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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시카고>의 인순이 [No.69]

글 |정세원 사진 |이맹호 2009-06-22 7,41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가수 인순이가 <시카고>의 벨마로 돌아왔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던 그녀의 벨마를 기억하고 있기에, 십 년 만에 만나는 그녀의 무대가 반갑기만 할 수는 없었다.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십 년이라는 세월은 그녀를 빗겨간 듯했다. 5년 만에 발표한 17집 타이틀곡 ‘판타지아’ 무대에서 선보이는 ‘섹시 여전사’ 인순이의 파워풀한 퍼포먼스는 관능적인 살인자 벨마 켈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쉰세 살이라는 나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워풀한 섹시 디바, 인순이가 돌아왔다.

 

 

 

십 년 만이네요. 반갑습니다.
그때 나 괜찮았어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가 ‘착한 벨마’였대요.

 

이미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벨마와 무척 잘 어울렸는데,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왔나요?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내가 화를 너무 못 내니까 연출님이 “남편과 싸울 때처럼 해봐요”, “아이 야단칠 때처럼 해봐요” 하고 주문하셨는데 그때마다 “그런 적이 없는데요” 했어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사실 2000년 공연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12월 공연이었는데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10월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연습실에서 살았죠. 나 도와주는 식구들 월급 줄 수 있을 정도만 가수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한달에 2~4번 정도? 나머지 시간은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습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죠. 처음이었으니까. 그땐 내 공연보고 실망했다는 글을 쓴 사람들한테는 직접 이메일도 보냈어요. ‘미안해요 못해서. 그래도 첫술에 배부른 일은 없습니다. 노력해서 더 나아질테니 지켜봐주세요.’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부족했다고 생각하세요?
감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혼자 하는 콘서트는 2시간이 넘어도 나름대로 감정이 연결되면서 흘러가거든요. 내가 직접 곡 순서 배열하고 의상디자인하고 연출을 하니까. 근데 뮤지컬은 드라마가 있고 또 다른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잖아요. 내 장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와 잠깐 쉬다보면 드라마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다음 장면에서 어떤 감정으로 나가야하는지 모르는 거지. 뒤에서 웃고 있다가 갑자기 나가서 어떻게 화를 내요. 관객들에게 죄송한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감정 유지가 안 된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 같아요. 알았다면 무대 올라가기 전에 먼저 화나는 생각이라도 하고 준비를 했을텐데 그냥 대사와 가사만 외우고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연습해보니 어떤가요? 이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도 같은데요.
이제는 벨마가 어떤 여자인지, 어떤 감정을 어떻게 실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얼마나 표현을 해낼지 모르겠지만. 벨마는 대담하고, 의자에 등을 붙일 수 있는 여자인 것 같아요. 록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지만 역시 록시를 이끄는 당당한 리더예요. 처한 상황에 의해 잠시 주춤했을 뿐 스스로는 일인자에서 물러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작품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없던 장면도 생기고 안무도 많이 다르고 말도 빨리 해야 하고 연출적으로도 많이 타이트해졌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가사 전달과 노래에 대한 표현은 잘할 자신이 있어요. 특히 ‘My Own Best Friend’. 춤추면서 노래하는 것도 자신은 있는데 ‘Entr`acte’ 장면의 의자가 너무 무거워서 걱정이에요. 여기저기 부딪혀서 벌써부터 상처가 많아요.

 

최근에 17집 앨범을 발표하셨죠. 주말에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하셔서 조금 놀랬어요. 한창 바쁜 시기에 공연 일정까지 겹쳐서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체력적으로 무리는 없으시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십 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건데.
감당은 하더라고요. 아마 누가 하라고 했으면 못 버텼을 거야. 체력보다 더 걱정되는 건 노래예요. 뮤지컬의 발성과 내가 부르는 가요의 발성이 다르거든요. 또 노래는 10시간을 하라고 해도 하겠는데 수다는 2~3시간을 못 넘겨요.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잠기는데, 뮤지컬은 대사가 있어서 그런지 내 노래할 때 목이 잠겨요. 이번 음반은 목소리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기교 없이 깨끗하게 쭉 뻗어가는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요. 근데 <시카고>는 터프한 중저음이다 보니 가끔 목소리가 헷갈리는 것 같아요.(웃음)

 

