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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스트릿 라이프> 힙합과 뮤지컬의 절묘한 조화와 아쉬움 [No.96]

글 |이영미(대중문화 평론가)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2011-09-05 4,888

창작뮤지컬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한 뮤지컬에 버금가도록 흔해졌다. 영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을 일부 갖고 있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1970~80년대 촌티 패션의 희극성에 초점을 맞추어 낄낄거리는 옛 추억을 선사한 <달고나> 같은 초기 작품을 넘어서서, <진짜진짜 좋아해>, <젊음의 행진>을 거쳐 최근 <광화문 연가>, <늑대의 유혹>, <어디만큼 왔니>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게다가 공연된 작품만 이 정도이지, 그동안 제작될 것이라는 설이 돌았던 작품은 더 많았다. 조용필 노래만으로 또는 김광석 노래만으로 뮤지컬을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심심하면 한번씩 터져 나왔다.

 


그러니 DJ DOC의 노래만을 모아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성재준 극본·연출, 원미솔 음악감독, 정도영 안무)가 그리 신선할 리는 만무하다. 이미 뮤지컬 팬들은 그간 국내에서 창작된 몇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을 보면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노래를 엮기 위해 뻔한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 맞추어 노래와 극이 따로 노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꽤나 근거 있는 선입견을 살짝 갖기 시작했다. 게다가 DJ DOC의 노래들이, 단일 가수의 노래로는 조용필이나 이영훈, 김광석만큼 다양하거나 느낌이 깊은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팬층이 그리 두꺼운 것도 아니다. 17년 동안 계속 신작을 내는 긴 생명력은 놀랍지만 그들 음악에 대한 호불호가 비교적 갈리고 있다. 어떻게 봐도, 이 제작은 꽤나 무리수를 많이 두고 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스트릿 라이프>는 예상 외로 잘 흘러가는 작품이었다. 물론 연극적 이야기는 여태까지 수많은 창작뮤지컬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그러했듯이,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뻔하고 단순했다. 재민, 수창, 훈, 힙합을 하는 이 세 명의 젊은이는 같은 나이트클럽에서 DJ, 웨이터, 삐끼를 하면서 음악의 꿈을 키운다. 재민은 수술비는커녕 월세 낼 돈이 없는 병든 엄마가 있고, 고아 수창은 재민의 애인인 가라오케 가수 세희를 짝사랑한다. 훈은 애인 혜원에게 비전 없는 삶을 산다고 절교 당한다. 그들은 모두 돈과 힘에 눌려 사는 젊은이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스트릿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인디 뮤지션들이 모이는 클럽 무대에 서게 되고 이들이 인기를 얻게 되자 기획사의 음반 제의가 들어온다. 음반과 공연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은 점점 인기를 얻어가지만 기획사 사장은 이런저런 핑계로 이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은 채 계속 행사 공연만 시킨다. 그 사이 인기 관리를 위해 재민은 세희를 멀리 하여 둘 사이가 갈라지고, 엄마는 수술도 못 받고 죽는다. 재민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이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결국 기획사를 나와 다시 클럽으로 되돌아간다. 세희와의 관계를 회복하여 세희가 멤버로 합류하고, 떠나갔던 혜원도 다시 훈에게 돌아온다. 기획사 사장의 방해가 있지만 가볍게 물리치고, 이들은 다시 새롭게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이러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연극적 내용은 매우 빈약하다. 가수의 데뷔 이야기로, 밑바닥의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삶과 우연찮은 데뷔가 준 행복감, 그 이후 벌어지는 몇 가지의 위기 등의 익숙한 줄거리 흐름은 안 봐도 다 알 정도이다. 아니, 이 말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재민 엄마의 죽음, 세희와의 연애의 파국이라는 두 사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위기 상황은 너무도 쉽게 해결된다. 이 작품은 인물을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거나 사건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연극적으로 정교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애초부터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는 무성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연극적 내용을 채워가느라 생겨나는 설명적인 장면들이 노래와 춤으로 엮어가는 발랄한 흐름을 깨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특히 제1부는 거의 DJ DOC의 노래와 춤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적 내용은 이들 넘버를 아슬아슬 연결시키는 힘없는 접착제 정도에 불과하다. 이 상황은 2부에서도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연극적 내용을 진행시켜야 뮤지컬 작품이 끝날 터이니, 1부에서 펼쳐놓은 이야기와 노래들을 어쨌든 2부에서 진행시키고 봉합해야 한다. 그나마 2부의 두 장면에서의 넘버, ‘삐걱삐걱’과 ‘사랑을 아직도 난’이 각각 어머니장례에서의 분노와 세희와의 사랑의 난항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했고, 노래들을 뮤지컬적으로 만들어놓는 데에 성공했다. 이 두 곡만 다소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연극적 노래의 묘미가 있을 뿐, 나머지 노래들은 연극적 기능이 매우 약했다. 즉 주크박스 뮤지컬이 가지는 가장 전형적인 문제점인, 노래가 뮤지컬 안의 넘버로 기능하지 못하고 극적 상황 바깥으로 튀어나와 버려서 노래가 시작되면 공연의 분위기가 대중가요 콘서트로 바뀌어버리는 현상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스트릿 라이프>는 이런 주크박스 뮤지컬의 결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연극이 따로 노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고, 공연 전체의 흐름이 매끄럽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매우 큰 체력 소모를 요하는 힙합을 노래와 춤 모두 잘 소화한 배우와, 관객이 지루해 할 틈을 미리 잘 알고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낸 능란한 연출일 것이다. 연출은, 2부의 단 두 곡의 넘버로 음악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고 내용상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갈등을 해결해내는, 매우 경제적인 운용을 해내고 있다.

