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의 매력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으로 처음 뮤지컬 작곡에 도전한 윤일상 작곡가. 그가 들려주는 <서편제> 넘버 뒤 숨은 이야기들이다.
<서편제>로 처음 뮤지컬 작곡에 도전하게 됐어요. 당시엔 주제넘게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 이상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그랬더니 오히려 악상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데드라인이 지났는데도 음을 하나도 못썼죠.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의 유령> 초연 멤버들이 다시 모여 공연하는 영상을 보게 됐어요. 그들 스스로가 굉장히 감동스러워 하더라고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죠. 언젠가 우리 작품도 저런 날이 오지 않을까? 어떤 작품이나 다 초연이 있었을 텐데, 당시 그 무대를 만든 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때 생각을 바꿨죠. 누구 이상으로 음악을 만들려고 하지 말자. <서편제>는 뮤지컬로서 우리 소리가 가미된 최초의 작품이니깐. 최초로 내가 뭔가 만든다는 생각을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비웠더니 악상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3일 만에 일곱 곡을 내리 썼죠.
본격적인 <서편제> 작업에 앞서선 지속적으로 국악을 많이 찾아 들었어요. 국내 유수 명창들의 소리나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연주들. 국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였죠.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우리 소리는 내 안에 분명히 있는 거잖아요.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거죠. 이런 과정에서 이자람 배우의 소리(억척가, 심청가 등)를 듣고 즉석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컨셉을 스케치했어요. ‘First Sketch’, 이것이 <서편제>의 전반적인 색깔이나 사운드의 뿌리가 됐어요. 이자람 배우가 바로 작품 전체의 뮤즈가 돼 준거죠.
작곡을 시작하면서부턴, 작품 자체에 집중했어요. 각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최대한 많이 했죠. 특히 송화가 눈이 멀게 되는 장면의 ‘원망’을 쓸 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밥 한 숟갈 떠 넣을 힘조차 없었죠. 밥 먹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그때 아내가 절 다독거리며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작품 전체가 제가 쓴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고. 조금만 힘내라고. 이렇게 용기를 준 말들이 지속적으로 전체 곡을 완성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살다보면’을 작곡할 때 즈음엔 차지연 배우를 오디션장에서 처음 만나게 됐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이 곡에 영감을 줬어요. 지연 송화의 보이스톤 때문에 이 곡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주옥같은 가사도 마음에 깊이 와 닿았어요.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란 구절이 없었으면 그런 멜로디가 안 나왔을 거예요. 저는 이 부분을 김범수의 ‘보고 싶다’의 브릿지처럼 생각했어요. ‘보고 싶다~’ 부분같이 강한 메시지를 줘야겠다 생각하고 곡을 쓰게 됐죠. 또 극적으로 봤을 땐 가장 순수한 느낌의 송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소리 때문에 힘들고 괴롭기 이전이거든요. 음악 외적인 부분이 오히려 큰 순수한 송화의 모습을 표현했죠. 뮤지션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심청가’를 부를 때, ‘살다보면’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했어요. ‘살다보면’이 송화의 마지막 소리와 일맥상통하는 거죠.
이번 공연에선 동호의 넘버 ‘Alive’와 ‘My Life Is Gone’이 추가됐어요. 처음에 동호는 극의 해설자 역할이 강했는데 갈수록 비중이 커졌죠. 초연 때는 제임스딘 같은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래서 자기 음악을 찾아가는 투쟁의 의미를 담아 곡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이제 동호도 예인의 경지에 오르게 됐어요. 비로소 완결판의 동호가 완성된 셈이죠. ‘My Life Is Gone’에서 삶이란 것은 사전적 의미와는 좀 달라요. 거기엔 꿈도 있고, 음악도 있고, 사랑도 있어요. 말하자면 지난날의 나의 인생은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나의 인생이 열리게 되는 거죠. 송화가 자기 소리를 찾아 예인의 길을 가고 있듯 나도 정체되지 않고 내 분야의 예인이 되겠다! 동호가 예인이 되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이기 때문에 ‘My Life Is Gone’이란 곡이 탄생하게 된 거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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