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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ORUM]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실험 <더 데빌> [No.133]

사진제공 |알앤디웍스 정리|안세영 2014-11-06 5,268
이지나 연출의 창작뮤지컬 <더 데빌>이 개막과 동시에  언론과 마니아 관객 사이에서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괴작이다, 수작이다, 엇갈린 평가와 함께 작품 내용에 대한  해석도 각양각색이다.
비평을 공부하는 ‘더뮤지컬 리뷰어’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제작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 참여자
알앤디웍스 오훈식 대표
설앤컴퍼니 이혁찬 이사
더뮤지컬 박병성 편집장 
더뮤지컬 리뷰어  (강지나, 권선영, 박초희, 이우정, 최영현)



<더 데빌>은 쇼 뮤지컬인가

박병성  우선 각자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전체적인 소감부터 얘기해볼까요.
권선영  색다른 시도는 좋았지만 창작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전달이 되었나 하는 부분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봐요.
최영현  저 역시 작품의 방향성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과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음악과 무대 연출, 조명은 기존의 창작뮤지컬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박초희  내용을 다 이해 못 해도 보는 동안 눈이 즐거워서 좋았어요. 비슷비슷한 뮤지컬 작품에 지루하던 차였는데, 처음 보는 무대 미학이 펼쳐지니까 집중해서 봤어요. 
강지나  줄거리는 불충분하지만 무대나 음악 면에서 장면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이진 않지만 이런 특색 있는 뮤지컬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다만 이렇다 할 에피소드 없이 그레첸은 계속 희생당하고, X는 계속 선악을 오가기만 하니까 나중에는 좀 지루하더라고요.
이우정  저는 이 작품이 이미지로 밀어붙일 것인가, 서사를 따라갈 것인가 그 노선을 정확하게 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번 볼수록 메시지가 더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뮤지컬을 여러 번 볼 것을 계산하고 만들지는 않잖아요.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방편을 찾아야할 것 같아요.
박병성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이 서사를 따라가는 뮤지컬이냐, 아니면 큰 테마 안에서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뮤지컬이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아요. 혹자는 이 작품을 두고 쇼 뮤지컬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제작자로서 동의하시나요?
오훈식  그렇죠. 말씀하신 것처럼 줄거리와 대사보다는 이미지 위주의 뮤지컬이에요. 조명 역시 그런 쇼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고요. 
박병성  노래도 기존의 뮤지컬 노래하고는 굉장히 달랐어요. 드라마가 전개될 때 언제 노래가 나왔는지 모르게 넘어가야 잘 만든 뮤지컬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더 데빌>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드라마적 연속성보다는 각각의 노래의 독립성이 높았어요. 그 노래 하나만 들어도 듣는 재미가 있을 정도로 완결성이 높고, 그래서 노래를 즐겼을 때 더 재미가 있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쇼 뮤지컬이란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혁찬  쇼 뮤지컬을 보러가는 관객들은 드라마보다 쇼잉을 분명히 해줄 것을 원하잖아요. 지금까지 봤던 쇼 뮤지컬이 화려한 군무와 무대 세트로 쇼잉을 했다면 이 작품은 이미지와 노래로서 쇼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박초희  쇼 뮤지컬이 드라마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보통 그런 쇼 뮤지컬들은 플롯이 굉장히 쉬워요. 내용이 뻔한 걸 전제로 깔고 그 위에서 즐길 걸 즐기는 거지만, <더 데빌> 같은 경우는 플롯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롯을 따라가다 쇼잉을 놓친단 말이죠.
박병성  동감이에요. 이미지와 노래만 즐기기에는 드라마가 상징하거나 은유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그걸 무시하고 쇼를 즐기기는 힘들죠. 결국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알려고 노력하게 만든다고 봐요. 
이혁찬  여타 쇼 뮤지컬과 달리 불친절하고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니까 쇼를 즐기기 힘들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브레히트의 경우도 관객이 무대와 거리를 갖고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방법으로 이것이 쇼라고 명시하는 장치를 심어놓거든요. 제가 <더 데빌>을 쇼 뮤지컬이라고 보는 지점도 이 작품이 드라마와 캐릭터에 감정이입하지 말라는 장치를 이미 심어두고 있다는 부분이에요. 밴드와 코러스, 그리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X가 여긴 쇼를 하는 무대라고 이미 선언하고 있거든요. 

