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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모든 길은 무대로 통한다, 유준상 [No.108]

글 |정세원 사진 |심주호 일러스트 | 유준상 (『행복의 발명』 中 발췌) 2012-09-24 4,608

 

ALL ROADS LEAD TO STAGE 


언제나 그랬듯이, 유준상은 에너지 넘쳤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하하하’, ‘흐흐흐’ 하며 눈을 반짝이는 그에게서, 의도치 않게 일정이 겹친 드라마와 뮤지컬, 영화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하고 틈틈이 인터뷰와 CF 촬영을 진행하느라 숨 돌릴 틈 없는 인기 스타의 푸념이나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언제 내가 바쁘지 않게 살았던 적 있었냐’며 파이팅을 외쳤다. ‘국민 남편’, ‘대세남’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얻은 대중의 관심이 뮤지컬 무대로 이어져 기쁘다는 배우 유준상이 이번 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의상협찬 |  JEHEE SHEEN , SWEAR , PLAC JEAN , 스타일 옴므 , 힐피거 데님 , 햇츠온

 

과연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직접 전화해서 뜻밖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더뮤지컬> 인터뷰는 해야지. 하나뿐인 뮤지컬 매거진이잖나. 마침 오늘 CF 촬영이 잡혀 있었고 나만 열심히 하면 촬영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니저야 스케줄도 생각해야 하고, 배우 컨디션도 배려해야 하니까 약속을 쉽게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나선 거다.


고공 행진 중인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과 더불어 ‘국민 남편’ 방귀남의 인기가 뜨겁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해본 적 있나.
당신은 해봤나?(웃음) 나이 마흔 넘어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좋아해줘서 참 행복하다. 어떤 중학생은 ‘오빠 힘내세요’ 하는 메모를 남기고, 어떤 초등학생은 ‘전화번호 가르쳐주세요, 문자해도 돼요?’ 하고 해맑게 물어본다. 순수한 그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그 친구들이 커서 내 공연을 보러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더 반갑다. 내 목표는 60, 70대에도 뮤지컬 무대에서 그 나이에 맞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거다. 그때 이 친구들이 내 공연을 보면서 ‘아, 그때 드라마에 나왔던 아저씨가 공연을 하는구나’ 하고 알아봐 주면 얼마나 좋겠나.


극 중 방귀남은 험난한 시월드(시댁)에서 완벽하게 아내를 보호해주는 자상한 남편인 동시에 효심 깊은 아들이자 손자요, 친절한 오빠이고 동생이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에게서 당신의 실제 모습이 보일 때가 많다.

그건 나를 오래 알아서 그런 거다. 내가 항상 만나면 ‘안녕?’ 하고 인사하지 않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첫 회에 김남주 씨한테 그렇게 인사를 해봤는데 작가님이 그걸 캐릭터로 살려주셨다. 회가 거듭될수록 평소의 내 행동들이 방귀남으로 많이 덧입혀졌는데, 할아버지 제사 때 편지 읽는 장면을 촬영하면서는 깜짝 놀랐다. 실제로 내가 아버지 제사 때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려서 올려놓는다. 작품이 잘되려니 여러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평소 겹치기 출연을 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엔 드라마와 뮤지컬, 영화 촬영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갑자기 드라마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됐다. <잭 더 리퍼>는 이미 작년에 국립극장 공연과 일본 공연이 결정되어 있었고, 영화 <전설의 주먹>도 8월 촬영이 결정된 상태였다. <넝쿨당>은 영화 스케줄 때문에 몇 번을 고사했는데, 여차여차해서 영화가 무산됐고 때마침 윤여정 선생님과 김남주 씨한테 연락이 와서 합류하게 된 거다. 무리한 스케줄이긴 하지만 8회라도 공연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몰라줘서 그렇지 나는 올해만 특별히 바쁜 게 아니라 늘 바빴다. 작년에는 네 편의 영화를 찍었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알투비>,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 두 편의 뮤지컬(<삼총사>, <잭 더 리퍼>)을 세 차례 공연했다. 브라운관에서만 안 보였을 뿐이다. 이제는 어딜 가도 반겨주시니 더 즐거운 마음으로 바쁘게 살아간다.

