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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꾸밈없는 청춘, <번지점프를 하다> 윤소호 [No.108]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12-09-11 7,399

 

고교 시절 구체적인 꿈이 생긴 윤소호는,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난 뮤지컬 할 거야. 너네도 나중에 공연 보러 와.” 그때 윤소호가 경험한 뮤지컬이라곤 <노트르담 드 파리> 한 편이 전부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운명’을 믿게 하는 기회는 모두에게 한 번씩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그 기회를 알아차리고, 누군가는 흘려보낸다. 윤소호에게는 인생을 크게 바꾸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저희 동네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가 공연한다는 광고를 보고 처음엔 저런 게 있나보다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을 처음 보는 거라 혼자 가기 부끄러워서 친구 티켓까지 제가 예매하면서 보러 갔어요. 그때 왜 그렇게까지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공연을 보고 나선 ‘대단하구나’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열아홉 살 소년은 언젠가 소방관을 꿈꿨고, 또 언젠간 가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무언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 굵은 외모(그럼에도 깨끗한 분위기)와 훤칠한 체격. 배우로서 좋은 조건을 가진 그가 우리 앞에 서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남자 배우들의 등용문 <쓰릴 미>로 무대에 서게 됐으니 말이다. 마치 우연한 기회에 ‘짠’ 하고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저 <쓰릴 미> 하기 전까지 오디션 꽤 많이 봤어요. 그런 시기가 없었다면 아마 <쓰릴 미>도 못했을 거예요.” 이 기간에 지면에 다 싣지 못할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었는데, 그중 결정적이라 할 만한 대표 에피소드는 이것이다. 군대 문제로 휴학 중 호기심에 본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하자, 아쉬운 마음에 집 앞에 있던 연기 학원을 찾아가는데, 그곳이 배우 남경읍이 운영하는 ‘남뮤지컬아카데미’였던 것. “여긴 입시 학원이라 제가 다닐 곳이 아니라고 다른 데를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만약 연기를 꼭 배우고 싶으면 레슨을 받으면 된대요. 그런데 레슨비가!” 레슨비는 그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월급 수준이었다.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 드렸어요. 선생님, 제가 돈이 없습니다. 근데 꼭 배우고 싶습니다. 대신 제가 매일 청소할게요. 레슨 해주세요, 그랬어요.” 매일 아침 학원으로 출근해 청소를 하면서 그의 연기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쓰릴 미>를 하게 됐을 때, 캐스팅된 것보다 선생님께 무언가 결과물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더 감사했어요.” 만약 친구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무언가 절실해지면 적극적으로 변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인터뷰에 싣기엔 너무 긴 이야기가 아니겠냐며 수줍게 웃다 ‘간절함’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각난다며 말했다. “<파리의 연인>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왠지 <쓰릴 미>도 서류에서 떨어질 것 같은 거예요(두 작품은 같은 제작사의 작품이다). <쓰릴 미>는 학교에서 워크숍 공연을 해서 애착이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되든 안 되든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비고란에 장문의 글을 썼어요. 제발 서류에서 떨어뜨리지 말고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합격하고 나서 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 도전적인 글 썼던 애지?’ 하하.” 아직 윤소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열심히 하는 도전적인 신인 배우’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핏 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엉뚱한 의외성은 그에 대한 호감을 높여준다.

 


윤소호에게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겉치레 없이 연기하는 신인 배우의 순수함이 있다.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주연 배우들의 부담감도,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신인 배우의 욕심도 없다. 배우라는 자각이 없어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 배우.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고교생 현빈을 연기하는데 그가 더없이 어울렸던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쓰릴 미> 할 때는 남자들밖에 없는 상황이 재미있었거든요. 근데 <번지점프를 하다>를 해보니 지금이 더 재밌어요. 하하.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니까 칙칙했더라고요. 지금은 너무 화기애애해요.”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마친 그는 소년처럼 히죽 웃었다. 꾸밈없는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생기를 띤 얼굴, 윤소호의 젊음은 그런 식으로 빛이 난다. “상대를 빛나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될 뿐이에요. <쓰릴 미>를 하면서 내가 돋보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배우들이 같은 마음으로 공연한다면, 다 함께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그걸 믿어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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