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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 <두 도시 이야기> 카이 [No.108]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2-09-11 5,926

 

“당신은 가수입니까, 뮤지컬 배우입니까?” 카이는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는지 되물었다. 어느 한순간도 신인 배우로서의 마음을 잊은 적 없고, 무대를 향한 열정과 노력, 책임감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무대 위에서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소금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카이. 새롭게 도전하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연습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인생이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인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소프라노 조수미로부터 얻었다는, 중국어로 ‘열다, 개척하다’는 뜻을 지닌 ‘카이(Kai)’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정기열의 인생은 그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정규 앨범을 발매한 팝페라 가수로 ‘나는 가수다’에 참여했고, 라디오 프로그램 ‘생생 클래식’의 DJ를 2년째 맡고 있으며, 새로운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인생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이로 살기 전, 그러니까 ‘훌륭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 이후 앞만 보고 달렸던 클래식 성악도 정기열의 삶이 반짝이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서울예고 수석 졸업, 서울대 성악과 학사·석사·박사 과정, 2002년 슈베르트 콩쿠르 입상, 2007년 동아 콩쿠르 성악 부문 3위, 2008년 오사카 국제 콩쿠르 3위 입상 등 정기열의 이력도 화려하다. 성악계의 기대주로 떠오르며 탄탄대로를 걸어가던 그가, 지금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팝페라 가수의 길을 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재미가 없어졌다.” 카이가 꺼낸 답은 싱거울 정로도 간단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명료했다. 클래식 성악도의 길을 택한 것, 오래 걸어온 길 위에서 방향을 바꾼 것 모두 재미 때문이었다. “박인수 교수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자기한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도 좋아해 주는 거라고, 관객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셨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듣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음악이 하고 싶어졌고,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을 부를 때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다는 걸 확인했죠.” 200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진행하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앞두고 성대 결절을 겪으며 보냈던 힘겨운 시간들도 그의 도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빨리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과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연애도 안 하고 매일 연습만 했거든요. 근데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정말 눈앞이 캄캄했죠. 노래를 못하면 죽을 것처럼 전국으로 목에 좋다는 것들 구하러 다니면서 매달렸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그제야 음악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음악보다 저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됐어요.”


노래 말고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절, 아나운서, 탤런트 시험, 영화배우 오디션을 준비하고 뮤지컬, 콘서트, 무용 등 장르 상관없이 많은 작품들을 보러 다녔다. 그때 만난 조승우의 <카르멘>을 통해 ‘노래가 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무엇을 하더라도 매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00킬로그램이 넘었던 그가 지금의 훤칠한 외모를 갖추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카이의 첫 성적은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결’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음반은 스스로의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처음으로 도전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상대 배우와 호흡 한번 제대로 맞춰보지 않은 채 무대에 서야 했다.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이던 뮤지컬 무대였기에 그 실망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컸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출연 제의를 받고도 한참을 망설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다시 도전한 뮤지컬은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서 내려가는 일 없이 절반 이상의 노래를 소화하며 극을 이끌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가수 출신’이라는 선입견으로 인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천사 앨빈으로 인해 토마스가 위로받고 변해가는 모습을 연기하는 동안 카이 스스로도 성숙해졌다. 그리고 내가 아닌 캐릭터를 창조해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 카이는 잔인무도한 프랑스 귀족 사회에 회의를 느끼고 신분과 명예를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귀족 찰스 다네이에 도전한다. 그는 극 중에서 보이는 다네이의 이중적인 면모가 실제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엄청 사랑한다는 점이 특히요. 그래서 자신의 신념에 대해 확고하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소심하고 진중하죠. 저는 어떤 책임감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리거든요. 다네이는 그런 면까지도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분명히 그는 A형 남자일 거예요.”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목숨처럼 생각하다 혁명군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아내 루시를 향한 칼튼의 사랑과 희생에 초점을 맞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다네이는 자신을 분명히 드러낼 여지가 많지 않다. 자신을 구하고 대신 단두대에 오르는 칼튼에 비해 캐릭터도 약하고 솔로곡 하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카이는 주어진 역할 이상을 욕심내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심심할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제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욕심내다 보면 작품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튀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소금 같은 역할이 되면 좋겠어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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