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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번지점프를 하다> 현빈 [No.107]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08-27 4,317


           

영원한 끝은 없어요

열일곱의 설익은 얼굴을 하고도 그의 바람과 다짐은 단단했다. 마치 여린 가슴속에 더 많은 나이테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 이 글은 현빈을 연기한 배우 이재균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지난 시간들이 그립진 않나요?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재밌게 잘 지냈잖아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거, 좋았죠. 하지만 괜찮아요. 굳이 학교를 다녀야 하나, 학업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조금 유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들 귀엽고 재밌었는데….


역시, 스스로 친구들보단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죠? 
음, 잘 지내긴 했지만, 제가 같이 놀아줬달까요. 헤헤. 제가 혜주도 많이 놀렸는데, 놀리면 걔가 화낼 걸 알면서 그 모습이 귀여워 일부러 더 짓궂게 하곤 했거든요. 그럼 혜주는 금방 토라져요. 그러곤 제가 화를 풀어주면 금세 또 누그러지고요. 정말 귀여워요.


혜주 양이 당황할 일도 많이 했고요?
정말 전 혜주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예요. 호기심이 가득할 때였잖아요. 여자의 아름다운 몸에 대해서. 혜주의 가슴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곤 했죠. 흐흣. 이게 짓궂은 장난으로만 보이셨겠지만, 아름다운 몸을 보고 싶고 그리고 싶은 게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누구나 갖고 있는 몸이지만, 제가 그림으로써 예술 작품이 되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그림으로든 음악으로든 표현하고 싶거든요.


현빈 군이 언젠가 수업 시간에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점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제가 그린 그림이나 조각한 작품을 본 사람들이 뭔가 깨닫고 감동받을 수 있길 바라요. 비록 소박하고 손쉽게 만든 작품이라도 어떤 사람에겐 큰 감동을 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어요. 고급스럽고 어려운 예술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상에서 보게 되는 무엇이라도 예술이 될 수 있죠.

굉장히 열린 사고를 하고 있네요.
제 의도를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전 이런 감정으로 그렸지만, 다른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경험대로 공감할 수도 있잖아요. 꼭 같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학교 친구들은 제 그림에는 관심 없었어요. ‘이 그림,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면, 애들은 ‘이게 뭐야’ 하고 밀어내죠. 그럼 저도 그냥 그러려니 해요. 저도 어느 정도는 알죠. 얘들과 나는 좀 다르다는 걸.

친구들에게 실망했나요?
아뇨, 전혀. 그럴 수도 있죠. 음, 그런데 아주 조금, 내가 표현한 걸 공감하는 친구가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난 정말 재밌고 좋은데,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말이죠. 음, 그런데 서인우 선생님은 조금 말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서인우 선생님을 남다르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어요. 대부분 좋은 어른의 모습보다는 혼내고 강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서인우 선생님을 처음 뵌 날,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되게 감성적이고 예술적으로요. 칠판에 선을 죽 그어놓고, 하늘에서 떨어진 실이 바늘에 꽂힐 확률에 대해, 사람들을 이어주는 인연에 대해서요. 제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도 제가 조금이라도 늦게 왔거나 다른 선택을 했다면 못 만났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을 가진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고요. 제가 그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질문을 해도, 진지하고 진실하게 들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선생님은 공감해주실 것 같아서, 더 친해지려고 일부러 말 걸곤 했죠. 체육대회 파트너도 자처했고요.


서인우 선생님도 현빈 군을 잘 챙겨주셨죠. 그렇지만 편애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럽고 불편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혜주가 ‘선생님이 너만 예뻐한다’고 했을 땐 혼란스러웠어요. 사실 저도 느끼고 있었죠. 뭔가 다르다고. 제가 원래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누가 뭐래도 신경 안 쓰는 편인데, 그땐 선생님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흥분하고 예민해졌어요. 내가 평소답지 않은 게 정말 선생님 때문인지 아니면 뭐 때문인지 헷갈렸어요. 아닐 거라고 믿었지만 선생님에 대해서 살짝 불쾌한 의심도 들었고요.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일어났을 땐 많이 놀랐죠?
그때는 정말 두려웠어요. 제가 잠깐 동안 설마 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제 멱살을 잡고 이상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저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그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내가 잘못한 게 뭔지 계속 생각했는데, 제 잘못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 선생님 탓이다 생각하고 밀어냈죠. 너무 답답했지만 선생님과 말 섞긴 싫었어요. 더 큰일이 일어날까봐서요. 그런데 자꾸 속으로는 내 잘못 같다는 느낌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어요. 두려워서 선생님께는 더 비겁하게 대했고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다시 받아들이게 됐잖아요.
속으로는 걱정 어린 마음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비꼬고 화를 냈어요. ‘왜 또 제 앞에 나타나셨냐’고. 제가 모질게 대하면 선생님도 거칠게 화내며 혼내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눈을 바라보는데, 그때 망치로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어요. 선생님이 제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 저도 뭔지 알 수 없는, 이전에는 몰랐던 감정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이 들었어요. 그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란 걸. 그리고 그것 외에 더 이상 필요한 건 없었어요.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우습지만, 현빈 군이 살아서 그런 강렬한 경험들을 표현해냈을 엄청난 예술 작품을 보지 못한 게 아쉬운걸요.
크흐, 그러게요. 완전 대단한 예술가가 됐을 텐데요. 제2의 피카소 같은. 후훗. 하지만, 저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니까요. 다시 태어나서 또다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그땐 더 멋진 예술가가 될 거예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7호 2012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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