5년 만에 발표하는 앨범이라 애착이 많을텐데 공연 연습 때문에 활동을 많이 못해 조금은 아쉬울 것 같아요.
음반 출시일정은 미리 계획됐던 일인데 박명성 대표님과의 약속을 지키느라고 어쩔 수 없이 일정이 겹쳤어요. 연습 들어가면 녹화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다보니 앨범 홍보를 2주 정도밖에 못하게 됐어요. 내가 약속 번복하는 걸 워낙 싫어하니까 어쩔 수 없죠. 솔직히 난 언제 해도 바빠요. 자랑이 아니라 일년 내내 스케줄이 잡혀 있거든요. 회사에서 이해를 해준 것도 내가 쉬지 않고 계속 무대에 서기 때문이에요. 일년 내내 하는 게 콘서트니까 지금은 좀 아쉬워도 7월에 다시 하면 되는 거니까. 오히려 음반은 걱정 안 해요. 제 공연 팬들은 음원을 다운받는 거 못하니까 그냥 음반을 사거든요. 콘서트 때 평균 5백 장씩은 판매가 돼요. 아마 일년 동안 판매된 음반 집계하면 제가 1등 할 수 있을 걸요?

 

공연도 많고 스케줄도 빡빡한데 뮤지컬 관람할 시간이 있으세요?
봐야죠. 그게 다 공부의 연장선이니까요. 가장 최근에는 <햄릿>, <라디오 스타>, <드림 걸즈>를 봤어요. <라디오 스타>는 다 아는 얘긴데도 짠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우리 작품이고 또 가수의 얘기라 정서가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나도 6~7년 정도 슬럼프가 왔을 때 다 경험해 본 이야기고.

 

그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솔로로 데뷔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땐데, 방송 출연을 거의 못했어요. 주저앉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죠. 그래서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밴드를 만들어서 야외 콘서트를 했어요. 그때 제 개런티가 웬만한 가수들보다 훨씬 높았거든요. 야외에서 공연하면서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노래들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TV 프로그램 모니터하면서도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고. 그러다 <열린 음악회>에 우연찮게 출연하게 됐는데 첫 회 때 대박이 난 거예요. 앙코르 곡으로 창부타령, 사설난봉가를 무반주로 불렀는데 그게 또 터졌죠. 그 후로 격주로 10년 정도를 출연하면서 불렀던 노래들이 모두 슬럼프를 겪던 시기에 준비해둔 레퍼토리였어요. 성공이라는 건 운과 준비가 만났을 때 오는 거래요. 운이 와도 준비가 안됐으면 소용없고, 준비를 해도 기회가 없으면 도루묵이고. 그땐 운과 준비가 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에너지를 쏟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약아졌다고도 할 수 있고. 어렸을 때는 모든 일에 다 에너지를 다 쏟았는데 지금은 조절을 하거든요. 그래도 게스트 없이 2시간 넘게 콘서트 하는 걸 봐서는 아직 힘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도 저번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폭발력이 크지 않아서 내 무대보다는 절제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윤복희 선생님이 그렇게 뮤지컬 출연을 권유하셨다면서요?
제가 그분의 언더 스터디를 많이 했어요. 옛날에 월드컵이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었죠. 그때 선배님이 50분짜리 스페셜 공연을 하셨는데 안 나오시면 제가 대신 그 무대에 섰어요. 근데 선배님이 뮤지컬에 출연하시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할 때마다 부르더라고요. 그때마다 “선배 저 돈 벌어야 해요. 먹을 게 없어요. 돈 좀 벌고 할게요” 하면서 미룬 게 2000년까지 온 거예요. <시카고> 한다고 연락드렸더니 “잘했다, 네가 해야지 그럼” 하면서 응원해주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뮤지컬을 추천하셨을까요?
요즘 가수들은 자기 노래를 하지만 우리 때는 버라이어티한 쇼를 해야 했어요. 방송도 <쇼쇼쇼>, <토요일 밤의 대행진> 같은 무대에서는 자기 노래가 아닌 남의 노래를 가지고 쇼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요. 그래서 전 데뷔하고 나서 발레 토슈즈도 신었고, 한국의 밥 포시로 불리는 한익평 선생님께 재즈 댄스도 배웠어요. 설장고, 부채춤, 탈춤, 칼춤, 살풀이, 장고춤, 오고무 등도 다 배우고. 1978년에 데뷔해서 1979년에 신곡이 나왔는데 그 전에 이미 TV 출연을 하고 있었어요. 키 큰 여자 셋이서 핫팬츠 차림으로 팝, 가요, 민요, 춤 등 다 소화하니까 방송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선배님이 뮤지컬을 추천해주신 거고. 내가 히트곡이 많지 않은 이유가 그거에요. ‘쇼’를 하기를 원했지 곡에 대한 욕심이 없었어요. 40~50분짜리 스페셜 무대가 있는 공연만 했어요. 홀리데이인서울 같은 곳에서도 몇 년 동안 스페셜 공연만 하다보니 방송에 대한 필요를 못 느끼면서 살았어요. 지금도 남의 곡을 더 잘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내 노래가 히트를 못 치는 거고. ‘밤이면 밤마다’는 물론 제 인생에 있어 최고의 곡이지만 그것뿐인 거예요. 사람들은 ‘거위의 꿈’을 더 많이 기억하잖아요.

