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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자매애와 우정의 종횡무진, <위키드> 엘파바·글린다 [No.126]

글 |송준호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4-03-31 4,012

지난해 <위키드>의 막이 오르기 전,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옥주현과 정선아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두 사람은 평소의 자매애를 엘파바와 글린다에 훌륭히 녹여내고 있다. 하지만 박혜나와 김보경의 뉴 페어도 이에 못지않았다. 이 동갑내기 두 배우는 확실한 실력과 개성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존재감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 네 배우의 다양한 조합은 이색적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위키드>의 흥행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엘파바 옥주현 vs 박혜나             
                                                                     

엘파바는 작품 전체를 이끄는 에너지를 지닌 캐릭터다. 그래서 극의 주요 대목에서 압도적인 가창력과 스타성을 선보여야 한다. 이런 인물의 성격으로부터 옥주현을 연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알려졌듯이 엘파바는 옥주현이 뮤지컬에 데뷔할 때부터 가장 맡고 싶었던 역이었고, 그래서 애착이 큰 캐릭터이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열망과 연구의 노력이 더해진 옥주현의 엘파바는 상당히 정제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무대에서 옥주현의 발성은 종종 팝 음악의 느낌이 나는데, 초반부 ‘각성 전 엘파바’를 연기할 때부터 이런 특색이 강하게 다가온다. 스타 배우들이 으레 그렇듯 옥주현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은 특유의 시선 처리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종종 시선을 위로 띄운 채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이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림을 상상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자세는 그가 이 작품에 충분히 심취해 있고 행복한 것처럼 보여, 캐릭터와의 일체감을 높이는 요소가 된다.
박혜나가 보여주는 엘파바는 상대적으로 투박하다. 그의 엘파바는 시종일관 묵직하고 퉁명스럽다. 개막 후 공연 초반, 연기 톤이 ‘강-강-강’으로 이어지던 모습이 지금도 조금 남아있다. 깨알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숨어 있는 <위키드>에서 이런 우직한 호흡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투박함은 그만의 개성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글린다를 “금발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 폭소를 유발하는 것은 그런 무뚝뚝함이 전제됐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우스꽝스러운 마녀 모자를 쓰고 괴상한 춤을 추며 스스로 구경거리가 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외곬적 특성이 강하게 비친 만큼, 두 사람의 극적 화해가 한층 더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옥주현의 엘파바는 성숙한 여성의 느낌이 진하다. 어떤 장면에서는 농염하기까지 하다. 마법사와 글린다로부터 벗어나 피예로와 드디어 사랑을 속삭이게 됐을 때, 옥주현의 엘파바는 마치 피예로를 ‘잡아먹을’ 것 같다. 마침 엘파바의 대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쁜 여자가 된 기분이야”인데, 이때 옥주현은 정말 ‘나쁜 여자’처럼 보인다. 피예로의 희생으로 사지에서 벗어난 엘파바가 분노와 광기에 휩싸이는 ‘No Good Deed’ 장면에서 옥주현의 그런 변신은 한층 더 증폭된다. 사람들의 오해가 아니라 원래부터 마녀였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면의 광기를 거침없이 폭발시킨다.
반면 박혜나의 것은 태생적인 무뚝뚝함이 성별의 느낌마저 지운다. 물론 ‘Popular’를 기점으로, 머리를 풀기 전과 푼 후의 변신 폭은 옥주현보다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성이 캐릭터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No Good Deed’에서도 옥주현처럼 ‘마녀화’라기보다 엘파바로서의 분노만 표출하고 있는 듯 보인다. 뮤지컬적 과장이 아니라 캐릭터와의 부합성에 방점을 둔다면 박혜나의 이 억세고 다부진 엘파바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Defying Gravity’처럼 단단한 고음을 끝없이 끌어올리는 대목에서 이런 점은 최대 장점으로 떠오른다.

 


글린다 정선아 vs 김보경             
                                                                     

<위키드>의 핵심 인물을 하나만 꼽자면 당연히 엘파바지만, 한결같이 강직하고 정의로운 성격이라는 점에서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비겁하기도 한 글린다는 공감의 여지가 많다. 재능은 없지만 허영심이나 명예욕은 충만한 살리에리 캐릭터의 몸부림과 박탈감이, 더욱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정선아의 글린다는 학교에서 인기 많은, ‘재수 없는’ 금발 퀸카에 가깝다. 글래머러스한 체형 덕에 성숙해 보이는 글린다이기도 하다. 반면 김보경은 허영덩어리에 푼수기가 다분한 소녀 글린다다. 조그마한 몸집에 밉상, 발랄한 백치미 등이 뒤섞여 팅커벨 같은 인상을 준다. 두 사람 모두 귀여운 ‘자뻑’을 지니고 있지만, 김보경이 체구나 음색을 살려 더 깜찍하고 발랄한 매력이 돋보이는 글린다를 보여준다. 물론 그만큼 더 못되게 보이기도 한다.
정선아는 표정이나 연기에서 김보경에 비해 섬세하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상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처럼 디테일을 살리는 연기 덕에 정선아는 엘파바의 존재감을 넘어서곤 한다. 가령 피예로를 떠나보내고 아무 일 없는 척 단상에 다시 올라 애써 웃음을 지으며 연설하는 정선아는 마치 <에비타>의 에바 페론을 연상시킨다(실제로 그는 <에비타>에서 이 역을 맡은 적도 있다). 그만큼 글린다의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하며 공감을 자아낸다.
김보경의 무기는 잔망스러운 개그 감각이다. 물론 글린다 자체가 기본적으로 코믹한 성격이 있고, 정선아 역시 그런 감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우, 나 안 착해’나 ‘살~다 살다 첨 보는 괴~상한 애.에.염!’ 등의 우리말 대사를 맛깔스럽게 살리는 감각에서는 김보경이 우세하다. 특히 ‘Popular’는 김보경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샤방샤방’ 머리를 털며 엘파바에게 ‘끼 부리는 방법’을 코치해주는 장면에선 객석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Popular’ 외에도 두 글린다는 예상을 뛰어넘는 코믹함을 보여준다. 후반부 엘파바와의 대결(?) 신에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마술봉 돌리기 장면이 그것이다. ‘예쁜 척’ 캐릭터인 글린다가 과격하게 마술봉을 돌릴 때, 객석은 폭소와 경탄으로 열광한다. 이때 정선아의 파워풀한 ‘봉 핸들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탄으로 변화한다. 상대편에 서 있는 ‘다크 포스’의 엘파바가 이때만큼은 정선아의 역동적인 액션 앞에서 위축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보경은 자기 몸집만 한 봉을 우악스럽게 돌리면서 예상치 못한 폭소를 이끌어낸다.
엘파바와의 조합에서는 두 사람 모두 상대를 가리지 않고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정선아의 경우 옥주현과의 매칭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평소의 친분을 그대로 담아낸 듯 두 인물 간의 감정 교류나 존재감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다. 결말부의 ‘For Good’에서 ‘너로 인하여’를 함께 되뇌일 때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를 향한 글썽거리는 눈을 통해 확인된다. 김보경은 일단 박혜나와의 조합이 자연스럽지만, 의외로 옥주현과의 매칭도 좋다. 그는 <레베카>에서도 옥주현과의 체구 차이를 특유의 날카로운 음색으로 극복했는데, 여기서는 최고의 개그감으로 상대의 존재감에 묻히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다. 단, 이 조합은 친구보다는 자매 같다. 큰언니가 철부지 막내를 보호해주는 느낌이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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