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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쌍화별곡> 이란영 연출 [No.108]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김호근 2012-09-17 5,249

 

 내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

 

뮤지컬 <쌍화별곡>은 ‘해골물 일화’로 널리 알려진 신라 시대의 두 고승, 원효와 의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무덤 앞에서 헤어진 이들은 이후 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향한 그 길의 끝은 결국 맞닿아 있었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안무가로 널리 알려진 이란영이 맡았다. 배우로서, 안무가로서, 연출가로서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좋은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꿈속에서 이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

 

 

<쌍화별곡>이 첫 연출 작품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40대부터는 뮤지컬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계속 안무 작업이 들어오다 보니 자꾸 타이밍을 놓쳤다. 지난해 가을쯤 이러다가 너무 늦겠단 생각이 들어 들어오는 안무 작업을 모두 거절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앞으로는 안무만 하는 작업은 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이 작품의 연출가를 구하는 과정에서 스태프들이 추천을 해주었다고 들었다.


안무 작업을 접으면서까지 연출을 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본래부터 안무가를 꿈꾸었다기보다는 뮤지컬을 만드는 것 자체가 꿈이었고, 전부터 연출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실 안무란 작업도 장면 연출이기 때문에 연출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안무와 연출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작품을 연극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지 무대 경험이 없는 작가에게는 연출을 맡기면서 실제로 무대를 아는 안무가에게는 잘 맡기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뮤지컬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매번 장면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안무 작업을 접고 연출 작업만 하겠다는 결심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에게 연출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모한 결심이었지만 내 꿈을 위해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길 잘한 것 같다.


안무가로서 연출을 맡아서 유리한 점은 무엇이고, 직접 연출을 해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동선이나 블로킹을 짜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움직임뿐 아니라 세트 전환도 크게 보면 하나의 동선인데, 그런 움직임 만들기는 평생 해온 거라 누구보다 빨리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 연출을 해보니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안무가로 참여할 때는 내 작업만 잘 하면 되었는데 연출가가 되니 대본, 무대, 의상, 소품, 분장, 조명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결정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쉽지 않다. 내 한마디에 모든 게 결정되고 그게 바로 작품에 영향을 미치니 내가 지금 옳은 판단을 하는지 자꾸 점검하게 된다.


<쌍화별곡>은 뮤지컬로 만들기엔 낯설고 까다로운 소재라 할 수 있는 두 스님의 우정과 사랑, 번뇌와 해탈 등을 그리고 있다. 연출 컨셉도 일반적인 뮤지컬 작품과는 다르게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작품 전체에 클라이맥스라 할 부분이 없다. 큰 사건이나 갈등도 없고, 등장인물들도 인간적인 흔들림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해탈한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니까. 인간적으로 지지고 볶는 게 없으니 작곡가나 나로서는 극적으로 노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없어 힘들었다. 그런데 자꾸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보통의 뮤지컬처럼 밖으로 보이는 갈등이나 극적인 설정은 없지만, 우리 작품에는 내적인 희로애락과 소소한 재미, 그리고 편안한 감동을 주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극 중 원효나 의상의 대사를 곱씹어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감동을 받게 될 때가 많다. 작업하면서 나도 거기 동화되고 있다. 첫 작품인 데다 시간도 모자라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찾기 힘든 시기인데도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이번 작품의 ‘투톱’이라 할 수 있는 원효와 의상은 매우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각기 어떤 점을 부각시킬 생각인가?

원효와 의상은 같은 길을 가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는 사람이다. 이 작품에는 이렇게 대비적인 요소들이 많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이승과 저승 등…. 얼핏 보면 극과 극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이들이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원효와 의상도 서로를 비추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원효가 ‘즐기는’ 사람이라면 의상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듯이 의상은 언제나 원효를 이기지 못한다. 의상은 항상 노력하고 더 가지려 들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다니는 원효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는 의상이 더 우리와 비슷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원효의 기행, 원효와 요석의 사랑, 의상의 질투, 그리고 삶의 무상과 해탈 등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연출적으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은 원효라 보고 있고, 그중에서도 ‘무애가’가 가장 원효다운, 원효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막에서 원효가 부르는 ‘무애가’ 장면에 가장 힘을 주고 있다.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아무것에도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삶과 죽음을 넘어서리라”는 이 노래야말로 원효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그는 이 깨달음을 노래로 만들어 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원효와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한바탕 놀이판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 작품의 포인트이고 감정적으로도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신라 말기, 전쟁과 역병 등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갔던 신라 백성들이 작품의 배경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불교는 아직 왕족과 귀족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상류층의 종교였는데, 이를 서민에게까지 널리 전파한 선구자가 원효라고 한다. 원효는 서민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들을 위해 설법했던 서민의 스님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작품에서는 백성 역할의 앙상블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품에서 원효가 거의 매 장면 나오는데, 그때마다 백성들도 같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나 시대, 주제 등 모든 면에서 불교적인 색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종교적 요소들을 무대 위에 어떤 식으로 풀어낼 생각인지?

스님 이전에 인간 원효를 그리는 작품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주인공들도 전혀 머리를 깎지 않았고, 음악도 한국적인 정취는 있지만 불교적이지는 않다. 불교적인 느낌이 나는 건 두 개의 법회 신뿐인데, 그래서 그 장면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주인공이 두 명의 남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요석공주와 선묘 낭자의 비중이 적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원효를 중심에 두고 요석과 의상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가 좀 약할 수밖에 없다. 자기감정으로부터 해탈한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요석도 선묘도 감정적인 납득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뮤지컬과는 다른, 새로운 인물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효의 기행을 이해하고 자기 사랑에 당당했던 걸 보면 요석공주는 그 시대의 신여성이었던 겉 같다. 이에 비해 선묘 낭자는 지극히 순종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원효보다 의상의 삶은 덜 알려진 편인데, 사실 의상과 선묘 낭자 이야기도 실제로 전해 내려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는 연출가로서뿐 아니라 안무가로도 참여하고 있다. 안무적으로는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는가?

이 작품에는 죽음, 삶, 깨달음 등 상징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때문에 구체적이고 화려한 움직임보다는 상징적인 동작이나 이미지를 많이 가져가려 한다. 가능한 심플하고 현대적으로 풀면서 남은 부분은 배우들의 에너지로 채우려 한다.


움직임에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오프닝이 원효가 화랑으로서 전쟁에 참여하는 신인데,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들이 대규모 군무로 표현된다. 움직임에서는 그 장면에 공을 가장 많이 들였고, 테크닉을 떠나 정서적으로는 아까 언급한 ‘무애가’ 장면에 힘을 쏟았다. 원효가 서민들과 함께 추는 장면이다 보니 테크닉적으로는 쉬운 춤만 나오지만, 그 안에 우리의 흥을 담고자 노력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지닌 가장 큰 감정 중 하나가 흥이라 생각하는데, 그걸 이 장면에서 원 없이 펼치면서 신명나는 한 판을 만들고 싶다. 


안무가, 배우, 연출가 등 다양한 역할을 거치며 무대 안팎으로 경험을 쌓고 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연기나 안무가 아니라, 뮤지컬 그 자체를 사랑한다. 배우든 안무든 연출이든 뮤지컬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동안 쉼 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너무 치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일을 좀 줄이고, 내가 정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작업에 온 힘을 쏟으려 한다. 그런 면에서 <쌍화별곡>의 연출을 맡은 것은 행운이다. 예전에 배우를 하다가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났던 것이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 첫 번째 계기였다면, 이 작품은 남은 내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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