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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건강한 애도를 위해 필요한 실존적 삶, <고스트> [No.126]

글 |누다심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2014-03-31 4,296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법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삶은 예측 불가능하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일은커녕 한 시간 후의 일도 모른다. 한 시간 후도 너무 길다. 1분, 아니 1초 후도 알지 못한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연하게 구입했던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고, 목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수도 있다. 사업에 성공하거나 직장에서의 승진도 가능하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삶이건만,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든 그 계획에 따라 살려고 한다. 내일이 온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선물로 주어진 내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이 순간’이다. 몰리는 이 진리를 알고 있었다.

 

                            

 

 

이 순간 이 순간 우리가 기다려온 이 순간에
모든 걸 맡기고 느껴봐
이 순간 우리가 꿈꿔 왔던
그 모든 걸 이룰 기회가 왔어 즐겨봐
이 순간 이 순간 원했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거야
이 순간 이 순간 모든 걸 운명처럼 흘러가는 거야

 

몰리의 마음에 남자 친구 샘도 화답하긴 했지만, 그에게는 다른 마음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마주 앉았을 때 몰리는 샘에게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샘은 늘 그래왔듯이 사랑한다는 몰리의 말에 ‘동감’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몰리는 샘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 하지만, 샘은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아니면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니다. 샘은 어쩌면 자신이 원하고 계획한 순간에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며, 중요한 순간에 행동을 취하는 금융에 종사했던 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 다르다. 갑자기 상황이 변했을 때, 자신이 예측한 것과 전혀 다른 미래가 현실이 되었을 때 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산 사람은 ‘그때 그랬어야 했어’라는 후회가 비교적 적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은 후회가 크다. 괴한의 총격으로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된 두 사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태 앞에서 두 사람의 애도 반응은 큰 차이를 보인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애도 반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겪는 슬픔을 의미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 로스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애도 반응의 5단계를 발견했다. 첫 번째는 부인(Denial)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샘은 자신의 죽음, 몰리는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 막 새로 이사한 집에서 새 출발을 하려는데 이별이라니. 몰리는 죽은 샘의 시신을 붙잡고, 샘은 자신의 시신 앞에 서 있는 몰리를 보면서 이것은 아니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Anger)로 발전한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화를 내는 것이다. 몰리는 샘의 유품을 정리하고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샘은 자신을 죽인 괴한과 자신의 친구 칼, 그리고 지하철 유령과 영매 오다메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다음은 흥정(Bargaining)이다. 사건을 돌이키기 위해서, 일을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은 ‘착하게 살테니 살려달라’ 신에게 말하기도 하고,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테니 돌아와 달라’고 애원한다. 샘과 몰리의 경우 사건을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샘은 어떻게든 몰리에게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칼을 방해하려고 한다. 몰리 역시 영매의 이야기를 믿고 경찰서로 찾아가서 진실을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 노력이 좌절되는데, 이 때 몰리와 샘의 태도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몰리는 영매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샘이 자신을 떠났고,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다음 단계인 우울(Depression)로 들어가면서 애도의 과정을 하나씩 밟아 나간다. 반면 샘은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건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친구 칼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라기보다는 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샘은 영매를 통해 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통하지 않았다. 몰리는 샘이 한 번도 그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샘은 ‘동감’이라는 말로 몰리의 마음을 움직였으나,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몰리에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컸다. 그래서 어떻게든 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 방법은 바로 칼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사건은 칼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고, 두 사람 모두 마지막 단계인 수용(Acceptance)으로 접어들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과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아무리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일지라도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을 결국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그다음의 삶을 살 수 있고, 그다음의 만남을 준비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건강하게 애도하는 것이 정신과 신체의 건강에 매우 중요함을 발견했다.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할 경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몰리처럼 ‘이 순간’의 삶을 충실히 사는 자세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나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 모두 같은 의미다. 이 말은 마구잡이로,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라는 말이다. 이를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실존적 삶’이라고 말한다. 실존적 삶을 살 때에만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우리는 잘 적응할 수 있다. 그리고 몰리의 노래처럼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돌아가
세상과 함께 가든 이대로 멈춰 있든
내일은 다시 찾아올 거야
두렵고 힘들어도 모든 걸 내려놓고 내일을 향해
또 다른 내일을 향해 새 삶을 향해 나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흘러가고 겨울 지나 봄은 오니
그 어떤 어둠이 와도 내일은 다시 찾아올 거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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