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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2] <노트르담 드 파리>의 전동석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장소협찬|at (02)3477-0720 2009-10-12 7,655

 

누구와도 같지 않은 시작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예쁜 목소리를 가진 성가대 소년이 제대로 음악을 배워보라는 지휘자 선생님의 조언을 계기로 무대 위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국 뮤지컬 계에서는 꽤 전형적인 입문담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커튼콜 때 무반주로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의 첫 소절을 들으면서 그대로 그레고리안 찬트가 이어져도 위화감이 없겠다 싶었던 전동석 역시 그렇게 성악 레슨을 시작했다.


충북예고를 거쳐 한예종에 진학하면서 꾸준히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워오던 그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입대를 하면서 뮤지컬 배우라는 닮은 듯 전혀 다른 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뮤지컬에 대해 알아갈 때는 좋은 솔로곡이 있는 작품부터 접했는데 그중에서도 애착을 갖고 있는 곡은 <갬블러>의 ‘골든 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이다. 병영 내 행사와 경연대회에서 이 세 곡의 뮤지컬 넘버를 자유곡으로 불러서 세 번의 포상 휴가를 다녀온 흐뭇한 추억도 있다.

 

그는 제대 후 경험 삼아 도전한 생애 첫 뮤지컬 오디션에서 쉽지 않은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와 ‘달’을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여유로움으로 심사자들을 매료시켰고, 가장 경쟁률이 높은 역에 만장일치로 낙점되었다. 궁상맞고 수다스런 방랑자에서부터 신비로운 음유시인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랭구아르가 그에게 맡겨진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재학중’이라는 한줄 이력밖에 없는 프로필은 좋은 자질을 가진 신인들을 과감하게 발탁해온 한국판 <노트르담 드 파리>의 전례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물두 살, 연기로는 무대 경험이 전무한 성악도의 첫 뮤지컬 공연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서울공연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관객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를 때는 정말로 너무 떨리는데, 그 떨림이 좋다’는 이 신출내기 배우에게 이전까지 무대는 소리를 키우기 위한 음향장치의 도움 없이 자기 몸을 악기처럼 써서 노래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처음 마이크를 찰 때는 왠지 기분이 묘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마이크를 쓰지 않고 노래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제부터 다른 길로 들어선다는 게 그때 실감이 되더라고요.”

 

호리호리한 체형과 단정한 용모에 어울리는 미성을 가진 그가 장중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의 열렬한 팬이고,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정의로운 로드리고 역을 꿈꿔왔다는 것이 의외다. “무거운 작품들을 좋아했어요. 소리도 자연히 그 음악들처럼 무거웠는데 군대에서 많이 바뀌었죠. 군악대가 아니라 일반 보병으로 간 게 오히려 득이 되었어요. CCM이나 뮤지컬 넘버들을 부르면서 과하게 들어갔던 힘이 빠지고 좀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중에 오페라를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리는 동기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내 길은 아니니까.’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발성법을 익히는 것이 바닥에 그어놓은 선 하나를 넘듯 간단한 일일 리 없다. 처음 연습을 시작한 후 한 달 동안 편도선에서 고름을 세 번이나 짜내야 했을 정도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그 결과 얻은 것들은 노래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뮤지컬 곡들을 부를 때는요. 소리를 낼 때 굉장히 행복해요.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감정이 차오르는 황홀함. 그런 게 있어요. 자유롭고, 편해요.”


‘기왕 해야 하는 거면 확실히 겪어보자’는 성격이라서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했다가 ‘나는 누구고 왜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는데 계급이 올라가면서 그 고민들은 그냥 잊게 됐다면서 웃는, 좀 별난 데가 있지만 어쨌든 ‘보통 청년’인 그에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공간으로서 무대는 여전히 필사적이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세계이다. “같이 무대에 서는 분들의 기운을 잘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제가 아직 경험이 적으니까 움츠러들게 되나 봐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학교에서는 그냥 서로 잘했다는 이야기만 하고 지나가는, 진짜 충고 같은 건 안 해주는 분위기였으니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좋아요.”

 

 ‘숙명이여(아나키아)’를 부를 때 프롤로 역의 서범석을 보면 거기 무대 밖의 서범석이라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프롤로만 남아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며 경이로워하는 이 신예는 무대에서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자기 자신과 극중 인물 사이에서 혼동을 하게 된다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사실 ‘발다무르’가 제일 어려워요. 제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장면인데 댄서 분들이 연습 때보다 무대에서 더 열정적으로 춤을 추시니까 당황하게 돼서…” 딴에는 한다고 하는데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네가 누나들에게 잡아먹히는 장면 같다’는 핀잔을 들어서 고민이다. 하지만 ‘미치광이들의 왕’의 간단한 안무를 위해 특별 레슨을 해준 무용과 선배들이 했던 말처럼 ‘뭐 조금씩 발전할거니까 괜찮아’라고 믿는 수밖에.

 

가을이 되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잡아놓지 않았다. 당장은 다음 무대만을 준비하기에도 벅차고, 그의 뮤지컬 데뷔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학교 내의 분위기도 감당해야할 과제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전동석은 그랭구아르로 무대 위에 서기까지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말한 후에 덧붙였다. “그러니까, 어쨌든 이곳에서 제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어요.”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둘이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에서 첫 걸음을 뗀 청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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