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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드라큘라> 드라큘라 [No.132]

글 |송준호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2014-11-04 6,298
사랑과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해석

브램 스토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드라큘라>는 ‘포스트 <지킬 앤 하이드>’라는 원래의 야심을 내비치듯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와 감성적인 곡들에 기대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류정한과 김준수라는 특급 스타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경력도 출신도 다른 두 사람이 표현하는 드라큘라의 개성과 존재감에 따라 익숙한 줄거리는 다른 정서를 뿜어낸다.  



불운한 로맨티스트, 류정한

드라큘라는 악마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신을 원망해 스스로 악귀가 됐고, 긴 시간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다. 극단적 로맨티시즘의 정수가 담긴 인물인 셈이다. 결말의 개연성에 관해 호불호가 갈리는 이번 <드라큘라>는 이런 ‘묻지마 낭만주의’를 전제해야 공감이 가능해진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경계에 선 자의 특징은 ‘일그러짐’이다. 그리고 류정한은 이런 일그러짐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다. ‘팬텀’, ‘하이드’, ‘시드니 칼튼’ 등 그가 거쳐온 많은 캐릭터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고, 결국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근본적으로 외롭지만 그 운명을 안은 채 끝내 홀로 떠나는 자들이다. 그래서 임자 있는 여자를 흠모해 미나와 조나단 커플 사이를 방해하는 그의 드라큘라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기차역 신에서 미나에게 하는 대사 “지금의 전 더 늙고, 외롭고, 더 못돼졌죠”는 그런 운명을 환기시키며 애잔함을 자아낸다. 

류정한 드라큘라의 강점은 안정감이다. 드라큘라 캐릭터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비주얼은 물론, 400년을 산 존재다운 중후한 목소리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런 비주얼과 음색의 연륜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감성적인 음악과도 잘 어울린다. 1막 초반부의 과한 노인 분장도 그의 연륜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표현된다. 이 작품에서 드라큘라는 붉은 컬러 렌즈와 탈색한 헤어스타일로 관객의 시선을 끌지만,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역시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초반부터 류정한의 드라큘라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의 회한과, 비밀을 감춘 듯한 음침함을 노련하게 보여준다. 

드라큘라는 1막에서는 인간성보다 악마성이 두드러지고 2막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그 변화는 미나에 대한 감정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김준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 부분이다. 김준수의 드라큘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이질적인 존재를 보여준다면, 류정한은 ‘한때 인간이었던’ 드라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해석은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의 면모에 가까워지는 극 전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한다. 특히 미나와의 듀엣에서 그의 노래는 애절함과 처연함, 허무함 등의 감정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흡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롯데를 흠모하는 베르테르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그런 류정한표 처절함의 최고봉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그의 드라큘라가 청승만 떠는 것은 아니다. 미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게 그는 냉혹한 드라큘라다. 그는 규칙을 정하고 규칙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미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반 헬싱 일당과의 대결 장면에서 그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이들을 압도하는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극마저 초월하는 존재, 김준수

포스터 이미지에서부터 컬러풀한 이미지를 강조했던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그 비주얼처럼 원색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 소설이 그랬듯 뮤지컬의 이야기 역시 사랑의 영속성과 죽음이라는 비극을 양대 축으로 한다. 각각 빨강과 검정으로 상징되는 이 두 요소는 ‘드라큘라’라는 아이콘의 의상이나 피, 조명 등으로 표현된다.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이런 분명한 색깔과 연결돼 있다. 각각의 장면에서 그는 중의적이지 않고 단선적이다. 분노할 땐 분노하고, 사랑을 갈망할 땐 한없이 애절하다. 그래서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강렬하게 뜨겁다. 때문에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김준수의 음색은 최적의 비애를 뿜어낸다. 이런 극단적인 감상주의는 언뜻 20대 젊은이의 사랑을 연상케 한다. 

<드라큘라>는 익숙한 스토리와 다소 서툰 전개 탓에 드라큘라의 출연 장면과 아닌 장면에서 몰입도의 차이가 크다. 렌필드를 제외하면 신 스틸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인물도 드라큘라밖에 없다. 드라큘라에 기대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확실한 자기 색깔이 필요하다. 불길한 그림자와 특유의 쇳소리로 첫 등장을 알리는 김준수는 이후 일관되게 감정 과잉의 발성을 고수하는데, 흥미롭게도 그것이 그의 고유한 캐릭터에 잘 녹아든다. ‘토드’라는 초현실적인 캐릭터에서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한 바 있는 김준수는 이 작품에서도 이런 다소 과장된 연기로 드라큘라를 표현한다. 

그가 자신의 성(城)에서 노인으로 등장하는 1막 초반부는 분장의 조악함과 실제 나이와의 위화감으로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잠시 후 ‘Fresh Blood’와 함께 ‘회춘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이는 가볍게 상쇄된다. 망토를 벗는 찰나에 젊은 드라큘라로 변신하는 이 장면은 온전히 김준수를 위한 것이다. 정돈 안 된 머리를 쓱 쓸어올리며 카리스마를 폭발시키는 이 순간의 김준수는 팬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는지 잘 알고 있는 팝스타다. 동시에 그런 압도적인 위용이 드라큘라 캐릭터의 존재감과 잘 맞아떨어진다. 허스키하고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는 이런 설정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류정한의 노선이 각 캐릭터들과 어우러지며 자연스러운 합을 만들어내는 서사적인 캐릭터라면,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개별 장면마다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도 이야기에서는 벗어나 있는 느낌을 준다. 마치 극 밖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인물 같다. 그의 드라큘라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타자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마지막까지도 선택의 칼자루는 그의 손안에 있다. 덕분에 반 헬싱 일당과의 대결 신이나 미나와의 교감 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마지막 등 모든 장면에서 그는 함께하면서도 그들의 공기에 섞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이질감은 그의 드라큘라를 돋보이게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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