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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GALLERY] <레베카> 보이지 않는 진실 [No.133]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정리|나윤정 2014-11-14 4,396

“기억을 병 속에 담아두는 발명품이 나온다면 좋겠어요. 향기를 담아두는 향수병처럼 말이에요.”


내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기억은 색이 바라지도, 희미해지지도 않겠지요. 언제든 원하면 병마개를 열고 기억을 생생한 현실로 만드는 거예요.”
나는 그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앞만 주시했다. 
“삶의 어떤 순간을 병에 담아두고 싶은 거죠?”
그가 물었다. 놀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이렇게 대답을 시작했다가 무심코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을 담아두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요.”



댄버스 부인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어느덧 속삭임에 가깝게 낮아졌다. 
“때로 이 복도를 따라 걷노라면 
그분께서 바로 뒤에서 따라오신다는 기분이 들죠.
그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저는 그 발소리를 확실히 알고 틀림없이 구분해낸답니다.” 

댄버스 부인은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잠시 말을 멈추더니 느릿느릿 덧붙였다. 
“어쩌면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보고 말을 걸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죽은 사람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와 산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레베카, 레베카, 늘 레베카가 있다. 
집 안을 걸을 때나, 어딘가에 앉을 때나,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꿈꿀 때조차도 레베카를 만나게 된다. 
레베카의 겉모습까지 알게 되었다. 
길고 가는 다리, 
작고 좁은 발, 
나보다 넓은 어깨, 
능숙하게 움직이는 두 손. 
레베카는 그 손으로 꽃꽂이를 하고 모형 배를 만들고 
시집 속표지에 ‘맥스에게 레베카로부터’라고 썼다. 
계란형의 작은 얼굴에 피부는 하얗고 
검은 머리카락이 드리워졌다고 했지. 
좋아하는 향수 냄새도 안다. 
그 웃음소리와 미소도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틈에 있어도 그 목소리를 구별해낼 것 같다. 
레베카, 레베카. 어느 한 순간도 레베카를 벗어날 수 없다. 

 

더 이상 나는 없다. 우리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함께 맞서리라. 
이 어려움을 그와 내가 함께 이겨나가리라...
그 누구든 우리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우리의 행복은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다. 부끄럽지도 않다.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막심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싸울 것이다...
레베카는 이긴 것이 아니다. 레베카는 졌다. 


대프니 듀 모리에 저 『레베카』 
(현대문학, 2013, 이상원 역)에서 발췌


서스펜스의 여왕으로 칭송되는 영국의 여류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다섯 번째 소설. 
1938년 발간 직후 바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명실상부 작가의 대표작. 
언뜻 보면 전형적인 연애소설 같지만, 맨덜리 저택과 레베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치밀한 플롯으로 구성, 고딕 색채를 더해 독특한 매력을 전한다. 
특히 막심과의 만남부터 레베카란 벽을 이겨내기까지,  세세히 묘사되는 나의 심리 변화를 무대와 비교해보는 것이 특별한 재미를 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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