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베스>는 사실상 저의 첫 번째 주연작이에요. 그 전에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던 건 관단체 작품이라 거의 아무도 못 봤으니까요. (웃음) <포기와 베스>의 이종우 연출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꽤나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배우로서의 철칙이 하나 생겼어요. 공연 기간에는 위험한 행동을 삼간다는 철칙. 제가 술을 마시면 기절하듯 자는 버릇이 있어서 ‘취침 김법래’라고 불리는데, <포기와 베스> 공연 기간에 술을 마시다가 깜빡 잠드는 바람에 손가락이 부러졌거든요. 그땐 원캐스트로 공연하던 시절이라, 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고 공연해야 했죠. 그날 이후로는 부상의 위험이 있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답니다.”
가장 오래 마음에 품었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초연에 이어서 바로 다음 시즌도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만 해도 제가 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작품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처음에 맡았던 역은 베르테르였어요. 그러다 그 공연이 아예 취소되면서 나중에 알베르트를 맡게 된 거였는데,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알베르트로 많은 팬이 생겼으니까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박카스를 집에 쌓아놓고 먹었죠. (웃음)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듀엣곡을 처음 받았을 때예요. 연습실에서 그 노래를 듣고 모든 배우가 울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네요.
인생의 고비 <브로드웨이 42번가>
“그때의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2005년 <브로드웨이 42번가>
(극단 대중 제작) 출연 당시, 개런티 미지급에 대한 항의로 공연 당일 무대에 서길 거부했던 적이 있어요. 결국 그날 공연은 취소됐고, 그 사건으로 전 9시 뉴스를 장식하게 됐죠. 구차한 변명 같지만, 저 혼자 계획한 일은 아니었는데, 결과는 혼자 감당해야 했어요. 그 후로 한동안 일이 없었죠. 그런데 제가 프로듀서라도 저를 쓰기 싫었을 거예요. 그때 심한 우울증을 겪었어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요.”
노력에 대한 보상 <노트르담 드 파리>
“개인적으로 뜻깊은 작품은 아무래도 제게 첫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노트르담 드 파리>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그해의 남우주연상, 제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때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대극장이라 객석에서 표정이 잘 안 보일 텐데, 입술 모양까지 신경 쓰면서 콰지모도의 작은 부분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죠. 연출가 웨인 폭스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너무 애써서 그랬는지 몰라도, 웨인이 나중엔 지금까지 ‘노담’이 공연됐던 10여 개국의 콰지모도들 중에서 제가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진심인지, 빈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 덕분에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다신 경험 못할 팀워크 <삼총사>
“<삼총사>가 공연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포르토스는 나한테 딱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작사에게 <삼총사>를 하고 싶다고 어필했더니, 안 그래도 왕용범 연출이 저를 캐스팅하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출연했던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고선 포르토스에 어울리겠단 생각을 했대요. 배우로서 무척 기쁜 일이었죠. 그 작품은 멤버들끼리 형제처럼 지낼 정도로 팀워크가 좋아서 정말 행복하게 공연했어요. 마치 놀면서 돈 버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지금도 가끔 날씨 좋은 날에는 초연 배우들하고 평생 <삼총사>
나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타국에서 시작된 제2의 인생 <잭 더 리퍼>
“일본에서 <잭 더 리퍼> 공연을 마치고 밖에 나갔더니, 관객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보무래 상’을 외쳐요. 모든 배우들이 깜짝 놀랐죠. 저도 그런 반응이 하도 신기해서 제작 팀에게 제가 왜 인기가 있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일본에는 저 같은 목소리의 배우가 없대요. 그 말에 내심 기뻤어요. 사실 제가 국내에서 팬층이 두터운 배우가 아니라 단독 콘서트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일본에서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여는 기회까지 얻게 됐죠.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신기하고 무척 감사했어요. 무엇보다 콘서트에서 지금껏 불러보고 싶었던 뮤지컬 넘버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죠.”
신선한 경험 <보니 앤 클라이드>
“지난해 초연에선 보니를 짝사랑하는 경찰관 ‘테드’였는데, 이번 재공연에서는 ‘벅’을 맡게 됐죠. 벅은 클라이드의 형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테드라는 역할이 더 좋았지만, 제작감독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제가 보니 역의 배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요. 어쩌면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테드’에서 ‘벅’으로 마음을 움직인 건, 제작 팀이 제가 벅을 맡았으면 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점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저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어쨌든 <보니 앤 클라이드>를 통해 한 작품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9호 2014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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