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소설이란 건 참 묘한 예술이다. 인간의 삶을 뒤흔들어놓은 격동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면 금방 좋은 대작을 만들어낼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나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미스 사이공>을 예로 들면서, 격동의 역사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도 이런 대작 하나쯤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극작과 작곡 능력이 부족해서? 단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좀 단순하게 말하면 그 사건에 대한 시각과 마음이 쿨해지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격한 감정이 솟아올랐을 때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은 시와 노래이다. 그러나 극이나 소설은 다르다. 현실 속의 그 어마어마한 사건을 재료로 하여 요리조리 ‘허구’의 이야기를 꾸미고 요리해 먹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심리적, 감정적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 적절한 거리가 생기지 않으면, 엄청난 사건이 주는 무게감에 압도되어 버린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다룬 프랑스 혁명은 벌써 수백 년 전 이야기이다. 베트남전과 <미스 사이공>은 20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만, 창작자가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니니 애초부터 그 사건과는 거리감이 생긴다.
광주민중항쟁이 30년 전의 과거가 되어 버린 올해 뮤지컬 <화려한 휴가>가 제작되었다. 과연 우리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을까. 지금의 20대들이 광주민중항쟁과 광주학생운동을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 사건은 15년이 지난 후에야 책임자가 처벌되고 명예를 회복했을 정도로(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핵심 책임자는 재산이 29만 원뿐이어서 벌금을 낼 수 없다고 발뺌하고 살 정도로) 시원스레 해결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사람들 감정의 밑바닥에서만 묵고 묵었다. 광주항쟁을 겪은 이후 한국의 문단에서 그럴싸한 소설이 나오지 못하고 그저 격한 시만 계속 생산되는 이상스런 현상이 무려 4, 5년이나 지속될 정도로 그 사건의 충격은 컸다. 항쟁의 전모를 다룬 연극 <금희의 오월>, <일어서는 사람들>, 단편소설 『깃발』이 나온 시기가 항쟁 8년 만인 1988년이다. 그것도 1987년의 6월항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기를 꺾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광주항쟁의 책임자들인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이 사건을 그럭저럭 다룰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때에는 그 시대를 다시 흥분하며 상기하는 것이 너무 싫을 정도로 심사가 복잡했다.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모래시계> 등 심심찮게 작품 소재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저 양념이었을 뿐이고,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1996)은 매우 세련되고 치열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나 십수 년 동안 광주항쟁에 대해 우리가 눈감고 학대하며 저질러온 온갖 악행을 너무도 끔찍하게 보여주고 있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난자질당하는 것처럼 아픈 영화였다.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와 이를 원작으로 한 올해의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조금씩 쿨해지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이전의 작품에 비해 항쟁에 대한 태도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혀 배반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평범할 뿐 아니라 상식적이고 심지어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전의 작품들과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이전의 영화와 연극들이, 모두 항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 폭도의 가족으로 치부된 자, 혹은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책임져야 하는 항쟁 지도부의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자 시민군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즉 이전의 작품들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이 시체로 돌아왔는데도 폭도로 불리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당혹감, 지도부인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죽음까지도 선택해야 하는 곤혹스러움 같은 것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려한 휴가>에는 그런 게 없다. 비교적 단순하고 쿨하게 슬프다.
그래서 이 작품은 편안하고 대중적인 위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심사를 다 덜어낸 비교적 단순한 애도와 위로, 광주시민들은 참으로 억울했고 고통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초점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위로가 몇 번씩 반복될 필요는 절대로 없지만, 거쳐 가야 할 단계이다.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화려한 휴가>가 훨씬 상식적이고 범박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넘버가 바로 ‘광주 내 사랑’이다.
이런 상식과 범박함은 편안한 극작만이 아니라, 연출과 음악에서 고루 나타났다. <들풀>, <블루 사이공>에서 무거운 역사를 뮤지컬로 다뤘던 경험을 지닌 연출자 권호성은, 윗무대를 활용하지 못한 단순함이 아쉬웠으나 항쟁 속의 복잡한 집단 인물들의 움직임을 무리 없이 끌고 나갔다. 음악은 논리적·구조적이거나 극적으로 조직되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러울 수 있는 항쟁의 정서를 소화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애국가’, ‘전우야 잘 자라’, ‘아리랑’ 등의 변주는 현실 맥락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이 창작 팀이, 적어도 시민군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식으로 황당한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존중과 거리감을 모두 갖추고 광주항쟁의 전체 흐름을 읽어내는 이들 창작자는 최적의 팀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니 지나칠 정도의 소박함은 이 작품의 어쩔 수 없는 결함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슬픔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된 소시민 신애와 민우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드느라, 전반부에서 너무 긴 시간 동안 여러 장면과 넘버를 배치하면서 진을 뺐다. 무엇보다도 이 항쟁이 도대체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가지는지, 광주 시민들의 주장이 무엇이고 이것이 왜 민주주의에 기여했는지 설명할 틈을 잃어버린 것이다. 영상이 추상과 구체성을 적절히 조화하고 적재적소에서 무대와 시대의 빈 구석을 메워주고 있었지만, 단지 그 영상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지은 노래 ‘나의 조국’을 공수부대가 부르는 정도로는 광주항쟁과 광주학생운동을 혼동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애와 민우 같은 개인 인물이 그리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들 소시민의 일상 장면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긴 시간을 배려한 것은 작품 초반부를 지루하게 만들었을 뿐, 목적한 바를 성취하지 못했다. 결국 민우의 동생이 총에 맞아 죽고 모두 무장한 시민군이 되는 것으로 1막이 끝나는 이유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이 부분은 군대의 학살로 항쟁이 형성되는 과정이어서, 개개 인물의 행동은 이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 각 캐릭터는 돋보이기 힘들다. 영화와 달리 극은 인물의 행동으로 사건이 추동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2막은 시민군 집단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선택으로 사건이 추동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흐름도 극적이고 안정적이다. 초반부를 과감히 압축하여 지루함을 막고, 다양한 장면의 동시진행이나 내레이션 등을 동원하여 개인과 시대를 동시에 돋보이게 하는 색다른 방법을 고안하는 편이 나았다.
학살과 투쟁 장면이 반복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결함이다. 10일간 항쟁의 여러 국면들이 좀 더 차별성 있는 정서와 연출로 장면화되어야, 중반부의 지루함을 피할 수 있다. 좀 더 애절하고 깊어야 할 마지막 부분 신애의 가두방송 “우리를 잊지 마세요”의 절규가, 마치 항쟁 초반부처럼 기운차고 씩씩했던 것은, 항쟁의 흐름을 정서적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연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정서적 흐름을 가장 잘 만들어낸 것은 ‘광주 아리랑’에서 ‘광주시민 장송곡’으로 넘어가는 1부의 마지막 부분, 그리고 ‘역사의 바람’ 같은 대목이다. “내 등을 떠미는 역사의 바람”을 노래하는 그 장면은, 비극적 종말을 앞둔 불안함과 회한을 잘 포착해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