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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2] 최재웅, 의미 없이는 지지 않는 이유

글|김영주 |사진|박인철 2009-09-25 7,068


한동안 최재웅을 설명하는 말이 ‘<암살자들>에서 오스왈드 역 했던 그 눈에 띄는 신인’이었던 적이 있다. 뜨거운 냉소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어울리는 손드하임의 문제작에서 그 정서의 재현자로 더없이 적합한 젊은 배우의 존재감이 각인된 것이다.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그는 다시 한 번 위험한 표적 앞에 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한 마디도 쉽게 수긍하지 않고 어떤 것도 가볍게 부정하지 않는 배우와의 대화를 옮겼다. 
 

 

4년 만의 <어쌔신>이네요. 같은 역을 두 번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죠?

<판타스틱스>도 두 번 했는데.(배역은 달랐죠.) 아, 그렇구나. <암살자들> 초연 할 때 공연 전날 무대 뒤에서 넘어져서 다쳤어요. 철사 같은 거에 입술 안 쪽에서 코까지 심하게 찔려서 밤에 응급실에 가서 치료 받고 전회 공연을 진통제 맞고 무대에 섰어요. 아무래도 아픈 상태로 공연을 한 거니까, 계속 아쉬웠어요. 공연을 끝내면서 미련 남기는 경우가 잘 없는데, 그 공연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빚 갚음을 하고 싶었어요. 여러모로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고.

 

손드하임의 팬이기도 하고요? 손드하임 작품 중에 <패션(Passion)>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옛날에요.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요즘은 <어쌔신>이 좋아요. 퍼즐이라고 해야 하나? 아귀가 잘 맞아요. 그 사람은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윤리를 지키면서(웃음). <암살자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곧바로 ‘이 노래 좋다’라고 느낄만한 곡은 힝클리와 프롬이 함께 부르는 ‘Unworthy of Your Love’밖에 없잖아요. 관객들이 원하는 곡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못 쓰는 것도 아닌데, 진짜 있어야하는 곡만 쓰잖아요. 그래서 참 멋져요. 4년 전과 달리 보이는 거? 그런 건 없어요. 다른 걸 발견하거나 안보이던 게 새로 보이는 게 아니라, 전과 같은 걸 그때보다 좀 더 깊이 느끼는 거죠.

 

<어쌔신>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나 노래가 있어요?

마지막, ‘Something Just Broke’라는 노래가 있어요. ‘마당에 있었죠, 빨래를 널고 있던 그때, 소식을 들었죠. 대통령이 암살됐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인데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그 비슷한 걸 느꼈어요. 아침에 밥을 먹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 그 느낌이… ‘Something Just Broke’라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어요. ‘마당에 있었죠, 빨래를 널던 그때, 그때 소리를 들었죠. 대통령이 저격 당하셨습니다. 잊지 못할 그 순간’ 그리고 웨이트리스가 나와서, ’주문을 받고 있었죠. 그 순간, 대통령이 저격  당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농부가 나와서 쟁기질을 하면서 ‘쟁기를 갈았어…’ 그런데 이 노래가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그 순간의 기억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요.

 

뭘까요, 그게? 말했던 것처럼 못난 놈이 잘난 놈에게 ‘개기는’ 게 <어쌔신>의 암살이라면, 그 결과 사람들이 느끼는 뭔가 부서져버린 듯한 느낌의 정체는 뭘까요?  링컨과 케네디, 닉슨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잖아요. 노무현과 박정희처럼 그 죽음을 몰고 온 이유나 의미가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똑같이 ‘뭔가 부서졌다’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 ‘뭔가’의 정체는 뭘까요. 그래서, 그 날 아침을 먹다가 뉴스를 보고 멍해졌어요?

멍해졌다기보다는… 노래로 치면, ‘아침을 먹고 있었죠. 그 때 그 소식을 들었어요. 뭔가 깨졌어. 잊지 못할 순간.’ 그러니까 그 노래에서도 그냥 ‘뭔가’라고만 하잖아요. ‘뭔가 깨졌어.’ 정말 잘 표현을 한거죠. 하여간 좋아요, 그 신이. 관객이 경험해 보았던 것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무대 위에서 실현시키는 게 공연이잖아요. 그런 걸 굉장히 효과적으로 나한테 와 닿게 해줬어요. 아, 좋은 작품이에요. 좋아하는 작품이고.

 

 

발라디어/오스왈드가 지금까지 했던 역 중에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 같지 않아요?

