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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광화문 연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격조 있는 진화 [No.91]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광화문연가 2011-04-11 5,414

<광화문 연가>가 상반기 최대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지만 그것을 실감하게 된 건 순전히 올케 때문이었다. 애 키우랴 살림하랴 바쁘디 바쁜 올케가 누군가와 부산하게 전화를 하길래 무슨 전화냐고 무심히 물어봤더랬다. 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올케의 말인즉슨, 팬클럽 친구들과 같이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는 거다. 사실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마굿간’(이문세 팬클럽) 식구였고, 이영훈의 노래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굿간 가족들과 함께 예매를 했을 뿐 아니라, 공연의 막이 올라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 세대에 이영훈과 이문세의 팬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막상 가까운 사람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을 보니 무척 새삼스러웠다. 누군가를 설레게 하는 공연만큼 좋은 공연이 어디 있을까.

 

 

고백하건대 <광화문 연가>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하는 마음은 사실 크지 않았다. 이영훈의 음악이 더없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지만 회고와 추억의 내면적 서정이 주를 이루는 그의 노래를 뮤지컬로 엮어낼 때 과연 노래가 지닌 감성의 결을 두 시간 남짓한 이야기의 틀 속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크박스 뮤지컬 아닌가. 노래에서 연상되는 서사에 맞춰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 주크박스의 안전한 특성은, 그간 공연됐던 같은 형식의 공연들을 떠올려볼 때, 오로지 한계로만 작용했더랬다. 이야기의 진부함은 익숙한 노래의 흥겨움이 상쇄했다지만 공연의 성취는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의 주크박스는 언제나 돼야 깜장 교복과 학창 시절의 추억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루한 궁금증만 품고 있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한 세대의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이 재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문화가 성장했다고 해도 관객들의 관심이 공연자가 아닌 창작자들을 주목하는 예는 드물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영훈은 대중들의 미적인 시선을 무대 위의 공연자로부터 무대 뒤의 창작자에게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 공연은 단지 이영훈의 음악을 무대에서 기억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대중 예술의 창작자들과 그들의 작품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문화적 가치 부여라고 한다면 거창할까. 자기 자신만으로 작품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리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광화문 연가>는 지금까지의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다르게 진화한 작품이다. 이야기와 노래의 관계가 그렇고, 노래를 담아내는 무대의 이미지가 그렇고, 노래가 무대 위에서 변주되는 방식이 그렇다. 이영훈이 적어놓은 시놉시스에서 출발한 작품이니만큼 원작자의 의도를 전적으로 배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실 ‘광화문을 배경으로 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면 여기에서 서사의 변별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찾을 방법밖에. <광화문 연가>의 미덕은 이 작품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잖이 고심한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는 점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콘서트 대본이라는 극중극의 틀 안에 넣어버린 것은 이야기 자체의 불완전함을 극중극의 의도된 형식으로 보이도록 하는 기능적인 설정이었다. 이렇듯 회상의 틀을 쓰게 되면 내러티브가 아닌 이미지 위주로 장면을 연결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간결해 보이는 법이다.

 

이미지와 장면 위주로 극을 이끄는 것은 애초에 이 작품의 관심이 이야기보다는 음악과 노래에 있기 때문이다. 무대 양 옆에 피아노가 놓여있고, 무대의 중간에 걸쳐있는 배경막에 악보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 극의 주인공이 노래임을 보여주는 시각적 설명에 다름 아니다. 넓이와 깊이를, 그리고 조명과 영상을 남김없이 활용한 무대 공간에서는 내면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움이 단연 돋보였지만 이 작품의 무대 공간은 극의 이해를 돕는 기능적인 면에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즉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을 명확하게 구획함으로써 사실과 내면을 넘나드는 다소 분주한 극의 흐름을 공간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던 거다. 이토록 기능적이고 미적인 무대 공간은 지금까지의 주크박스 뮤지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단 주크박스라는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의 공간적 성취는 보기에 충분히 즐거운 것이었다.

 

 

그래도 역시 이 작품의 백미는 노래 그 자체에 있다. <광화문 연가>는 이영훈이라는 작곡가의 세계를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대중들에게 진지하면서도 아름답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연의 팬층을 세 부류로 나누어 보자면 노래의 팬과 배우의 팬 그리고 뮤지컬의 팬으로 나눌 수 있을 텐데, 그중 최고의 만족을 누릴 수혜자는 아마도 노래를 사랑한 팬들일 것이다. 원곡 자체의 아우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더 풍성하고 극적으로 편곡된 노래들은 익숙한 노래를 새롭게 듣는 재미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때로는 서로 다른 노래가 마치 한 노래인 것처럼 하나로 어우러지고 배우들이 직접 기타를 연주하면서 화음을 넣어 노래를 부르는데, 그런 음악적 상상력은 그 노래를 익히 알고 있는 관객들의 귀를 활짝 열게 만들었다. 물론 배우들의 가창력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공염불이었을 터다. 특히 리사가 부르는 ‘그녀의 웃음소리뿐’과 ‘기억이란 사랑보다’는 그 수많은 노래 가운데에서도 단연 발군이다.

 

그런데 가수로서의 리사가 돋보인 만큼 배우로서의 그녀가 돋보였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건 리사의 역량 탓도 아니고 비단 리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건 이 작품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배우가 만들어내는 역할의 분량보다는 이미지의 연속 속에서 배우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자태가 이 작품에서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이미지 속에 갇혀있는 주인공들보다는 현재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구원영이나 양요섭 등 조연들이 빛나는 이유가 연기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배우의 팬들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음악 속에서, 그리고 조명 위에서 별다른 연기를 안 해도 충분히 멋있으니까.

 

 

조금 섭섭한 건 뮤지컬 팬들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문제는 또다시 ‘이야기’라는 건데, 사실 <광화문 연가>의 이야기에서 아쉬운 것은 진부함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1막과 2막의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그것은 극작의 부실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 작품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1막의 전개는 분명 이영훈의 음악을 소재로 삼은 창작뮤지컬이었는데, 2막에서 이 작품은 갑자기 이영훈의 예술가적 삶을 추모하는 헌정 공연으로 색깔이 바뀌어버리니 말이다. 이야기는 갑자기 힘이 빠져버린다. 누가 봐도 주인공 한상훈은 이영훈이건만 새삼스레 죽음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한상훈을 지워버리고 이영훈을 내세우는 마지막의 극적 설정은 작품의 대미를 기운 빠지게 만든다. 이영훈의 삶에 대한 기억이 극의 줄거리와 행복하게 만난 것 같진 않다. 어차피 이 공연의 주인공은 그의 노래이니 끝까지 노래 자체를 드라마틱하게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일례로 한국형 주크박스에 좀처럼 빠지지 않는(좀 빠졌으면 좋겠는!) 운동권 학생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깊은 밤을 날아서’라는 노래 안에서는 투쟁의 춤도 발랄 상쾌하게 그려질 수 있었잖나. 이 공연의 진가는 노래 자체의 극적인 면모를 다듬을수록 빛나게 마련인 셈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사람에게나 공연에게나 모두 중요한 일이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광화문 연가>는 마굿간 가족인 우리 올케가 정말 좋아할 공연이라는 사실. 정말 오랜만에 공연 나들이를 가는 올케의 주말이 더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광화문 연가>는 그런 신뢰를 주는 작품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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