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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대왕 [No.132]

글 |글|안세영 2014-11-04 5,416
위대한 학자이자 혁명가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대왕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세종대왕이다.
그 만큼 수많은 업적을 세운 왕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업적은 두말할 것 없이  훈민정음 창제일 것이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뜻을 전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을 만들었다 밝히고 있는 훈민정음의 서문은지금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세종이 글자를 창제한 이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이것이 다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개막하는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는  이 짤막한 서문 뒤에 숨은 치열했던 창제 과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명의 원작 소설과 TV 드라마로도 사랑받았던 <뿌리 깊은 나무>는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이지만, 
우리가 몰랐던 세종대왕의 진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흔히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들었거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고 세종이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말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까? 한글 창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집현전 학자는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을 포함한 7명. 이들은 세종의 명으로 한글의 원리와 용례를 해석한 『훈민정음해례본』과 한글 서적의 편찬 사업에 관여했을 뿐, 직접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실록은 ‘임금이 친히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훈민정음해례본』에도 ‘전하창제(殿下創制)’, 즉 전하가 직접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언뜻 봐서는 단순히 세종 때에 만들었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당대 제작된 다른 모든 서적과 과학 기기에는 참여 인사들의 이름이 일일이 명시되어 있다. 유독 훈민정음에만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세종 혼자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공표할 때까지 실록에 문자 창제에 관한 언급이 단 한 마디도 없다는 것 또한 한글 창제가 세종의 독자적인 프로젝트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당시는 임금의 공식적인 행동과 말이 모두 기록되던 시대다.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면 이것이 전혀 기록되지 않았을 리 없다. 이상으로 미루어보면 집현전 학자들조차 세종의 계획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훈민정음이 공표된 뒤, 부제학 최만리를 포함한 집현전 원로학자들은 집단으로 반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최만리는 ‘굳이 언문을 만들어야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재상에서 신하들까지 널리 상의한 후 행해야 할 것인데 갑자기 널리 펴려 하시니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다’며 세종의 독단적 행동을 힐난했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한글 창제를 비밀리에 홀로 진행했을까? 그 답은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최만리의 상소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최만리는 이 상소에서 한자가 아닌 다른 문자를 만들어 쓴다면 중국의 비난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임을 강조하였다. 당시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삶의 지표이자 국가 정치의 근간으로 삼고, 대국인 중국을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사대부가 한자를 익힌다는 것에는 이를 통해 중국의 예와 문물을 익힌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한 한자를 두고 따로 문자를 만들어 쓴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문자 생활은 사대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평민이나 천민까지 글을 알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사대부들은 이제껏 독점해온 학문적 권위를 잃고, 나아가 권력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최만리 등이 세종의 훈민정음을 거부한 데에는 이런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세종이라고 그런 현실을 모를 리 없었다. 만약 공식적으로 한글 창제를 진행하려 했다면, 시작도 전에 대신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고, 중국에서도 압력을 가해왔을 게 뻔하다. 결국 모든 문제를 예상한 세종이 고독한 비밀 작업으로 한글 창제를 이루어낸 게 아닐까 짐작된다. 

  

소설,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 <뿌리 깊은 나무>

이 같은 세종의 비밀스런 노력과 반대 세력의 대립에 ‘집현전 학자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극적 상상력을 가미해 탄생시킨 것이 소설 『뿌리 깊은 나무』다. 주인공은 허구적 인물인 겸사복(조선의 왕신친위군) 강채윤으로, 그가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방진, 음양오행과 얽힌 한글 창제의 원리와 새 문자로 새 시대를 열려 했던 세종의 뜻이 드러난다. 소설은 살해당한 학사들이 맡고 있던 임무를 통해 한글뿐 아니라 농사, 음악, 역사, 지리, 천문에 이르기까지 잡학으로만 치부됐던 실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 세종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 같은 혁신을 통해 세종이 꿈꾼 것은 중국의 문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조선이다.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현학과 이로운 기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소설 속 세종의 믿음이다. 
반면 원작 소설을 개작한 드라마에서는 중국의 존재감이 훨씬 미미하다. 드라마는 세종을 막아서는 반대 세력의 배후로 ‘밀본’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내세운다. ‘밀본’은 왕이 아닌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 체제를 꿈꾸는 비밀결사다. 세종과 밀본 모두 개혁을 꿈꾸지만, 밀본은 사대부가 힘을 갖는 세상을, 세종은 만백성이 힘을 갖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서로의 이상이 다르다. 밀본의 수장 정기준은 어리석은 백성에게 문자라는 무기를 쥐어주면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며, 따라서 현명한 사대부가 책임지고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밀본의 엘리트주의에 맞서 민중의 가능성을 믿으려는 드라마 속 세종에게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투사와 같은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
보다 생동감 넘치는 세종대왕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만의 특색이다. ‘지랄’, ‘우라질’ 같은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사는 세종은 흠잡을 데 없는 성군의 이미지 대신 솔직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보다 세종 스스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드라마는 소설에 없던 세자 시절의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세종이 아버지 태종에 맞서 백성을 위하는 군주, 폭력이 아닌 논리로 싸우는 군주라는 자신만의 통치관을 확립하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어린 시절 콤플렉스를 심어줬던 정기준과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 조력자가 죽을 때마다 자책감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외적 갈등 뿐 아니라 내적 한계를 극복하며 자신의 길로 나아가는 세종의 모습은 일종의 성장 드라마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떨까. 뮤지컬의 뼈대는 드라마가 아닌 원작 소설에 기초해 있다. ‘밀본’은 등장하지 않으며 채윤이 살인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이 극의 전개를 이끈다. 세종은 백성의 고통을 염려하고, 문자 창제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열린 사고의 왕이지만 육두문자 대신 군주의 근엄함을 유지했다. 반면 주인공 강채윤의 캐릭터는 소설보다 드라마와 유사하다. 넉살 좋은 성격, 그리고 어린 시절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고모로 인해 왕인 세종에게 원망을 품게 된다는 과거사는 드라마 속 강채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소설과 드라마, 뮤지컬 모두 한글 창제를 세종의 비밀스런 프로젝트로 다루고 있으며, 반대 세력과의 대결을 통해 한글에 담긴 세종의 애민정신과 개혁정신을 밝힌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맞서 싸운 것은 단순히 경학과 사대 관습에 젖은 사대부들이 아니라 낡은 시대 그 자체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세종의 이야기는 자애로운 왕일 뿐 아니라 천재적인 학자이자 정열적인 혁명가였던 세종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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