 


여기에 DJ DOC 노래를 원곡의 가사를 완벽하게 쓰고 곡의 느낌을 확실하게 살려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개 엉성한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관중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는 원곡의 느낌을 무시한 채 연극 내용과 무리하게 연결 짓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가사와 편곡 등으로 원곡의 느낌을 크게 훼손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DJ DOC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충실하게 살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이자 성과는, 바로 힙합이라는 양식의 음악극적 가능성의 발견에 있다고 보인다. 힙합의 일부분인 랩은, 말과 노래의 중간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힙합에 내재해 있는 랩은, 노래가 연극과 연결되는 지점을 매끄럽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확인한바, 연극 대사를 주고받다가 노래로 들어가는 그 사이에 배치된 랩은, 마치 오페라에서의 레치타티브처럼 산문적인 음악 또는 말 같은 노래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그냥 DJ DOC의 원래 노래에 있는 랩을 그대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랩이 들어감으로써 배우의 대사가 노래로 옮겨갈 때의 부자연스러움은 크게 완화되었고, 노래의 연극적 기능 또한 매우 상승되었다. (물론 이것은 DJ DOC의 노래가 이미 구어체의 내뱉는 말의 재미를 충분히 잘 살린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힙합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 음악과 극이 잘 어우러지는 좋은 뮤지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되었고, 극작과 연출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읽어낸 셈이다.


그러나 단지 이 가능성을 보여준 지점에서 멈춘 것은 아쉽다. 지껄임이 살아있는 DJ DOC의 노래를 바탕으로, 랩과 노래에서 좀 더 많은 연극성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갈등은 행동으로 외화되지 못해, 재민은 가장 중요한 주인공임에도 행동 없이 내적으로만 끙끙대며 가장 낮은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최고의 안타고니스트 기획사 사장은 이렇다 할 만한 넘버조차 배당받지 못했다. 대립의 행동과 사건이 취약함으로써, 힙합이 대립과 싸움의 노래로 연극화하는 데에서도 한계를 드러내었고, 당연히 이에 따라 브레이크댄스가 대립을 표현할 가능성 역시 낮추어 버렸다. 음악극의 기본이, 음악으로 대립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기초적 인식이 조금 더 존중되었다면, 이 작품은 훨씬 더 훌륭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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