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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VIEW] <천국의 눈물> 낡은 기억 속에 찬란히 빛나는 그림 [No.89]

글 |박병성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1-03-02 4,983

대형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은 한국 뮤지컬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2007년 대극장 창작뮤지컬 세 편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이후 뮤지컬 시장에 오랜만에 등장하는 대형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페라의 유령>으로 뮤지컬 시장을 확장시킨 설도윤 프로듀서가 1990년대 이후 오랜만에 도전하는 창작뮤지컬이기도 하다. 소극장 창작뮤지컬은 라이선스 뮤지컬과 경쟁할 만한 작품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지만 대형 뮤지컬의 경우 국내 작품과 해외 작품 간의 완성도 차이가 크다.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 토니상 수상자인 무대디자이너 데이비드 갈로 등 해외 창작진과 국내 창작진이 힘을 모았다. <천국의 눈물>이 성공적인 대형 창작뮤지컬로 남을 수 있을까. 본 공연에 앞서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운명에 맞서는 사랑, 용서와 화해

알려진 바대로 <천국의 눈물>은 조성모의 노래 ‘아시나요`에서 출발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전쟁터에서 만난 베트남 소녀와 한국 군인의 운명적인 사랑을 담은 10분의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과 스토리, 그리고 조성모의 슬픈 음성이 더해져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국의 눈물>은 이 뮤직비디오를 모티프로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도 위험한 사랑을 당당하게 선택하는 연인들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나간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나이트클럽 가수인 린과 한국 군인 준, 그리고 미국인 그레이슨 대령의 삼각관계가 놓인다. 그레이슨 대령은 린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해서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가 결혼을 하고 가수로서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한다. 린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그레이슨 대령이 싫지 않지만 그것이 사랑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운명처럼 준이 등장하고 린은 그와 교감하면서 비로소 그레이슨 대령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 안정된 미래를 포기한다.
극 중 준이 린에게 들려주는 동화 ‘호랑이와 비둘기’는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물이자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은유다. ‘호랑이와 비둘기’의 테마곡은 작품 속에서 세 번 반복되면서 운명에 맞서는 이들의 사랑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려낸다. 준이 이야기하는 동화는 그림자극으로 표현되는데, 전쟁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사랑의 판타지가 신비롭게 그려진다.
<천국의 눈물>의 배경은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7년이다. 준이 1968년에 벌어진 캐산 전투에 투입되는 등 매우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가브리엘 베리는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현재라고 말한다. <천국의 눈물>은 과거의 기억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며, 과거의 사건과 기억이 현재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얽혀 있는 과거의 사건들보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만나게 된 티아나와 준, 그리고 퀴엔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출가의 말대로 현재에 포커스를 맞추기에는 과거의 비중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전쟁의 혼돈 속에서 운명에 맞선 사랑 이야기는 그 시간적 배경이 언제이든 보편적인 감동을 전해준다.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는 이 작품이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어느 하나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린을 차지하기 위해 준을 전쟁터로 보내는 그레이슨 대령이나, 린과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퀴엔, 준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레이슨 대령을 따라가는 린의 행동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린의 딸 티아나와 준은 진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해온 퀴엔에게, 그레이슨 대령은 준의 아이를 임신한 린에게, 린은 그런 자신을 버린 그레이슨 대령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천국의 눈물>은 그것이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다고 말한다. 누가 누구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희생자였다고 보는 관점이다.

 

 

 

 

 

 

 

 

 

 

 

 

 

 

 

 

 

 

<천국의 눈물> 연습 장면, [좌] 이해리(린 역)와 김준수(준 역) [우] 정상윤(준 역)과 앙상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조화된 음악