 


<잭 더 리퍼>는 벌써 4년째 참여하고 있다. 배우가 한 작품을 계속한다는 건 참 의미 있는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이다. 나는 연습한 만큼만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리허설이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작품이니까’ 하고 마음을 놓으면 본 공연에서 결코 100을 쏟아낼 수가 없다. 연습 때 후배들한테 입버릇처럼 ‘나 오늘 왜 이렇게 열심히 했니’, ‘이거 본 공연 아니잖아’ 하고 계속 얘기하는 것도 스스로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열심히 안 하면 그런 말 못한다. 재공연을 계속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무대 위에서 엄청나게 미세한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다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 남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일 거고,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만 내가 그 순간을 느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이건 새로 시작하는 무대 위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다. 


무대에 서는 배우만이 느끼는 감동이기도 하다. 뮤지컬은 여전히 매력적인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생각해봐라. 나는 그냥 연습만 하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무대가 세워지고 내 몸에 맞는 의상이 완성돼 있다. 그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면 꿈같은 일들이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펼쳐지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신기하지 않나. 공연을 끝낸 후 극장 앞에 멍하니 앉아서 하루를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드라마나 영화만 했다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나. 그렇게 감동적인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그날 공연 녹음한 거 다시 들으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돌아본다.


라이브 공연은 현장에서 모니터할 수 없으니 그 방법이 최선이겠다.
옛날부터 했는데 4~5년 전 노래 레슨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열심히 했다. 내 소리를 녹음해서 객관적으로 들어보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짜 한 공연도 안 빼놓고 다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 반복적인 연습과 노력을 통해 내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20년 넘게 쓰고 그린 일기들을 엮은 책 『행복의 발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당신의 지독한 끈기와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쉼 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거? 연습을 해도 한계는 있겠지만, 조금씩이나마 극복해보고 싶고 또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는 거다. 근데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예전에는 젊은 혈기로 그냥 부딪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은 디테일해지고 불안한 마음은 더 커지고 있다.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이 짜증도 나고 스릴도 넘치지만 그래도 재밌다. 미약하나마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처음부터 타고나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나. 노력을 하면 그 흔적이 어딘가는 분명히 나타난다. 보통의 노력으로 안 되면 ‘빡세게’ 하면 된다. 내 신조가 ‘지치지 말자’이다. 지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일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책으로 낼 생각을 하고 썼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엉뚱하고 유쾌한 유준상답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한 10년 전쯤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으로 내든, 우리 아이들이 보든 누군가는 보겠구나. 그래서 내 개인적인 고민보다는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과 경험들을 좀 더 눈여겨보게 됐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 식으로 단순화시켜서 읽는 사람이 행간을 이해하게끔 해보고 싶었다. 1년에 딱 한 권만 쓴다. 매일 쓰는 건 아니고 공연하면서 쓰기도 하고 여행 가서 쓰기도 한다. 근데 만약 여행 가서 한 권을 다 썼다면 그 해의 일기는 거기서 끝나는 거다. 목표치를 채운 거니까.(웃음) 올해 일기는 칸에 갔을 때 벌써 100페이지 넘게 쓰고 왔다.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줬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만드는 등 다양한 창작 작업을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우연히 <넝쿨당>의 삼촌, 장군이와 함께 부른 ‘Ce Song’ 영상을 보고 빵 터졌다.
재밌지 않나.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조금 아쉽다. 노래는 피아노 치고 기타 치는 거 좋아하니까 흥얼흥얼하다 쓰게 됐다. 그것도 계속하니까 늘더라.(웃음) 지금까지 내가 쓴 노래가 40곡 정도 된다. <다른 나라에서> 때 불렀던 노래도 완성했다. 나중에 내가 쓴 노래들 모아서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연기 외의 작업들은 내가 배우로 살아가는 데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면서 ‘과연 이게 내가 쓰고 그린 작품이 맞나’ 하면서 스스로 감탄하고, 그 순간의 짧은 행복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다. 나중에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참 여유롭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긍정도 발전하는 거다. 20~30대 시절을 돌아보면 열정 안에 가시도 있었고 치열함도 많았던 것 같다. 그땐 가족을 지키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절박함이 컸으니까. 무대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SBS 공채 탤런트가 됐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땐 ‘뮤지컬=과장’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현장에서 욕도 엄청 많이 먹었다. 고개만 돌려도 ‘너 턴 도냐?’ 하고 아무리 편안하게 연기를 해도 ‘뮤지컬 하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당연히 캐스팅도 안 되고 수입도 형편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발전하게 됐다. 순간 좌절하게 되더라도 ‘네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면서 반성하며 다시 일어섰고, ‘잘하고 있어. 언젠가는’ 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선전하는 후배 뮤지컬 배우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겠다.
뿌듯하다.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발판이 되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내가 좀 기특한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뮤지컬 배우라서 더 잘한다’는 얘기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이 악물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노력할 일만 남았다. 내가 뮤지컬 배우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계속 무대에 서야 하지 않겠나. ‘한때 뮤지컬 했던’ 배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나를 괴롭혀야 한다.

