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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ANIA TALK] <글루미데이> 미스터리한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No.127]

진행·정리 | 이민선 2014-05-09 5,496
많은 마니아를 양산하며 그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어떤 매력으로 마니아를 재관람의 늪에 빠뜨리는 걸까? 이달에 새로이 기획한 ‘Mania Talk’에서는, 마니아 관객들과 함께 그런 작품을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이달의 작품은 김우진과 윤심덕, 사내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팩션극 <글루미데이>. 트위터를 통해 ‘Mania Talk’에 참여할 관객을 공개 모집했고, 가장 빠른 회신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최현주와 김지현, 김진영 세 관객이 모였다. <글루미데이>에 대한 첫인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문의 사내, 의문의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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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작년 초연 때 처음 보고선,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었어. 본 사람마다 해석이 분분했지. 김우진과 윤심덕의 드라마는 있는데, 사내에 대해선 이렇다 할 설명이 없어. 사내가 둘을 조종하는데, 왜? 사내가 윤심덕을 좋아해서? 아니면 그는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혹은 죽음의 사신? ‘왜’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아서 혼자 계속 생각했어. ‘한 번 더 보면 이해가 될까?’ 하지만 끝날 때까지 명확히 풀리지 않더군.

최현주    나도 처음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의아했어. 다시 보면서 ‘내가 어떻게든 이걸 이해하리라’ 나와의 싸움에 들어갔지. (웃음)

김진영    처음 보고선 음악이 정말 좋아서, 이건 내가 계속 보겠구나 예상했어. 난 처음보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의문이 쌓이더라. 재공연에 비해 초연은 좀 더 설명이 부족했잖아.

김지현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공연에는 몇 장면이 추가돼서 궁금했던 점이 일부 해소되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기도 했어.

김진영    사내가 대본에 추가할 스토리라며 김우진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이로써 어느 정도 셋의 갈등에 설명이 더해졌지. 그런데 사내의 정체는 미스터리해야 하는데, 이런 장면으로 셋을 일반적인 삼각관계처럼 보이게 해서 약간 재미가 떨어졌어.

김지현    드라마를 좀 더 명확하게 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듯도 해.

최현주    사내의 이미지는 배우별로 약간 다르게 느껴져. 이규형에게선 악마의 느낌을 받았어. 커플들을 다 파멸시키는, 인간이 아닌 존재. 이규형이 마지막에 씩 웃으면서 퇴장할 때 정말로 ‘내가 이태리까지 가서 너희를 찢어버릴 거야’ 하는 느낌이거든. (웃음) 반대로 정민은 생명이 있는, 두 사람을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인간’으로 보였지.

김지현    초연 때는 사내가 김우진이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인상이 굉장히 강했어. 사내가 윤심덕을 이폴리타에 비유하지. 사랑하는 이폴리타를 절벽으로 데려가 죽이는 조르지오처럼, 김우진은 자신의 불만과 수치스러움으로 죽음을 동경하는데, 그 망상의 집약체가 사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재연 때는 오히려 그냥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적당히 섞어놓은 느낌? 악마 같지만 망상은 아니고 인간 같아.

최현주    처음엔 사내를 관념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봤어. 그런데 김우진이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를 부를 때, 다른 공간에서 사내와 심덕이 포옹하고 있어. 저 노래를 부를 때 왜 저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사내는 우진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그렇다면 사내는 우진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겠다 싶어. 아, 정말 사내의 정체가 뭔지 머리가 아파. (웃음)

김지현    김우진이 윤심덕에게 이런 사람들이 사내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데, 왜 죽였는지는 안 나와. 그들을 죽인 이유가 이 둘을 죽이는 이유와 같을 텐데, 사내와 커플들은 어떤 관계였고 왜 죽였는지 뚜렷하지가 않지.

최현주    그런 불친절함이 관객의 상상을 유도하는 건 사실이야. 드라마에 구멍이 너무 크면 문제일 텐데, 구멍에 빠지느냐 아니면 상상으로 메우느냐 그 경계에 있어서, 결론은 더 봐야 알 것 같다는 거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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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달라지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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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보는 날마다 느낌이 너무 달라. 출연 배우들마다 생각하는 바도 다른 것 같고. 배우마다 해석이 다르고 그에 따라 내가 이해하는 부분이 점차 많아지니까, <글루미데이>는 어떤 캐스트를 봐도 괜찮아. 배우마다 개성도 뚜렷하고.

김진영    난 모든 캐스트의 공연을 다 봤거든.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캐스트를 골라 한두 번 보는데, 이 작품은 배우에 따라 그리고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감상이 달라서 많이 보게 됐지. 사내 역의 이규형은 전지전능한 악마 느낌이 강하고, 정민은 김우진이 만든 허상으로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어. 신성민은 친구같이 다가왔다가 갑자기 잔인하게 확 바뀌지. 그래서 마지막에 더 차갑고 무서워. 윤심덕 역의 안유진은 왈패녀였다가 확 추락하는 캐릭터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줘.