 

이번 공연에는 초연 때 함께 무대에 섰던 허준호, 최정원 씨와 다시 호흡을 맞추시죠? 다시 만나 반가웠겠어요.
아쉽게도 아직 한 번도 못 만났어요. 저만 따로 안무 배우고 대사 연습하고 있고 전체 연습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록시가 세 명이잖아요. 새로 합류한 고명석 씨와는 노래 연습 몇 번 해봤는데 배해선, 옥주현 씨는 만나보지도 못했어요. 연습하면서 ‘각자 개성이 다른 세 명의 록시와 어떻게 발란스를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무식한 사람이 제일 용감하다고, 그들이 나한테 맞추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계속 무대에 섰던 사람들이니까 나보단 낫지 않겠어요?

최근의 인터뷰 기사들을 살펴보면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나는 여가수잖아요. 무대에 서는 여가수는 최대한 멋져야 해요. 자기 관리를 잘해서 멋있어 보여야 하는데 다른 것보다 팔뚝 살 때문에 고민이에요. 고명석 씨랑 연습할 때도 보면 내 팔이 그녀의 두 배야. 너무 싫은 거죠. 거기다 키 크고 늘씬한 옥주현이라니! 킬 힐을 신고 무대에 서야하냐며 혼자 불평하고 있어요. 카리스마로 밀어붙여야하나 싶고. 어쨌든 잘할 거라고 주문을 걸고 있어요.

 

다른 배우들과 비교되는 게 싫은 건가요?
아니요. 저도 공연 보면서 비교하는 걸요. 서로 비교를 해야 저한테 발전이 있어요. 또 뮤지컬 관객들도 비교하고 골라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똑같은 사람이 매번 똑같은 연기를 하면 십 년 만에 공연해도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난 그저 최정원 씨와 같이 빛나고 싶을 뿐이에요.

 

<시카고> 외에 마음이 가는 작품이 혹 있으세요?
정말 넘볼 수 없는 작품인데 <선셋 블로바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어요. 여배우의 얘기잖아요. 그 얘기 듣던 지인이 넌 연기가 안 되서 못할 거라고 놀리더라고요. 그래서 전 뮤지컬도 다작을 하기보다는 두세 작품을 하면서 끝까지 그것만 하고 싶어요. ‘인순이’ 하면 손으로 작품을 꼽을 수 있게 말이에요. 좋은 작품, 내가 할 수 있는 여건 안에서 적은 작품에 올인하고 싶어요.

 

이번 공연을 마치고 어떤 평가를 듣고 싶나요?
‘아, 인순이가 참 노력을 많이 했구나’ 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뮤지컬 무대에 서느라 노력 많이 했네,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않는구나.’ 작품 안에 녹아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에요.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쟤만 나오면 어색해’ 소리만 안 들으면 좋겠어요. 지금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공연이 끝난 다음 날 하루를 오롯이 나를 위해 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렇게 쉬지 않고 무대에 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꿈이 있기 때문이죠. 목표도 분명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위의 꿈’으로 제2의 전성기 혹은 제3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노래할 날이 많이 남아있고 내 꿈이 있는데 지금이 최고라고 하면 다음은 내려갈 길밖에 없는 거잖아요. 난 최고의 곡은 만났을지언정 내가 그 곡을 최고로 잘 불러본 적은 없어요. 언젠가 가슴 후련하게 그 곡을 표현했을 때가 정점일 것 같은데 아직은 그 꼭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아마 노래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유효하게 남아있지 않을까요. 난 꿈도 크지만 욕심도 굉장히 많아요. 다행히 욕심내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 하고 지나간다는 거예요. 난 30년간 나를 지켜봐주고 있는 팬들을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는 거예요. 늘 같은 무대만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뮤지컬도 하고 재즈 공부도 하고 창도 배우는 거죠. 그렇게 무대 위에서 늙어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죠. 콘서트 끝날 때 ‘거위의 꿈’을 부르면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번 <시카고> 무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또 내가 뮤지컬 무대에 서기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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