 


배우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는 건 무엇일까.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나서 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힘이 된다.  얼마 전에 <잭 더 리퍼> 공연을 앞두고 무대 리허설을 했는데 너무 기분 좋았다. 관객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왕용범 연출이 작품을 정말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맙다고 전화했다. 아시다시피 <잭 더 리퍼>는 95퍼센트가 창작이지 않나. 왕용범 연출은 원작의 이야기를 새로 각색하면서도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앤더슨의 메인 테마곡인 ‘회색 도시’를 비롯해 세 곡이 새로 추가된 것은 그래서다. 인물들의 대사들도 배우와 함께 살을 입힌 것들이 많다. 취조실에서 다니엘을 보면서 ‘나 울 뻔했어. 울 뻔했다고’ 하는 대사도 내가 만든 걸 대본화한 거다. 그렇게 함께 만든 작품이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나. <삼총사>도 마찬가지다. 두 작품이 초연됐을 때 다들 재공연은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달랐다. 관객들이 정말로 좋아해준 덕에 무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작품은 <그리스>와 더불어 내 인생의 대표작이 됐다. 다른 초연 멤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잭 더 리퍼> 일본 공연에도 참여한다고 들었다.
9월 16일부터 도쿄 아오아먀 극장에서 공연한다. 총 30회 중에 10회 공연에 참여할 계획이다. 제작 발표회에서 얘기한 건데 나는 이번 공연이 한류와는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일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앤더슨이 아닌 다른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없다. 처음엔 다니엘에 비해 비중이 적어서 고민을 좀 했지만, 작품을 할수록 앤더슨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있다. 비록 코카인에 중독된 부패한 경찰이지만 그 역시 나약하고 때로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폴리가 죽었을 때만큼은 사랑하는 연인을 한 번도 안아주지 못한 남자의 미안함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클로즈업 연기를 하듯 펑펑 운다. 거의 매번 오열하고 소리를 지르다보니 힘들긴 한데 희열이 있다.


 

배우 유준상만의 특별한 연기론이 있나.
특별한 건 아니지만,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상대방이 잘하면 나도 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많이 도와야 하고 고민해야 한다. 연습할 때 상대 배우와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따로 없으면 나는 눈으로라도 그와 대화를 나눈다. 소소한 일일 수는 있으나, 관객들에게 진짜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과정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요즘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그 호흡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즐겁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호흡에서부터 출발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내가 연기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나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었겠나. 나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거다. 


무대 위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지는 않나.
나는 연습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필요한데 지금의 내 스케줄로는 무리다. 언젠가 <헤드윅>은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직까지 40대 배우가 헤드윅을 연기한 적이 없기 때문인데, 이번 공연도 스케줄이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연을 안 하는 건 또 아니니까 새로운 관객들이 공연장에 찾아와주면 좋겠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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