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로 새로운 장을 열다
<콩칠팔 새삼륙>에서 권위적인 결혼 제도를 박차고 세상으로 뛰어든 김용주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신의정이 <지킬 앤 하이드> 루시로 분하여 전국 투어에 나선다. <콩칠팔 새삼륙> 이후 신의정은 배우 인생에서 새로운 장으로 들어선 느낌을 주었다. 뮤지컬 팬들도 용주 역을 한 배우 신의정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녀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용주의 이미지 탓일까, 실제 만난 신의정은 생각보다 어리고, 더 밝고 긍정적이었다. 2007년 <렌트> 앙상블로 데뷔한 후 <위대한 캣츠비>, <라디오 스타>, <페임> 등 꽤 규모 있는 작품에 출연했고, <콩칠팔 새삼륙>의 침착하고 담담했던 용주의 이미지 때문에 서른은 넘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앳되고 해맑은 신의정이 유쾌한 여중생처럼 뮤지컬에 관심을 가진 계기부터 루시를 연습하는 지금의 상황까지를 들려주었다.
고등학생 때 연극반 활동을 하거나 특별히 공연을 좋아하던 학생은 아니었다. 단지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뮤지컬에 어울리니 뮤지컬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친구의 말에 무턱대고 서울예대에 지원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뮤지컬보다는 연극 공연이 많아 단막 뮤지컬에 한 번 출연한 것이 전부였지만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지 않았다. 캠퍼스가 있는 안산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강남역으로 노래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시골애가 상경하는 것처럼’ 레슨 받으러 가는 길이 즐거웠다고 한다. 연습복만 입고 지내다 그날은 힐도 신고 한껏 멋도 냈다. 그때 만난 작품이 <지킬 앤 하이드>였다. “선생님이 공연 보러 가라고 티켓을 주셨는데 그게 <지킬 앤 하이드>였어요. 군중들이 무리지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극이 너무 좋아서.” 공연을 보고 온 후 3일 동안 잠을 설쳤다. 그때 자신이 얼마나 뮤지컬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위대한 캣츠비>의 페르수, <라디오 스타>의 강피디 등 데뷔 초기에는 초연 창작뮤지컬 출연이 많았다. 초연물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캐릭터의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데다가 당시만 해도 창작뮤지컬의 제작 과정은 대부분 지난하기 짝이 없었다.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대사나 노래가 바뀌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린 신의정이 초연 창작물에서 새롭게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으리라. “그때는 나이 먹는 게 소원이었어요. 내 의견을 내고 싶은데 어리고 경험도 없는 게 건방지게 보일까봐, 내 생각을 말하지 못했어요.”
데뷔 이후 신의정은 규모 있는 뮤지컬에서 주·조연급 캐릭터에 출연해왔다. 평가도 좋았다. 그런데 뮤지컬 팬들에게조차 신의정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신의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페임>(2011)의 카르멘 역에 이어 <콩칠팔 새삼륙>의 용주로 출연하면서 분명해졌다. “그동안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어요. <궁>에서도 춤을 췄으니까 하면 되겠지 했는데 <페임>은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연습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턴 두 바퀴를 돌기 위해 하루 10시간 무용만 하고 그랬어요. 춤은 반복을 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되더라고요.” <페임> 때는 소녀시대 티파니와 더블로 출연했기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춤을 해낸 성취감이 그녀를 크게 성장시켰다.
<콩칠팔 새삼륙>에서 신의정은 극을 이끄는 투톱 중 한 명이면서 모든 캐릭터들이 원 캐스트이다 보니 배우들과의 호흡이 이전 작품과는 달랐다. “캐스팅이 많으면 아무래도 약속도 많아지게 되는데 원 캐스트로 하니까 짜임새가 좋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일까.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에 참여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의정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콩칠팔 새삼륙>은 달랐다. <콩칠팔 새삼륙>의 용주 하면 자연스럽게 신의정이 떠오른다. 그만큼 캐릭터 구축이 탄탄했다. “큰 무대에 많이 서고 노래 위주인 뮤지컬을 하다 보니까 기본적인 것들을 놓쳤던 것 같아요. 소극장에서는 진실하지 않으면 들키잖아요. 연출님이 진실된 연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그쳐주신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디테일한 호흡들을 많이 잡아주셨는데 따라가다 보니까 캐릭터가 나오더라고요.”
신의정은 <콩칠팔 새삼륙>에서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메소드 연기를 경험하면서 그동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저한 대본 분석, 화술, 호흡 이런 기본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인 <지킬 앤 하이드>의 신의정이 더 기대가 된다. 그런데 용주를 연기하면서 루시를 연습했던 <지킬 앤 하이드> 연습 초반에는 너무 용주에게 빠져 있어 힘들었다고 한다. “데이비드(연출가)가 루시가 왜 그렇게 부끄러움 많고 참하냐는 거예요. 제 성격이 걸걸해서 용주할 때는 참하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지적은 처음 들어봤어요. 앉을 때도 참하게 다리를 모으지 않으면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용주가 끝나니까 이제 루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
신의정이 생각하는 루시는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내면은 여리디여린 사람이다. 그런 대조적인 면을 잘 찾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주를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선 신의정이 다음 장의 첫 배역으로 자신을 뮤지컬 배우로 이끌었던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를 맡았다. 그녀의 1막 2장은 어떻게 전개될까.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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