<천국의 눈물>에서 특별히 공을 들인 부분은 음악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편안하면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클래식하게 표현해내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작곡가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재능이 빛난다. 최종 완성된 넘버 중에 열 곡을 들어내고 두 곡을 새롭게 작곡할 정도로 완성도를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이번 작품에서 오페라, 팝, 재즈, 록, 동양의 전통 음악 스타일을 곡마다 적절히 혼합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안타까운 연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애틋한 러브 송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1막 마지막에 린과 준이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며 부르는 ‘이렇게 사랑해본 적 없어요’는 스케일이 큰 팝 넘버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까운 선율로 이들의 비극적 사랑을 예감하게 한다. 다음 곡으로 나오는 또 다른 러브 송 ‘내 말이 들리나요’는 그레이슨 대령이 준을 전쟁터로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고 나서 세 주역과 앙상블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안타까운 이별과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는 슬픈 정조가 담겨있다.
동양적인 선율이 느껴지는 플루트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호랑이와 비둘기’나 오프닝 곡인 오페라풍의 아리아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서양 음악의 틀 안에서 동양의 정서를 살려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프랭크 와일드혼 스스로가 이 작품의 음악 작업은 “동양과 서양의 모티프들로부터 하나의 뮤지컬을 엮어내는 일이었다”고 할 정도로 작품 곳곳에 이러한 노력들이 보인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로 자라나서 디바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티아나의 솔로곡 ‘내 마음 속의 그림자’ 도입부를 비롯해 많은 곡에서 대금과 같은 동양의 전통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동서양의 음악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대표작인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아름다운 솔로곡과 함께 군무를 동반한 파워풀한 합창곡이 인상적이었다. <천국의 눈물>에서도 <지킬 앤 하이드>의 ‘Murder Murder’를 능가하는 합창곡들이 있다.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그려간 ‘비처럼 내리는 불길’은 강렬하면서도 장엄한 멜로디에 이란영의 비장한 안무가 어우러져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비처럼 내리는 불길’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곡이라면 ‘아침이 오네요’는 부드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합창곡이다. 1막에 린과 준이 베트남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며 데이트하는 장면이 담긴 이 곡은 전쟁 중에서도 베트남 시내의 아름다운 한때를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해낸다.

 

 

 

 

 

 

 

 

 

 

 

 

 

 

 

 

 

 

<천국의 눈물> 연습 장면, [좌] 브래드 리틀(그레이슨 역)과 윤공주(린 역) [우] 연출 가브리엘 베리

 

무대, 한 소녀가 상상하는 그림자 속의 사랑 

<천국의 눈물>이 이전 대형 창작뮤지컬과 구별될 수 있는 지점은 모던하면서도 현대적인 무대이다. 1967년이라는 명확한 시점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무대 디자인을 맡은 데이비드 갈로는 <천국의 눈물>이 ‘기억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디자인의 중요한 컨셉으로 삼았다. <천국의 눈물>은 현대 시점에 있는 준이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티아나에게 찾아가서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되고, 그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갈로는 극의 중심이 되는 과거의 장면들을 준의 이야기를 들은 티아나가 상상하는 이미지로 파악했다. 그래서 전쟁의 참혹함은 희석되고 그 속에서 나눈 안타까운 사랑은 더 아름답게 그려진다. 데이비드 갈로는 이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이용해 기억으로 채색된 현실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그는 <천국의 눈물>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탐구했다고 말한다. 화가 고든 팍스(Gordon Parks)의 그림들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현실의 풍경들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대는 기억의 구조처럼 빈 무대에 놓인 간단한 소품들을 통해 그곳이 어디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즉, 무대 세트를 통해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 않는다. 기억의 어떤 부분은 추상적이지만 어떤 부분은 실제보다 더 생생한 것처럼, 베트남이나 샌프란시스코의 실제 풍경들을 프로젝션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 이미지들은 작품 성격에 맞게 선택된 것들로 사실성을 주면서도 기억의 편린들 같은 느낌을 준다.
기억 속에서 무수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지나가듯 무대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은 장면들이 프로젝션의 도움을 받아 속도감 있게 전환된다. 기억의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듯 치열한 전투가 한창인 베트남에서 너무나 대조적인 평화로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바뀌는 장면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빠른 영상을 적절히 이용해서 상징적으로 펼쳐지는 무대는 역사물이지만 굉장히 모던한 느낌을 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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