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이 순간
<지킬 앤 하이드>의 10주년이 더욱 특별한 것은, 초연부터 지금까지 한 시즌도 빼놓지 않고, 하나가 되어 준 스태프들의 멋진 땀방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오늘의 <지킬 앤 하이드>를 만들어 온 스태프들. 그들이 꼽은 <지킬 앤 하이드>의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일까?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참 많은데요. 우선, 첫 리허설 때가 생각나요. 당시 제겐 등장인물들이 더블 캐스팅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생소했어요. 그래서 배우들에게 미국에는 더블캐스팅이란 게 없다고 알려줬죠. 그랬더니 조승우와 류정한 배우가 더블 캐스팅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설명해줬어요. 그러면서 ‘컨프론테이션’을 너무나 코믹한 버전으로 보여주었죠. 승우가 지킬 연기를 하다가 뒤로 돌아서면, 정한이 정면을 보면서 하이드 연기를 하는 식이었어요. 모두들 그걸 보고 너무 많이 웃어서, 그 날 리허설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초연 첫 공연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누구나 자신의 공연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흥분되고 긴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커튼콜 때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을 하더라고요. 그 순간, 우리가 성공을 거뒀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죠. 더 놀라웠던 건 마치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팬들이 무대 앞으로 돌진하더라고요. 이런 관경을 무대 극장에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2006년 국립극장 공연은 정선아 배우가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일 텐데, 당시 정선아 배우가 루시로 참여하게 됐을 때, 빠듯하고 바쁜 일정 때문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2주밖에 없었어요. 이건 평균 연습 시간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기간이거든요. 같은 배역의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배역을 매우 빨리 습득하며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죠.
분장디자이너 김성혜
아무래도 전 분장과 관련된 일화들이 기억나네요. 2004년 공연 때, 커튼콜에서 서범석 배우의 가발이 벗겨진 적이 있어요. 머리에 묶여 있는 고무줄을 멋있게 풀어야 하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머리를 세게 잡아당기신 거죠. 나중에 왜 그렇게 세게 잡아당겼냐고 물었는데, 또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더라고요. 아무래도 감정이 격앙되어 있을 때니까요. 그래도 커튼콜이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지킬 앤 하이드>는 한 번 사고가 나면, 수정할 시간이 거의 없는 공연이거든요.
2006년 국립극장 공연 땐 류정한 배우의 어깨가 탈골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2막에선 김우형 배우로 교체됐죠. 주말이었는데, 다행히 낮 공연을 마친 김우형 배우가 그날따라 저녁 공연을 보고 가겠다며 극장에 있었거든요. 그 때가 지킬이 하이드로 변신한 직후였는데, 상황이 심각해서 류정한 배우는 하이드 가발도 제거하지도 못하고, 응급실로 가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발을 떼어주겠다고, 응급실에 함께 갔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그럴 새도 없더라고요. 결국 치료를 마치고, 다시 극장에 돌아와서야 가발을 떼었던 기억이 나요.
음악감독 원미솔
2010년 샤롯데씨어터 공연이었어요. 맨 처음 하이드가 탄생하는 순간인 ‘얼라이브 1’에서, ‘에드워드 하이드’를 외치면 번개가 펑펑펑 치거든요. 그때 샘플러란 기계를 써요. 건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건반마다 ‘천둥’, ‘폭죽’, ‘칼’ 등 소리 이름이 써 있죠. 조승우 배우가 출연한 날이었는데, 음향 오퍼레이터의 손이 미끄러져 ‘천둥’ 옆 건반을 누른 거예요. 하필이면 ‘폭죽’이었죠. 엠마와 약혼식 끝나고, 불꽃놀이할 때 나오는 그 소리요. 샘플러는 한 번 누른 소리는 제거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조승우 배우가 ‘나는 에드워드 하이드’라고 외치는데, 폭죽 소리가 히융히융~. 마치 하이드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죠.
기술감독 김미경
처음 <지킬 앤 하이드> 작업을 시작할 때, 다들 워낙 바쁜 스태프들이어서 미팅을 밤 10시 이후에 했어요. 각자 맡고 있던 공연을 끝내고, 사무실에 모여 새벽 4시까지 회의를 했는데, 밤새는 줄도 모르게 정말 즐겁게 작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나요. 특히 이 작품은 스태프들의 의견도 많이 반영되어,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컸죠. 그래서 모두가 하나 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초연 첫 공연 커튼콜도 잊을 수 없어요. 류정한 배우가 첫 공연을 끝내고 커튼콜을 하는데, 제가 공연 일을 하면서 그렇게 관객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기립을 하는 건 처음 봤어요. 제겐 순수하게 기립을 경험할 수 있었던 첫 작품이었어요. 아마 <지킬 앤 하이드> 이후로 국내에 공연의 기립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당시 공연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들어가 보면, 우리 젊은 지킬들, 류정한, 조승우 배우는 한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셔츠를 벗으면, 온 몸에서 김이 올라왔어요. 그만큼 그들이 혼신을 담은 연기를 펼쳤다는 뜻이라, 아직도 생생하네요.
음향디자이너 권도경
초연 마지막 날 공연은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류정한 배우의 마지막 공연에서 메인 시스템 전기가 다운된 거예요. 2막 ‘머더, 머더’ 중이었는데, 음악이랑 마이크 소리가 안 나와서 류정한 배우가 라이브로 노래를 끝냈어요. 전기가 허술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누가 밟아서 캡이 빠져버린 거예요. 위험한 순간이었고, 제일 큰 사고였죠. 결국 무대감독이 관객들에게 공연을 잠깐 멈추겠다고 공지를 하고, 10분 정도 수습에 들어갔죠. 사고 원인을 찾고 조치를 취한 뒤, 다시 ‘머더, 머더’ 장면을 새로 시작했어요 마지막 공연을 깔끔하게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그 일 때문에 아직도 류정한 배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 저녁 조승우 배우의 마지막 공연에서 또 사고가 터졌어요. 1막 ‘얼라이브 2’에서, 주교가 불을 뿜어야 하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라고요. 스태프가 미리 밸브를 열어 놓지 않은 거죠. 앞 공연에서 사고가 나서 인지, 다들 넋이 나갔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또 한 번 사고가 나는 바람에 류정한 배우에게 조금 덜 미안해졌죠. (웃음) 지금에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아찔한 사고였어요. 초연의 마지막 공연을 너무 화려하게 보낸 거 같아요. 이렇게 한 작품이 10년 동안 이어진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초연부터 함께 해온 스태프 입장에서,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죠.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을 시점으로 음향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자리를 다지는 기회도 얻었거든요. <지킬 앤 하이드>! 앞으로 10년만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4호 2014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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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 스태프의 잊지 못할 순간들 [No.134]
정리 | 나윤정 2014-12-10 7,959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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