  

X는 그저 악마인가

박병성  이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X라는 인물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X를 어떤 존재로 파악하셨나요?
박초희  사실 존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선한 그레첸과 악한 X가 딱 대비가 되어야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데, X가 내레이터 역할도 같이 하더라고요. 앞서 얘기한 쇼 뮤지컬적 요소였는지 모르겠지만, X가 너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니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강지나  저는 X가 내레이터라는 생각은 못했고 오히려 코러스가 내레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파악한 X는 선악을 넘나드는, 인간이 원하면 악마든 신이든 될 수 있는 존재예요. 존이 욕망을 쫓으면 악마로 나오는 거고, 그레첸이 구원을 원하면 신으로 나오는 식으로. 거기 맞춰서 의상도 검은 옷, 흰 옷으로 바뀌잖아요. 그리고 신으로 나올 때는 꼭 발자국 소리가 나와요. 너무 뻔한 장치라는 생각은 들지만 구분은 됐어요.
이우정  제가 생각한 X는 존 파우스트 내면의 자아였어요. X를 존과 동일인물이라고 본다면 그레첸이 파우스트로 인해 파멸하는 구조가 원작과 비슷하게 맞물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영현  저는 혼합된 의견이에요. 1막에서는 선과 악,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존재인데, 2막에서는 파우스트의 두 번째 자아 같은 느낌을 확실히 받았거든요. 겉모습은 X지만 그의 행동은 파우스트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 인물이 대체 어떤 때는 선의 역할이고, 어떤 때는 악의 역할이며, 또 어떤 때는 존의 내면인지 그 변화의 기준점이 잘 보이지 않아요. 
박병성  같은 의견인데, X가 1막에서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신도 됐다가 악마도 되는 그런 존재였던 반면, 2막에서는 존 내면의 선과 악의 측면으로 보였거든요. 1막과 2막의 X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하니까 이게 <파우스트>를 하는 건지, <지킬 앤 하이드>를 하는 건지 헷갈리는 거예요. 
오훈식  사실 <더 데빌>의 X를 원작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대비시키면 잘 맞지 않아요. 원래 컨셉을 말씀드리자면 검은 옷의 X가 존의 욕망을, 흰 옷의 X가 그레첸의 양심을 표현하고 있어요. 
강지나  그럼 어쨌든 X는 인간의 마음이 투영된 허상인 거잖아요. 실제로 하고 싶은 얘기는 인간의 욕망과 선택에 대한 거고요. 그런데 신, 구원, 죄악에 대한 이야기에 가려서 그런 주제가 잘 와 닿지 않아요.
이혁찬  <파우스트> 자체가 누군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아 타인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성경적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더 데빌>도 그 구조를 이어받고 있고요. 재밌는 건 이 작품이 성경의 구조를 취하면서 불교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거예요. 선이든 악이든 그것은 모두 네 마음에 달렸다는 불교에서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내세우고 있는 거죠. ‘그 이름’에서 얘기하는 게 그거잖아요. 
강지나  그런데 그 노래를 할 때 X가 흰 옷을 입고 있어요. 마치 선한 신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때 조명도 가장 하얗고 성스럽게 비치는데, 노래까지 가스펠 같은 노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찬송가처럼 들리는 거예요. ‘나는 신인데,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다만 네 마음속에 선함이 있으면 돼.’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거죠. 
최영현  저도 흰 옷의 X가 노래를 할 때마다 찬양집회 리더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이 작품의 질문이 ‘인간의 선함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결말도 그레첸이 끝까지 선함을 유지함으로써 존을 구원하는 결말로 받아들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그레첸의 품에 안겨있는 존의 모습은 피에타 상을 연상시켜요. 그래서 더 주제가 종교적으로 다가왔어요.
오훈식  말씀하신 것처럼 멜로디나 가사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많이 차용하지만, 동시에 록음악이나 유일신을 부정하는 결론 등으로 한 번 뒤틀어 놓았어요. 메시지와 보이는 이미지가 명확하게 안 맞아서 의도가 쉽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네요.
박병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그 다양한 해석들이 모순되거나 상충되지는 않거든요. <더 데빌>에서는 이렇게 해석한 것과 저렇게 해석한 것이 상충되는 게 있어요. 