최현주    안유진은 정말 그 시대에 조선을 떠나 일본에 간 데 들뜬 유학생 같아. 그런 그녀가 두 남자 때문에 팔자 바뀐 인상이 강하지. 김우진과 사랑에 빠지고 사내에 휘둘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달까. 곽선영은 팜므파탈 같아. 후반부에 무너지면서도 그걸 겉으로 티내지 않으려 하는 강인함도 보이고. 임강희는 좀 더 사랑스럽지.

김지현    내가 생각하는 윤심덕은 신여성으로, 남자를 휘두를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인데, 안유진이 그에 가까워서 좋아. 지난 17일 공연의 캐스트가 정문성과 안유진, 이규형으로 딱 한 번 볼 수 있는 조합이었는데, 좋더라.

김진영    난 김경수와 곽선영, 이규형의 조합이 좋아. 초연 때부터 함께해서 호흡이 잘 맞아. 이규형이 사내 중 가장 임팩트가 강하고, 이 팀의 윤심덕은 김우진만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 내가 생각하는 윤심덕을 보여주지. 김경수가 연기하는 김우진은 후반부에 정말로 지쳐 보여서, 이 작품에 빠져 있다는 게 느껴져. 또 다른 김우진, 임병근은 느긋느긋한 성격의 딱 모범생인 부잣집 아들 같아.

최현주    정문성은 소심하고 찌질하다가도 마지막에 절규하듯이 확 무너져. 그는 윤심덕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에 맞춰 섬세하게 연기를 달리해서 좋더라.

김지현    실제로 김우진과 윤심덕이 만난 건 1921년이고 사라진 건 1926년이야. 팩트에 기반을 두고 픽션을 가미하다보니, 세 사람이 처음 만나고 정사가 있기까지 5년의 공백이 있어. 초연 때는 나만의 상상으로 5년을 메웠어야 했는데, 이번엔 김우진의 대사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되더라. 그간 셋은 어떤 관계였을지.

최현주    사실에 기초해 쓰는 팩션의 한계지. 게다가 5년을 메우려면, 정말 제작진 말대로 1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들어야 할 거야.

김지현    드라마가 시간 순으로 이어졌다면 공백을 채워야 했을 텐데, 5년의 간격을 두고 오가며 단편적인 장면들을 엮어서 오히려 짜임새 있게 보였어. 제작진이 굳이 드라마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허점을 교묘하게 덮는 연출이 아니었나 생각해. 뮤지컬 넘버는 정말 다 맘에 들어. 재연에 새로 추가된 곡들도 따로 노는 느낌 없이 극에 어울리고.

김진영    3월 공연 예매자 모두 초연 캐스트 OST를 받았잖아? 관객 입장에서 고맙지만, 제작사가 팔아도 될 상품들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퍼줘서, 다시 이 공연을 못 보게 될까 걱정돼. (웃음) 아무튼 반복 재생해 듣고 있는데, 난 특히 윤심덕의 솔로 곡들이 좋더라.

김지현    순서대로 들어도 좋지만, 랜덤 재생해서 들으면 곡 순서에 따라 드라마를 새롭게 해석하는 재미도 있더라.  

최현주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 셋은 어떻게 됐을까?

김지현    두 남녀는 이태리에 갔어. 그런데 사내가 따라왔을 것 같아. 사내가 조종하고 김우진은 그대로 글을 썼지. 벗어나고 싶어서 고쳐 썼고. 그들이 쓰는 작품은 뭐랄까, 쓰는 대로 이루어지는 데스노트 같아. 사내가 마지막에 노트와 서류 가방을 들고 나가잖아. 사내도 이태리행 배를 타고 거기서 또 새로운 결말을 썼을 거야, 쓰는 대로 이루어지게. (일동 웃음)

최현주    하긴 마지막 한 장을 불태웠으니, 아직 결말은 비어있는 셈이잖아. 또 결말을 채워 넣어야겠군. (웃음)

김진영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동일하게 사내가 구겨진 종이에 쓰인 글을 읽지. 다른 점은 마지막 장면에선 김우진과 윤심덕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전 키스하는 내용이 추가된다는 거야. 끝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간 걸 보면 결국 김우진의 바람대로 희망적인 결말이 아닐까 생각해. 둘은 죽었을지 몰라도, 의미는 희망적이라고 봐.

최현주    두 사람은 죽든 살든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제목처럼 우울하지가 않아.

김지현    다른 관객들의 생각은 어떤지도 무척 궁금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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