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뮤지컬에 눈을 뜨다 <금강>
“학창 시절 우연한 기회에 가극 <금강>에 참여했던 게,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꿨어요. 그 작품 때문에 오페라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진로를 바꾸게 됐거든요. 가극 팀에 합류하고 나서 뮤지컬 버전 <금강>이 6·15 공동선언 5주년 행사 공연으로 선정되면서, 저는 좀 특이하게 평양에서 뮤지컬 데뷔 무대를 갖게 됐어요. 그때 평양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굉장히 묘한 희열을 느꼈어요. 공연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금강>이 데뷔작인 게 더욱 감사한 이유는 김석만 선생님(한예종 연극원 교수)께 연기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석만 선생님께 직접 연기 지도를 받는 건 연극원 학생들도 쉽게 누릴 수 없는 기회였을 텐데 말이죠. 제 오랜 습관 중 하나가 매일 배우 노트를 쓰는 건데, 그것도 선생님께 배운 거예요. 연습 기간에, 그리고 또 공연 기간에 그날의 감상을 기록해 놓으면 제 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돼요.”
2007
인생의 작품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당시 이름 없는 신인 배우였던 제가 이런 대작의 주연을 맡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이 커다란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데는 꽤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어요. 뮤지컬 배우가 되겠노라 결심하고 나서 학과 교수님께 제 꿈을 말씀드렸더니, 뮤지컬 하는 후배를 찾아가 보라고 연락처를 주셨는데, 그분이 박용호 대표님이었어요. 이제 막 개업한 뮤지컬해븐의 사무실로 찾아가 제 출연작 <금강>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드리고 나온 게 대표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죠. 그런데 몇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대표님 생각이 퍼뜩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 공연 한번 보러오십사 연락을 드렸죠. 대표님이 공연을 보신 다음 날 <스위니 토드>를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게 됐고요. 마침 스위니 토드 역의 더블 캐스트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조폭 두목을 연기하는 걸 보시곤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드셨대요. <스위니 토드>는 언젠간 꼭 다시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2008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다 <이블데드>
“<스위니 토드>로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게 돼서 감사하게도 차기작으로 큰 작품 제의가 들어왔어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건 소극장 B급 호러물 <이블데드>였죠. 왜냐면 지금껏 출연했던 작품들과 다른 분위기의 공연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특히 <이블데드>는 코믹물이라는 점이 강하게 끌렸어요. 정말 자신 없는 춤도 열심히 춰보고 싶었고요. 나름의 뜻을 품고 출연한 <이블데드>에서 얻은 수확은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거예요. ‘연기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하는 생각에 <이블데드> 후로 한동안 소극장 작품만 출연했죠. 출연 배우 전원이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는 <씨 왓 아이 워너 씨>도 그래서 출연했던 거고요. 그다음 작품인 저의 첫 이인극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하고 첫 연극 <아일랜드>에서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웃음), 그때 소극장 공연에 연달아 출연했던 경험은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2009
오기로 소화한 최장기 공연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은 정말 모든 배우들이 다 오디션을 봤던 작품이잖아요? 제가 팬텀을 맡게 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던 탓에 합격 전화를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내부순환도로를 달리면서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연습이 시작되면서 고난이 시작됐어요. 제가 팬텀이라는 인물에서 제일 중요하게 본 것은 모성애 결핍인데, 이 설정이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든요. <오페라의 유령>은 워낙 장기 공연된 바이블이라 그에 맞게 공연해야 하죠. 하지만 끈질기게 제 뜻을 어필한 결과 끝내는 스태프들을 설득시켰어요. 공연 중에는 가면을 얼굴에 붙일 때 사용하는 강력접착제 때문에 피부 트러블이 생겨서 무척 고생했어요. <오페라의 유령> 초연부터 분장을 담당하신 밥 아저씨가 긴급 호출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죠. 결국 삭발까지 감행했지만 피부 트러블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때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장기 공연을 모두 소화한 건 스스로도 조금 뿌듯해요.”
2010
처음으로 찾아온 슬럼프 <영웅>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공연하기 수월했던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한두 편 꼽자면, <스위니 토드>하고 <영웅>이 비교적 수월하게 공연했던 작품이죠. 두 작품은 캐릭터 잡기가 쉬웠거든요. 뭐랄까, 그 인물에 쑥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영웅>은 음악 스타일도 제게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자다 일어나서도 바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요. 근데 <영웅>을 공연하던 때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슬럼프를 겪었던 때예요. 공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데뷔한 지 7년 정도 되니까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느꼈죠. 그 시기에 때마침 영화 <광해>에서 조연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조연출이 제 공연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3개월 촬영에 저는 총 10회 정도 촬영했는데, 야외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기분 전환이 확실히 됐죠.”
2012
인생의 배역 <서편제>
“제 이미지가 좀 중후한 편이잖아요? (웃음) 결코 실제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인상 때문에 데뷔 후 제 캐릭터의 평균 나이는 오십대였어요. 스물여섯의 나이에 <명성황후>에서 대원군을 맡기도 했죠.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멋모르고 덤빌 때라 오히려 과감하게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을 할수록 느낀 점은 스킬은 연륜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연기가 뭔지 조금씩 알아갈수록 노역을 맡는다는 게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지나 연출님이 <서편제>를 같이하자고 하셨을 때, 처음엔 고사했어요. 소리꾼 아버지 유봉 역을 잘해낼 자신이 없었죠. 근데 대본하고 음악을 받아보니 정말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이 작품을 향한 절실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서편제>로 분에 넘치는 큰 상을 받게 됐고요. <서편제>는 지금까지 제가 두 시즌을 반복해서 출연한 유일한 작품이에요. 그만큼 애착이 깊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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