좋아 보이는 역이에요. <쓰릴 미>때처럼. 연기 잘해 보이는 역. 솔직히 말하면 <쓰릴 미>의 ‘나’는… 어렵지 않아요. 저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연기술을 어느 정도만 가지고 있고, 좀 우울하게 생긴(웃음) 배우가 하면 요만큼만 해도 관객들에게는 이만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이에요. 그런 역이 있어요. 오히려 더 공을 들여도 <쓰릴 미>때 보다 못해 보이는 역도 있고. 그게 캐릭터의 파워인데… 그래서 배우들이 선망을 하는 배역이 있나 봐요. 그런데 관객들에게는 어지간히만 하면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이라고 해도 공연을 해오던 선수들끼리는 보이죠. 그 공기가 있잖아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 조카가 가끔 거짓말을 하는데, 다 보여요. 그걸 보면서 내가 그 나이 때 엄마한테 거짓말 했던 것도 다 보였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거랑 비슷해요. 사실 저도 어리죠. 어리지만, 내가 소신껏 하는 연기가 진짜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선배들이 보고 ‘그래, OK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 주관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고. 

 

지금 공연중인 <날 보러 와요>가 첫 연극인가요?

두 번째죠. 예전에 변방 연극제에서 예술을 한번 했어요(웃음). 그 때도 좋았어요. <날 보러 와요>는 오랜 만에, 아니 처음이구나. 졸업하고 처음으로 학교 사람들이랑 하는 공연이라서 더 좋아요. 아, 그리고 <날 보러 와요>에는 제가 지금까지 공연 하면서 했던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신이 있어요. 조형사, 그러니까 저랑 박기자의… 남들은 다 애정 신이라고 하는 장면인데, 그 신이 너무 잘 나온 거 같아요. 관객들은 막 어색해서 못 보겠대요. 그런데 그건 어색해야하는 장면이거든요. 저는 그게 러브신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연기를 해요. 러브신이 아니라 이상한 공기 신. 그리고 싸움 신이기도 하고. 하여튼 둘 사이에 이상한 공기가 흐르면서 서로 엄청 어색하고 생뚱맞은 순간인데 그 느낌대로 잘 만들어진 거 같아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우리가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관객들이 흡족할 수 있게 그동안 많이 봐왔던 방식으로 만드는 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아서 그 장면이 좋아요.

 

어색해야 하는 장면을 어색하게 만들었는데, 연기가 어색하다고 비판 받는 미묘한 상황이잖아요. 그런 이해인지 오해인지 모를 애매한 일들이 좋아요?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 중에서 선택을 한거에요. 가장 옳은 표현을. 그런데 작품을 하다 보면 때때로 정답에 가장 가까운, 내가 공부한 것에 대한 정당한 표현을 포기하고 타의에 의해 다른 걸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좋다는 거죠.
서브 텍스트가 확실히 나와 있지 않은 배역,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인공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을 제외한 작은 배역을 맡은 배우는 그 역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 역할의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는 틀을 따라가게 돼요. 뭘 어떻게 해볼 ‘거리’가 없으니까. 대본에 정보가 없는 역할은 보통 그런 선택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고요. 이번에 그런 걸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조형사를 하게 된 목적도 그거예요. 그런데 관객들이 보기에는 ‘어, 저런 인물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왜 다르게 하지?’ 싶은가 봐요. 그런데 사실 관객들에게 맞춰서는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제각각 다른 생각들을 하고 다른 요구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충족을 시켜줘요. 가령 다수 관객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적인 연기를 한다고 해도 그게 성에 안차는 까다로운 관객들도 분명히 있을걸요. 결국은 내 것을 가지고 내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간에 그래야 제가 떳떳할 수 있잖아요. 남들이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칭찬을 듣든 욕을 먹든. 

 

그래도 이 사람한테 만큼은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않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 같이 연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럽게 그 분들은 제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80퍼센트 이상 알아주세요. 경험을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더뮤지컬 분들도 직접 공연을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우리가 공연을 하는 이유는… 관객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작업(作業)’이라고 하잖아요. 뭐, 겸사겸사해요. 재미있어요.

 

직업이기도 하고, 작업이기도 하고요? 11월에 <판타스틱스>를 다시 한다던데 이번에도 출연하세요?

아뇨, 전 잘렸어요(웃음). 참, 10월 초에는 (조)정은이랑 공연해요. 한국 아니고, 미국에서. <청춘의 십자로>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성영화가 있어요. 일주일간 미국 링컨센터에서 하는 영화 페스티벌에 출품이 됐는데 무성영화를 틀어주고 조희봉 형님이 변사를 하시고 남자 가수를 제가, 여자 가수는 정은이가 하죠. 우리가 영화 속 인물들 대신 노래를 하는 거예요. 비자 없이 미국 가려면 전자여권을 만들어야 해요. 어디서 만들지? 구청에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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