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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레베카> 나·댄버스 부인 [No.133]

글 |송준호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4-11-14 5,716
한 집안 세 여자의 숨막히는 대결

대프니 듀 모리에의 원작 소설과 심리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를  효과적으로 무대에 옮긴 <레베카>는 지난해 초연 당시 댄버스 부인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연에서는 주연이면서도 이 ‘우먼 인 블랙’의 카리스마에 눌렸던 ‘나’가  한층 당당해진 모습으로 바뀐 점이 눈길을 끈다. 덕분에 레베카의 망령과 그 대리자인 댄버스 부인과의 처절한 사투는 한층 더 생생해졌다.  또 옥주현, 신영숙, 임혜영 등 초연 멤버와 리사와 오소연 등 새로 가세한 멤버들의 다른 노선도 여전히 흥미를 자아낸다. 



나  임혜영 vs 오소연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초연에 비해 ‘나’가 전반적으로 당차게 변했다는 점이다. 초연 <레베카>는 온전히 댄버스 부인을 위한 잔치였다. 막심도, ‘나’도, 댄버스 부인의 압도적인 위용에 밀려 존재감이 옅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냥 심약하고 여린 ‘나’가 아니다. 사랑하는 막심을 지키기 위해 중간부터 강해지는 설정이 있지만, 캐릭터 자체도 초연에 비해 심지가 굳어진 변화가 있다. 

아담한 체구와 여린 목소리의 임혜영은 초연 당시 두 댄버스 부인의 등쌀을 힘겹게 버텨냈다. 이번에도 예의 소녀 같은 음색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내면 연기는 그대로다. 1막 초반부의 ‘나’는 귀족 문화에 익숙지 않은 서민 계층의 촌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는데, 임혜영은 이를 어색한 가발과 허둥지둥하는 몸짓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맨덜리 저택에 들어간 이후까지 느껴지는 주눅은 임혜영의 ‘나’만이 지닌 것이다.    



오소연은 임혜영에 비해 더 당찬 느낌의 ‘나’다. 임혜영이 일관되게 청순가련 노선이라면, 오소연은 처음부터 캐릭터도 음색도 강하고 씩씩하다. 비록 신분은 서민이지만 귀족들의 위세에 눌리지 않고 임혜영처럼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임혜영이 극의 무게중심을 2막 이후부터 서서히 자기 쪽으로 가져오는 전략을 취한다면, 오소연은 <레베카>가 ‘나’의 성장담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실은 듯 처음부터 단단한 자아를 드러낸다. 

두 사람의 차이는 심리 변화의 시점과 댄버스 부인과의 기 싸움에서 두드러진다. 임혜영은 막심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내 남편은 내가 지킨다’라는 결심과 함께 댄버스 부인과 대등하게 맞서는 인상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베아트리체와 함께 부르는 ‘여자들만의 힘’은 ‘나 시즌 2’를 본격적으로 선언하는 대목이다. 반면 오소연은 이미 보트 보관소에서 막심을 든든하게 위로하고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신에서는 심지어 댄버스 부인들을 압도하는 기세를 과시한다. 옥주현과 리사의 댄버스 부인은 여기서 ‘나’의 기에 눌려 ‘멘붕’에 빠진다. 가장 강한 신영숙 댄버스 부인도 이런 당돌함에 당황해 가까스로 균형을 맞출 정도다. 

두 사람은 댄버스 부인과의 조합에 따라 인상적인 시너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겁도 많고 부서질 것처럼 약해 보이는 임혜영의 ‘나’는 거친 신영숙이나 극단적인 리사보다는 다소 신경질적인 옥주현과 합이 잘 맞는다. 다부진 오소연의 ‘나’는 강한 라인의 신영숙과는 위태로운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리사에게는 중반부터 우위를 점하는 등 달라진 ‘나’를 잘 표현한다.  

댄버스 부인  신영숙 vs 옥주현 vs 리사                  
                                                                           
맨덜리 저택에서 레베카는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같은 존재이다. 누군가는 신처럼 그를 추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두려워한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맨덜리 저택에서는 댄버스 부인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이 저택의 집사가 아니라 레베카만을 위한 집사이자 대리인이다. 



세 댄버스 부인의 차이는 바로 그 레베카에 대한 감정선에 따라 구분된다. 선이 굵고 거친 신영숙의 댄버스 부인은 보모의 느낌에 가깝다. 영화 <미저리>의 애니(캐시 베이츠 분)가 연상되기도 한다. 신영숙은 레베카가 구축해놓은 맨덜리 저택의 규율을 총괄하고 이를 대신하는 ‘섭정 모후’ 같다. 그녀는 레베카의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자신이 그 유지를 이어받은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 앞에서 징징대는 ‘나’를 향해 “감히 너 따위가”라고 일갈할 때의 신영숙은 레베카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반항하는 것을 용납 못하는 것 같다. 예의 ‘레베카’를 부르며 ‘나’를 위협할 때는 망치로 내려칠 것 같은 위압감이 있다. 특히 고음을 낼 때 얼굴을 찡그리는 그녀만의 표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준다. 



반면 옥주현은 더 예민하고 섬세한 댄버스 부인이다. 그리고 레베카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강하다. 레베카가 사라진 지금,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 월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레베카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강박증 때문에 히스테리컬한 면모를 드러낸다. ‘나’가 친근감을 표하고자 댄버스 부인의 팔을 잡을 때, 옥주현은 다른 두 캐스트와 달리 바로 뿌리치지 않고 상대를 경멸하듯 1초간 바라보다 팔을 뺀다. 이는 레베카를 대신해 ‘미세스 드 윈터’가 된 ‘나’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녀가 종종 레베카의 화신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레베카는 막심의 표현을 빌리면 ‘칼날 같은 미소’를 지닌 여자인데,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이 보여주는 미소가 바로 그것을 닮았다. 옥주현은 여기서 다소 과장된 저음으로 댄버스 부인의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가끔 톤이 높아질 때나 레베카와의 한때를 회상하는 순간은 어김없이 예의 ‘칼날 같은’ 눈빛을 보여준다. 

 

처음 댄버스 부인을 맡은 리사는 두 사람에 비해 극단적인 성격을 표현한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셋 중 가장 단호하고 표독스럽다. 기존의 캐스트들과 확연한 차이를 두고 싶었을까. 턱을 들고 도도하게 걷는 모습이나 고개를 절도 있게 휙휙 돌리는 동작은 다소 경직돼 보이기도 한다. 다른 두 댄버스 부인이 맨덜리 저택을 지배하는 존재 같다면, 리사의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모든 것을 혼자 광적으로 추앙하고 숭배하는 ‘편집광’에 가깝다. 이런 광기는 삼백안과 희번덕거리는 눈빛에서 적절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신은 셋 중 제일 약하다.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무너진 순간 그녀를 지탱해온 정신은 속절없이 주저앉고 만다. 그래서 다른 캐스트와 달리 마지막의 광녀 모드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리사의 댄버스 부인은 한편으론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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