그레첸은 왜 학대받는가

박병성  존과 X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얘기했으니, 그레첸의 역할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선함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인물, 구원자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권선영  저는 그레첸이 인간 같지가 않았어요. 존은 인간으로서 욕망하고 지향하는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레첸은 무조건 신을 향해 있을 뿐이니까, X나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붕 떠있는 인물로 보이는 거예요. 강간 장면도 꼭 저렇게 거칠게 표현해야 했는지 의문이고요. 여성 캐릭터를 너무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느낌이 들어요.  
박초희  저는 그레첸이 선의 상징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굳이 인간적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액받이 무녀’ 같은 존재인 거죠. 하지만 학대 장면이 과하다는 것에는 저도 공감해요. 존이 X와 거래한 이후 타락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극 속에서 존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방법이 오직 그레첸에 대한 학대밖에 없어요. 
박병성  그 학대도 악마 X가 하는 거지, 존이 했다고 생각하지 않다가, 2막에 가서야 1막의 X의 행동이 존의 악마적인 내면이 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아차렸죠. 
박초희  맞아요. 그래서 1막의 장면만 봤을 때는 존이 뭘 어쨌다는 건지 알 수가 없고, 그레첸 혼자 이유 없이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여요. 
오훈식  존의 타락을 보여주는 포인트들이 있긴 해요. 마약을 하는 제스처라든지. 그런데 그게 관객들에게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요.
박병성  그런데 저는 강간이나 학대 장면들이 그렇게 가학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어쩌면 제가 남자라서 불편함을 덜 느꼈을지도 모르지만요.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매 맞는 아내지만, 이건 상징적인 이야기잖아요. 성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존의 옆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이우정  저도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구원을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고난의 단계로 받아들였지, 여성에 국한된 학대로 좁혀서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무대와 음악은 뮤지컬다운가

박병성  그럼 이제 드라마나 캐릭터를 벗어나 이미지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가 보죠. 무대나 조명은 어떻게 보셨나요. 
박초희  앞에서도 말했지만 뮤지컬 무대에서 이렇게 레이저처럼 엮인 조명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줄거리를 떠나 외국어로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도 두 시간 반 동안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쇼라고 생각해요. 
이우정  그런데 그 조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조명에 임팩트를 더 부여하고자 했다면, 정말 중요한 장면에만 쓰는 방식을 택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명이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게 모호해 보였던 이유는, 그 강한 조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사용했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권선영  저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방식에 있어서 너무 조명에만 힘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는 지나치게 변화가 없고, 등퇴장선도 뻔히 읽히고, 계속 조명에서만 재미를 찾아야 하는 구조였어요.
박초희  저는 조명이 과한데 무대까지 과했다면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화려한 조명이 살려면 나머지는 당연히 심플해야 한다고 봐요. 
오훈식  제작자 입장에서는 항상 선택과 집중의 문제를 고민하게 돼요. 이 작품에서 유독 조명을 강조한 것은 조명이야말로 빠른 록 음악과 쇼를 보여주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또 무대는 작품 성격상 실제 집처럼 꾸미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무대로 현대 사회의 차갑고 인위적인 구조물 안에 서있는 분위기를 내려고 했죠. 
박병성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일반적인 가정사의 비극은 아니잖아요.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지금처럼 추상적인 무대나 조명은 잘 어울렸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어떤가요? 저는 말했듯이 기존 뮤지컬 음악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아리아의 연속이라는 느낌이에요. 그 만큼 노래 하나하나를 듣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강지나  특히 음악과 조명의 혼연일체가 각각을 독립된 작품으로 봐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고 봐요.
박초희  저는 상반되는 음악 장르인 록과 가스펠을 위화감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았어요.
강지나  중간에 X가 트로트 같은 노래도 부르는데, 그런 게 은근히 잘 어우러져요. 노래가 좋아도 여러 장르를 쓰면 산만할 수 있는데, <더 데빌>은 그런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오훈식  작곡가인 우디 박과 이지혜의 음악 스타일 자체가 원래 굉장히 달라요. 그래서 노파심도 있었어요. 뮤지컬을 두 명의 작곡가가 함께 만든다는 것부터 드문 일이고, 불협화음의 위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더 데빌>에서는 우디 박과 이지혜의 음악이 부딪치는 것 같으면서도 조화로워요. 덕분에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양면성과 갈등이 더 잘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최영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사 전달이 안 된다는 거예요. 밴드의 음악도 강하고 가사 자체도 모호해서 객석에서는 알아듣기가 힘들어요. 
박병성  사실 알아들어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진 않아요. 익숙한 표현이면 일부만 들려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끼워 맞출 수가 있는데, 낯선 단어나 성경 구절을 인용한 가사가 많으니까 집중해서 들어도 의미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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