮤지컬이 해피엔딩이 많은 것은 분열보다 결합을, 다툼보다는 화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200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헤어스프레이>는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오클라호마!> 이후 미국의 가치인 화합 정신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다. 1988년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가 원작인 <헤어스프레이>는 1960년대 인종 차별이 만연한 볼티모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인종 이외에도 재력과 외모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드는 기준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볼 때 작품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이는 TV 쇼의 제작자이자 미스 볼티모어 출신인 벨마이다. 그녀의 딸 엠버도 엄마의 계급을 물려받는다. 반대로 가장 밑바닥에는 씨위드가 위치한다. 흑인이란 낙인은 그를 집단 댄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뒷자리에 위치하게 한다. 엠버의 바로 밑에 재력과 지위는 없지만 뛰어난 외모를 가진 TV 쇼 스타 링크가 위치한다면 씨위드 바로 위에는 가난하고 거대한 덩치를 가진 에드나가 있다. 그녀의 모든 면이 씨위드에 비해 나을 것이 없지만 단지 백인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위치를 씨위드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 한다. 1960년 볼티모어에는 재력, 외모, 지위 그리고 인종이라는 기준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유지된다. 이 질서를 무시하는 인물이 바로 코니 콜린스와 트레이시이다. 유명 TV 쇼의 진행자인 코니 콜린스는 인기와 능력으로 계급의 정점인 프로듀서 벨마에 대항하고 기존의 줄 세우기를 무시함으로써, 능력이 새로운 계급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레이시는 가난하고 뚱뚱하지만 특유의 낙천성과 꿈을 향한 열정으로 사회적인 편견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그녀 특유의 긍정성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염시킨다.

 

<헤어스프레이>는 트레이시가 자신의 신체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꿈을 이루는 이야기면서, 이면에는 백인과 흑인, 부자와 가난한 자, 미인과 추녀를 각각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화해의 정신이 깃든 작품이다. 보통 통합의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 <오클라호마!>에서는 로리와 컬리 사이에 끼어든 주드가 희생되고, <라 카지 오 폴>에서는 보수정당 집안과 게이 집안이 한 가족을 이루지만 에드아르 딩동은 배제된다. ― <헤어스프레이>에서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화합한다. 사사건건 트레이시와 씨위드를 괴롭혀온 벨마 모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벨마를 흑인들이 출연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마케팅 이사로 발령해 화해의 무리에 포함시킨다. 이것이 바로 <헤어스프레이>가 가진 위대한 화합 정신이다.

 

 

단점을 극복한 트레이시, 캐릭터를 버린 에드나

<헤어스프레이>는 2002년 초연했다. 2001년 9·11 사태가 일어난 이후 미국인들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희망을 주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화합과 통합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가치이다.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정치적인 당파 싸움과 당파 내 계파 다툼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헤어스프레이>의 가치는 유효하다. 무엇보다도 낙천적인 트레이시가 전파하는 긍정의 에너지와 유쾌하고 신나는 노래와 춤은 우울함을 말끔히 걷어내고 아드레날린을 발산하게 한다. 국내에 세 번째로 선보이는 이번 <헤어스프레이>에는 새로운 트레이시(오소연, 김민영)와 에드나(공형진, 안지환)가 캐스팅되었다. 필자는 오소연, 공형진 캐스팅으로 보았다.

 

오소연이 연기하는 트레이시는 특수 장치로 뚱보를 만들긴 했지만 가느다란 팔다리와 작은 얼굴로 완전히 캐릭터에 몰입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외적인 이미지에서는 김민영이 연기하는 트레이시가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트레이시의 뚱뚱함은 그녀가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드라마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뚱뚱하면 둔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에너지 넘치는 춤을 출 때의 감동은 배가 된다. 오소연은 그런 종류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뚱뚱한 사람들의 걸음걸이나 몸짓과 연기로 외형적으로 부족한 면을 보충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에너지 넘치는 춤은 보는 사람들을 절로 기분 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반면 공형진이 선보인 에드나는 여러 모로 실망스러웠다.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공연 내내 에드나는 보이지 않고 공형진만 보였다. <헤어스프레이>의 에드나 역은 전통적으로 남자 배우가 맡는다. 매번 의문이었다. 왜 에드나는 남자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가? 공형진은 남자 배우가 에드나를 연기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에드나를 남자 배우로 캐스팅하는 것은 덩치가 큰 여배우를 찾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배우 풀이 충분한 브로드웨이에서 굳이 남자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에드나는 극 중 벨마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벨마는 미스 볼티모어 출신의 TV 쇼 제작자이다. 반면 에드나는 하마 같은 덩치를 가진 세탁소 주인이다. 트레이시가 TV 쇼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딸을 걱정하며 말리는 것으로 봐서는 뚱뚱한 체구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녀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밖으로 유도한 것이 트레이시의 꿈과 열정이다. <헤어스프레이>는 낙천적인 뚱보 트레이시가 편견을 깨고 꿈을 이루는 이야기이자, 집안에 갇혀 있던 에드나가 세상으로 나와 자신의 꿈을 펼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서는 장면은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에드나를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이유로 돌아가보자. 세상의 기준이 요구하는 미인이 미스 볼티모어 벨마라면, 그 기준에서 가장 먼 여성은 뚱뚱한 데다 남자같이 생긴 여자일 것이다. 에드나는 흑인만 아니었을 뿐 흑인과 같은 편협한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공형진은 그런 에드나의 상처나 아픔을 표현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귀찮은데 딸을 위해 산책을 나오는 정도로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에드나와 그녀의 남편 웰버가 사랑을 노래하는 ‘Timeless to Me’에서는 아예 대놓고 공형진과 황만익으로 분해 연기를 했다(필자가 갔을 때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트위터에 그 장면의 해프닝에 대해 열광(?)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것으로 봐서는 자주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솔직히 그 장면에 대한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캐릭터가 강한 인물임에도 어느 순간 연기하는 배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배우가 그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2003년 토니상에서 에드나 역을 맡은 하비 피어스타인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기왕 준다면 여우주연상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가 될 정도로 에드나 역할의 비중은 막중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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